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도, 펠리페 6세 스페인 국왕도 온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의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자국 대표팀의 월드컵 결승을 집에서 본다. 이유는 외교 일정도, 정치적 갈등도 아니다. 일곱 경기에서 한 번도 지지 않은 자신의 관전 의식을 깨고 싶지 않아서다.
아르헨티나는 20일 오전 4시(한국시간) 미국 뉴저지의 뉴욕·뉴저지 스타디움에서 스페인과 2026 북중미 월드컵 결승을 치른다. 리오넬 메시가 이끄는 아르헨티나는 대회 2연패에 도전한다. 세계 정상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경기지만, 밀레이 대통령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외곽 올리보스 대통령 관저에 남기로 했다.
AP통신에 따르면 밀레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 잔니 인판티노 국제축구연맹(FIFA) 회장과 함께 관중석에 앉을 것이냐는 질문에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는 이번 대회 아르헨티나의 일곱 경기를 모두 관저에서 지켜봤다. 대표팀이 전승을 달린 만큼 마지막 경기에서도 장소와 방식을 바꾸지 않겠다는 선택이다.

의식의 중심에는 국영 에너지 기업 YPF 로고가 붙은 두꺼운 재킷이 있다. 한여름에도 같은 옷을 걸치고 경기를 봤다. 스위스와의 8강전에서는 더위를 참지 못하고 잠시 재킷을 벗었다가 아르헨티나가 실점하자 곧바로 다시 입었다. 그 뒤로는 더 단단히 지퍼를 채웠다.

아르헨티나 축구에서 이런 행동은 낯설지 않다. 현지에서는 승리를 부르는 개인적인 의식을 ‘카발라’라고 부른다. 같은 옷을 입고, 같은 자리에 앉고, 같은 음식을 먹는다. 우연히 화장실에 간 사이 골이 들어가면 다음 경기에도 그 시간에 자리를 비우라는 압박을 받는다. 과학적인 근거는 없지만, 축구 앞에서는 반복이 신념이 된다.
정치인에게는 더 예민한 기억도 있다. 1990 이탈리아 월드컵을 앞두고 카를로스 메넴 당시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대표팀을 방문했다. 아르헨티나는 개막전에서 카메룬에 0-1로 졌고, 메넴 대통령에게 불길한 기운을 뜻하는 ‘무파’라는 꼬리표가 붙었다. 이후 현직 아르헨티나 대통령이 월드컵 경기장을 찾는 일은 사실상 금기가 됐다.
반대편 스페인의 귀빈석은 꽉 찬다. 펠리페 6세 국왕과 페드로 산체스 총리가 결승을 직접 관전한다. 트럼프 대통령도 개최국 정상 자격으로 참석할 예정이다. 최근 국제 현안을 놓고 스페인과 미국의 의견 차이가 이어졌지만, 결승전에서는 세 사람 모두 같은 공간에 앉게 된다.
밀레이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과 가까운 관계를 유지해 왔다. 그럼에도 이번에는 정상 외교보다 관저의 소파와 재킷을 택했다. 경기장에 가지 않아 비판받을 가능성보다 자신이 움직여 대표팀의 흐름을 깨뜨렸다는 원망을 더 경계하는 모습이다.
대표팀 선수들에게 따로 부담을 주지 않는 효과도 있다. 결승을 앞둔 캠프는 대통령 방문과 의전 없이 평소 일정을 유지한다. 밀레이는 관저에서 한 명의 열성 팬으로 남는다.
아르헨티나가 우승하면 밀레이의 재킷은 정치인의 옷을 넘어 새로운 월드컵 부적이 된다. 패한다면 일곱 번 이어진 의식도 결승에서 끝난다. 뉴저지의 귀빈석 한 자리는 비지만, 올리보스 관저의 자리는 그대로다. 밀레이 대통령은 메시가 나서는 월드컵 결승을 가장 익숙한 방식으로 기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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