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는 “미래의 진짜 화폐는 에너지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AI와 로봇 기술이 모든 인간의 욕구를 충족시킬 만큼 발전한다면 돈의 중요성이 급격히 떨어지지만 에너지를 생성하기는 매우 어렵기 때문에 미래의 인류는 돈을 갖지 않고 에너지만 갖게 될 것이라는 논리다.
매우 급진적이기는 하지만 에너지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의미로는 귀담아들을 만하다.
비슷한 시간, 한국에서는 수소 밸류체인을 구상하는 엑스포가 열렸다. 12월 4일 고양 킨텍스에서 개막한 '월드 하이드로젠 엑스포 2025(World Hydrogen Expo 2025)'다. 이 엑스포는 2020년부터 개최해 온 국내 대표 수소 산업 전시회 ‘H2 MEET’와 지난해 수소의 날(11월 2일) 기간 중 열린 국내 최대 규모의 수소 국제 컨퍼런스를 통합해 올해부터 새롭게 선보이는 수소 산업 박람회다.

이 행사에 앞서 우리나라에선 중요한 수소 회의가 열리고 있었다. ‘수소위원회 CEO Summit’이 처음으로 한국에서 열렸다.
지난 2017년 다보스포럼 기간 중에 출범한 수소위원회에는 현대차그룹을 비롯한 100개가량의 회원사가 있다. 현대차그룹은 이 위원회의 공동 의장사다. ‘수소위원회 CEO Summit’에는 수소위원회 회원사의 CEO와 고위 임원들 그리고 한국 프랑스 독일 호주 등 주요 국가의 정부 관계자 등 200여 명이 참석했다.
'월드 하이드로젠 엑스포 2025'와 ‘수소위원회 CEO Summit’은 시기적으로 연결선상에 있었다. 수소위원회 서밋이 4일 막을 내리면서 수소 엑스포로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했다. ‘수소위원회 CEO Summit’에서 논의한 방향성이 '월드 하이드로젠 엑스포 2025'에서 구체화되는 구도를 짰다.
일련의 행사에서 수소위원회 공동의장사인 현대차그룹이 그려낸 수소생태계는 당장이라도 실현될 것 같은, 코 앞에 다가온 미래가 돼 있었다.
현대차그룹이 공동의장사인지라 수소위원회의 공동의장은 현대차그룹 장재훈 부회장이 맡고 있다.
장재훈 부회장은 엑스포 현장에서 성사된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자동차뿐만 아니라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으로 수소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고 말했다.
‘다양한 어플리케이션’은 확장된 수소 생태계의 전주기를 말하고 있었다.
장 부회장은 “수소의 전 주기, 즉 생성부터 유통, 사용까지의 전 주기에 해당하는 그룹사의 전체 기술을 이번 엑스포에 모았다. 연료로서의 수소뿐만 아니라 에너지원으로서의 수소까지 수소의 활용성을 전체적으로 보여드리려 했다”고 말했다.
장 부회장의 이 말은 '월드 하이드로젠 엑스포 2025'의 현대차그룹 전시관에 그대로 실연(實演)돼 있다.

