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펜스 데이’로 불리는 두산 베어스 지옥의 펑고 현장. 선수들에게 “정말 힘들다”는 말만 들었지, 실제로 훈련장을 방문해보니 아비규환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선수들이 지쳐갈수록 괴성을 남발했고, 그럼에도 코치들은 더욱 혹독하게 이들을 몰아치며 좌, 우, 중앙을 가리지 않고 펑고를 날려댔다. 미야자키는 지옥이 맞았다.
취임식 때부터 수비를 강조한 김원형 감독은 마무리캠프 두 번째 턴부터 디펜스 데이를 신설했다. 매일 내야수 한 명씩 오후 훈련 열외 후 보조구장 3루 베이스 근처에서 펑고만 받는 지옥훈련으로, 야구공 약 300개가 들어있는 노란 박스를 모두 비워야 훈련이 종료된다. 그 동안 박지훈, 박계범, 오명진, 박준순, 임종성 등이 훈련을 소화한 가운데 이날은 특별히 내야수 안재석, 박성재 2명이 동시에 펑고를 받았다.
1루에 박성재, 3루에 안재석이 위치했다. 홈플레이트에 노란 박스 2개가 위치한 가운데 서예일 코치가 1루, 손지환 코치가 3루로 연신 펑고를 날려댔다. 홍원기 수석코치는 3루에서 내야 흙을 정비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처음에는 두 선수 모두 날렵하게 어려운 타구를 손쉽게 받아냈지만, 유니폼이 지저분해질수록 숨소리가 거칠어졌고, 움직임도 느려졌다. 심지어 평고 후반부에는 1루와 3루 곳곳에서 괴성이 터져나왔다.


코치들은 결코 선수들을 봐주지 않았다. 손지환 코치는 “이겨내, 이걸 잡아야 돼. 잡으면 우승이야”라고 안재석을 독려했고, 서예일 코치도 박성재에게 “성재 포기하지 마. 파이팅이 없어졌다. 소리 내면서 해야지”라며 쓰러진 제자를 일으켰다. 안재석이 깊은 타구를 놓친 뒤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않자 김원형 감독이 “다시 일어나”라고 소리를 치는 모습도 보였다. 박성재가 “손목에 아예 힘이 안 들어가는데 이게 맞는 건가요”라고 질문하며 훈련 강도를 실감케 했다. 손지환 코치는 안재석이 호수비를 선보이자 “이건 최정(SSG 랜더스)도 못 잡는다”라며 사기를 북돋기도 했다.
결국 인고의 시간 끝 두 박스를 모두 비운 박성재와 안재석. 펑고 후 만난 박성재는 “제가 포수에서 내야수로 바꾼지 얼마 되지 않다 보니 오늘 별이 보였다. 계속 뛰어다니고 잔발로 스텝을 밟다보니 확실히 내야수가 쉽지 않다. 그래도 이렇게 다 받으니까 뿌듯하다. 몸에서 힘이 빠지는 느낌이 너무 좋더라. 코치님께 감사드린다”라고 밝혔다.

군대를 현역으로 다녀온 안재석은 “유격훈련, 혹한기훈련보다 힘들다”라며 “20개를 받고 난 뒤부터 몸에 힘이 빠졌다. 정말 힘들었지만, 성취감도 있었다. 완주했다는 게 뿌듯하다. 동기 (박)성재와 함께 해서 더 힘이 난 거 같기도 하다. 제2의 김재호가 되기 위해 더 열심히 하겠다”라고 새로운 각오를 다졌다.
김원형 감독은 이들을 보며 “과거 최정은 신인 시절 이보다 더 혹독한 훈련을 했다. 오전에 혼자서 두 박스를 받은 뒤 오후에 타격훈련까지 했다. 그 때에 비하면 지금 훈련은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과거를 회상했다. 이를 들은 안재석은 “최정 선배님이 왜 위대한 선수인지 알 거 같다. 그런 고난과 역경이 있어야 큰 선수가 되는 거구나”라고 감탄했다.

마무리캠프에서 연일 지옥의 펑고를 치고 있는 서예일 코치는 “선수들이 힘이 빠지면서 핸들링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게 보인다. 또 계속 이런 걸 받다 보면 감각적으로 익숙해져서 자기도 모르게 다리를 움직이고 바운드도 맞춘다. 그게 바로 몸이 반응하는 것이다. 정말 좋은 훈련인 거 같다”라고 말했다.
물론 선수가 가장 힘들겠지만, 매일 300개 넘는 공을 다양한 코스로 치는 것도 선수들 못지않게 힘든 일이다. 서예일 코치는 "물론 나도 힘들다. 그런데 선수들이 더 힘든 걸 알아서 내가 티를 낼 수 없다. 그리고 선수들이 열심히 하는 걸 보면 재미있다"라며 "때때로 선수들이 안쓰럽기도 하지만, 수비 잘하면 본인들 연봉이 오르지 않나. 참 좋은 훈련을 하고 있다”라고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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