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카우트 팀도 시큰둥, 밀려 밀려 4번째 찍은 투수가 구단에 660억을 안겨주고, 세계 최고 무대의 MVP가 됐다
OSEN 백종인 기자
발행 2025.11.04 07: 27

[OSEN=백종인 객원기자] 야마구치 가즈오(51)라는 인물이 있다. 한때 촉망받는 투수였다. 사회인 팀을 거쳐 드래프트 1번으로 오릭스에 입단했다. (1999년 당시 팀 이름은 블루웨이브)
하지만 프로는 만만치 않았다. 선발 진입이 어려웠다. 주로 불펜에서만 뛰었다. 7년이 한계였다. 전력 외 통보를 받았다. 그의 나이 35세 때다.
구단 프런트에 취업했다. 스카우트 팀으로 발령이 났다. 규슈 지역 담당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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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던 6년째다. 오릭스의 스프링캠프 장소가 바뀐다. 미야코지마에서 미야자키로 이전했다. 그의 담당 지역에서 전지훈련이 열리게 된 것이다.
캠프 초반이다. 1월 말~2월 초에는 그곳도 꽤 쌀쌀하다. 바람까지 강하게 부는 날이었다.
근처에 대학시절 후배가 있었다. 고교 팀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다. 겸사겸사 그곳에 들렀다. 미야코노조라는 이름의 고등학교다.
그 날씨에도 열심히 훈련 중이다. 다들 오들오들 떨고, 손을 호호 분다. 후배를 찾으니, ‘불펜으로 가보라’고 한다. 웬 학생의 공을 받아주고 있다.
여기서 인상 깊은 장면을 목격한다.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무척 작고, 가녀린 친구였다. 혼자 열심히 볼을 뿌리고 있더라. 사실 공 자체는 대단치 않았다. 그런데 그 눈빛이나 표정을 아직도 잊을 수 없다. 완전히 몰입한 모습이었다. 너무나 진지하고, 집중하면서 공 하나하나에 정성을 들이더라. 추위나 바람 따위는 전혀 느끼지 않는 것 같았다.” (오릭스 야마구치 스카우트)
이때부터다. 야마구치 스카우트의 수첩에 메모 하나가 추가됐다. ‘미야코노조 2학년 오른쪽 투수 야마모토 요시노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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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야코노조라는 학교는 야구 명문이 아니다. 간간이 고시엔 본선에 턱걸이하는 정도다.
프로 선수를 배출한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22년 전이 마지막이다. 후쿠모리 가즈오라는 투수가 요코하마에 드래프트 3번(1994년)으로 지명된 이후로 대가 끊겼다.
일단 후보 리스트에는 들었다. 그렇다고 순탄하게 진행될 리 없다. 일단 오릭스 스카우트 팀에서 별로 관심이 없다. 야마구치 혼자 외칠뿐이다. “야무지고, 괜찮다. 3~4년 잘 키우면, 1군에 보탬이 될 것이다.”
변수도 있었다. 부상이다. 다리와 팔꿈치에 통증이 잦았다. 등판이 밀리고, 초반에 교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본인의 의지도 불확실했다. 프로에서 높은 순위로 지명하지 않을 것 같다고 체념한 눈치다. 그렇다고 언질을 줄 수도 없다. 스카우트가 개별 접촉하는 것은 규약 위반이다. 사회인 팀을 알아본다는 소문이 파다했다.
사실이 그랬다. 야마모토는 프로 지망서를 내지 않았다. 드래프트에 참가하겠다는 지원서 같은 양식이다. 그러다가 막판에 생각을 바꾼다. ‘그래도 결국은 프로에 가서 승부를 봐야 한다’라며 지망서를 제출했다.
이 과정에서도 나름대로 치열한 정보전이 있었다. 가려던 사회인 팀의 관계자가 야마구치 스카우트의 지인이었다. 덕분에 미리 소식을 알고 준비할 수 있었다.
대망의 드래프트 당일이다. 야마구치는 “야마모토를 2번으로 찍어야 한다”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밀리고, 또 밀렸다. 결국 4번째까지 차례가 돌아왔다.
오릭스가 지명한다. 차분하고, 담담한 목소리다. “미야코노조 고등학교의 야마모토 요시노부.”
구단의 운명과 MLB의 역사가 바뀌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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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은 애매한 순번이다. 드래프트 1번, 최소한 2번은 돼야 한다. 그래야 기대를 걸 만한 재목이라고 평가한다. 4번은 당장은 아니라는 뜻이다. 몇 년간 키워야, 1군에 올릴 대상으로 본다.
당장 처우에서도 입증된다. 1번은 최고 1억 5000만 엔(약 14억 원)까지 계약금을 받을 수 있다 (암암리에 훨씬 더 많이 지급되는 경우도 있지만).
그러나 야마모토는 4000만 엔(약 3억 7000만 원)에 입단했다. 첫 해 연봉은 500만 엔(약 4600만 원)이었다.
입단 3년째(2019년)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간다. 그리고 5년째(2021년)부터 만개한다. 이후 2년 연속 투수 부문 5관왕, 3년 연속 사와무라상과 퍼시픽리그 MVP를 수상했다. 이 기간 팀은 리그 우승 3회, 일본시리즈 우승을 1회(2022년) 차지했다.
무엇보다 오릭스는 야마모토를 다저스로 보내며 포스팅비(이적료)로 5060만 달러(약 660억 원)를 받았다. 다르빗슈 유(5170만 달러), 마쓰자카 다이스케(5111만 달러)에 이어 역대 3위에 해당된다.
참고로 류현진의 한화가 2573만 7737달러, 이정후의 키움이 1882만 5000달러의 포스팅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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