현대차그룹의 수소생태계는 수소의 생산단계에서부터 시작된다.
현대차그룹은 ‘WHE 2025’에서 PEM 수전해, W2H, 암모니아 크래킹 등 에너지 생산 효율을 높이고 분산 전력망 구축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수소 생산 기술을 선보이고 있다. 전시장에 가면 대형 설비의 목업(mock-up)과 투명 LED를 활용한 영상 콘텐츠가 생산 원리를 자세히 설명해준다.
'PEM(Polymer Electrolyte Membrane, 고분자전해질막) 수전해'는 수소 연료전지의 역반응을 이용해 물을 전기분해해 고순도의 청정수소를 생산하는 기술이다. 현대차그룹은 2027년 준공 예정인 울산 수소 연료전지 신공장에서 국내 최초로 PEM 수전해 시스템을 생산할 계획이다. 전북 부안과 충남 보령에서 진행 중인 1MW급 수전해 기반 수소 생산 기지 구축 사업과 2029년까지 제주도에 5MW급 PEM 수전해 설비를 개발할 계획도 소개한다.
재생에너지가 풍부한 서남해안권에도 1GW 규모의 대형 수전해 플랜트를 건설하고 인근에 수소 출하 센터 및 충전소 등 인프라를 구축해 향후 수소 AI 신도시 조성을 추진할 계획이다.
충북 청주, 경기도 파주, 인도네시아에서 추진 중인 자원순환형 수소 생산 모델 'W2H(Waste-to-Hydrogen)'와, 전북특별자치도와 협력해 진행 중인 '암모니아 크래킹(Ammonia Cracking)실증' 관련 내용도 전시돼 있다.
W2H는 음식물 쓰레기, 하수슬러지(수처리 과정에서 생긴 침전물), 가축 분뇨 같은 유기성 폐기물에서 발생된 메탄을 정제해 바이오가스를 만든 후 수소로 변환시키는 기술이다. 암모니아 크래킹은 암모니아를 고온에서 질소와 수소로 분리해 수소를 추출한다. 이런 기술들은 수소의 생산 단가를 낮추는데 크게 기여한다.
이렇게 생산된 수소는 저장과 수송 단계로 넘어간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전시에서 2세대 700바(bar) 규모의 '이동형 수소 충전소'를 선보였다. 이동형 수소 충전소는 트럭 또는 대형 트레일러에 수소압축기, 저장용기, 냉각기, 충전기 등 핵심 설비를 모두 탑재한 일체형 설비로, 충전 인프라가 부족한 지역에 우선 배치해 초기 수요를 발굴하고 공간의 제약을 극복한다.
'패키지형 수소 충전소'도 소개됐다. 핵심 설비를 컨테이너에 모듈화해 조립한 충전 솔루션으로 가로·세로를 자유롭게 배치할 수 있고, 복층화와 지중화 기술을 접목해 공간 활용도를 높였다. 공간의 압박을 받는 도심 속 충전 인프라 보급 확대를 기대할 수 있다.
고압 수소 저장탱크, 압축기, 감압장치 같은 별도의 충전 설비가 필요없는 장치도 소개됐다. '교환식 수소 저장 시스템'이다. 수소 저장 탱크 모듈을 교체하는 방식으로, 연료가 부족할 경우 사전에 충전된 탱크를 내부 크레인을 활용해 짧은 시간 내 장착·탈착할 수 있다. 한 모듈에는 약 32kg의 수소가 저장된다. 도심이나 오지에서도 수소 공급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저장과 수송의 문제가 해결되면 이제는 수소를 사용해야 한다.
가장 흔한 용처는 자동차다.
2018년 첫 출시 이후 7년 만에 선보인 완전 변경 모델 ‘디 올 뉴 넥쏘’가 이미 국내 도로를 누비고 있다. 1회 충전 시 최대 960.4km 주행이 가능한 고속형 대형버스인 '유니버스 수소전기버스'도 상품화돼 있다. 세계 최초의 양산형 수소 연료전지 대형 트럭 '엑시언트 수소전기트럭'도 있다.
‘WHE 2025’에는 한발 더 나간 모습들이 있다.
수소 연료전지를 동력원으로 하는 친환경 경전술차량인 '수소 경전술차량(ATV, All-Terrain Vehicle)'은 내연기관 차량보다 발열과 소음이 적으며, 항공 수송이 가능할 정도로 차체를 경량화 설계했다. 수소 연료전지 시스템이 탑재된 '수소전기 보트'와 '농업용 수소전기 트랙터'는 수소 연료전지 솔루션이 고출력·고부하 작업뿐 아니라 장거리 운항과 장시간 작업에도 유용함을 보여준다.
수소는 다양한 산업의 에너지원으로 확장된다.
2029년 가동을 목표로 하는 미국 전기로 제철소는 장기적으로 철광석 환원 공정에 수소를 도입할 계획이다. 철강 생산에 청정한 수소 에너지를 쓰게 된다.
수소와 공기를 혼합해 연소시켜 발생하는 열을 활용하는 친환경 설비인 '수소 버너'도 눈길을 끈다. 현대차그룹은 현대자동차 울산공장 도장 오븐을 시작으로, 고온의 열이 필요한 제조 공정에 수소 버너를 단계적으로 확대 적용해 향후 국내 생산공정의 약 5000개 LNG 버너를 수소 버너로 전환할 계획이다.

수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발전기는 이미 보급 단계다. 조만간 평택항 기아·현대글로비스 자동차 수출입 터미널에는 '100kW급 수소 연료전지 발전기'를 도입 예정이다.

현대차그룹 장재훈 부회장은 ‘다양한 어플리케이션’ 중 특히 ‘수전해 기술’을 강조했다.
장 부회장은 “수전해가 재생에너지와 연결됐을 때 효용과 가치 측면에서 많은 기대가 된다”고 말했다.
장 부회장이 언급한 수전해는 'PEM 수전해'를 말하는데, 효율성에서 상당한 기술적 진전을 이룬 것으로 미뤄 짐작할 수 있다.
장 부회장은 “연료 전지에서의 성능과 수소 원가 측면에서는 혁신을 기획하고 있다. 2027년 정도로 기대하고 있는데 기존보다 내구와 성능은 뛰어나고 원가는 대폭 줄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2027년은 국내 최초 PEM 수전해 시스템 방식의 울산 수소 연료전지 신공장이 준공 예정인 시점이다.
현대차그룹이 그리는 수소 생태계는 매우 전방위적이다. 수소연료 전지차를 개발해 상용화하던 시절과는 스케일이 다르다. 수소연료 전지차가 친환경 모빌리티 경쟁에서 배터리 전기차에 주도권을 빼앗긴 것이 오히려 전화위복이 된 셈이다.
장재훈 부회장은 “전통적으로 현대차그룹이 자동차를 중심으로 수직 계열화가 돼 있는데, 우리가 가려는 수소 생태계는 수평적이다. 현대차그룹은 이제 수직과 수평의 통합의 시점에 와 있다”고 말했다.
이어 “수직과 수평의 통합 지점에는 에너지를 바탕으로 로봇과 AI가 들어간다. AI와 로봇은 결국 에너지와 결합이 돼 있기 때문이다. 현대차 그룹 전체가 한 단계 더 가려면 에너지와 AI에 집중하는 프레임이 맞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