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설 연휴는 길다. 설날(17일)을 기준으로 앞뒤 휴무를 엮으면 5일 연휴가 만들어지고, 여기에 설 뒤 목·금까지 쉴 수 있다면 최대 9일짜리 ‘극장 시즌’이 열린다. 명절은 늘 영화의 계절이었고, 올해 설은 유독 한국영화에 중요한 분기점이 된다.
지난해 극장가가 주춤한 사이, 제작 환경의 침체와 산업 전반의 불안감까지 겹치며 한국영화는 “반등의 계기”를 절실히 찾고 있었다. 그 타이밍에 맞춰 설 연휴를 정조준한 국내 영화 3편이 나란히 관객 앞에 섰다. 사극, 첩보 액션, 가족 판타지까지. 오랜만에 ‘선택지’가 풍성한 올해 설 연휴 극장가를 살펴봤다.
한국영화 ‘TOP3’, 각자 다른 승부수

① ‘극장용 영화’의 정석 ‘휴민트’
영화 ‘휴민트’(감독 류승완, 제공배급 NEW, 제작 ㈜외유내강)는 블라디보스토크의 차가운 공간을 배경으로,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인물들이 얽히는 첩보전이다.
류승완 감독의 신작으로 개봉 전부터 관심을 모았던 ‘휴민트’는 개봉과 동시에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개봉 첫날 116,741명, 누적 131,626명을 기록하며 설 연휴 흥행 레이스의 선두에 섰다. 사전 예매량 역시 약 20만 장에 육박하며 기대감을 입증했다.
이 영화의 강점은 분명하다. “극장에서 봐야 할 영화”라는 점이다. 총격, 맨몸 격투, 카 체이싱까지 액션의 밀도가 높다. 그러나 단순히 때리고 쏘는 영화에 그치지 않는다. 제목 그대로 ‘HUMINT(인적 정보)’에 방점이 찍혀 있다. 결국 판을 바꾸는 건 기술이 아니라 사람, 감정, 선택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조인성은 묵직한 중심을 잡고, 박정민은 신념과 균열을 동시에 드러낸다. 박해준, 신세경까지 더해지며 각자의 목적이 부딪치는 구조는 첩보물의 긴장감을 탄탄히 유지한다. 설 연휴 “시원한 한 방”을 원하는 관객이라면 가장 직관적인 선택지다.

② 묵직한 사극의 힘, ‘왕과 사는 남자’
‘왕과 사는 남자’(감독 장항준, 제공배급 ㈜쇼박스, 제작 ㈜온다웍스·㈜비에이엔터테인먼트)는 1457년 청령포, 마을의 부흥을 위해 유배지를 자처한 촌장 엄흥도와 왕위에서 쫓겨난 어린 선왕 이홍위가 함께 머물게 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단종을 다시 바라본 이야기다. 계유정난 이후 유배지 청령포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픽션 사극이다.
유해진이 촌장 엄흥도로, 박지훈이 단종 이홍위로 나선다. 익숙한 역사 속 인물을 감정의 결로 다시 세워낸다는 점이 이 작품의 매력이다. 전미도, 유지태 등 배우진도 단단하다. 설 연휴 가족 단위 관객이 무난하게 고를 수 있는 카드다.

③ 온 가족 힐링무비, ‘넘버원’
'넘버원’'(감독 김태용, 제공 ㈜바이포엠스튜디오·펜처인베스트㈜, 배급 ㈜바이포엠스튜디오, 제작 세미콜론스튜디오·스튜디오더블엠, 공동제작 ㈜바이포엠스튜디오·아이피디컴퍼니)은 판타지 설정을 입은 가족극이다. 엄마의 음식을 먹을 때마다 줄어드는 숫자, 그 숫자가 0이 되면 벌어질 일을 막으려는 아들의 이야기다.
최우식과 장혜진의 조합은 ‘기생충’ 이후 다시 한 번 모자(母子) 케미를 완성한다. 음식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관계의 소중함을 건드린다. 설 연휴에 부모와 함께 보기 좋은 영화로 손꼽힌다.

외화는 장르 틈새 공략
한국영화 3편이 중심을 잡은 가운데, 외화는 장르 틈새를 노린다.
AI 사법 체계를 다룬 테크 액션물 ‘노 머시: 90분’, 일본 닌자를 소재로 한 활극 ‘언더 닌자’가 액션 장르를, 사후세계 로맨틱 코미디"를 선보일 영화 '영원'은 로맨스 장르를 맡는다.
더불어 원작으로 이미 큰 사랑을 받았던 '폭풍의 언덕'과 '몬테크리스토 백작'도 새롭게 돌아온다. '폭풍의 언덕'이 고자극 로맨스를 예고한다면, '몬테크리스토 백작'은 장대한 스케일로 돌아와 대서사 블록버스터를 선보일 예정이다.
이밖에도 ‘이터널 선샤인’, ‘퐁네프의 연인들’ 등 고전 멜로 재개봉작도 관객을 기다리고 있으니, 추억을 되새기고 싶은 관객이라면 또 다른 선택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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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영화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