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히려 플로리얼이 제 멘탈을 챙겨주던데요.”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 새 외인 타자 에스테반 플로리얼(28)은 개막 후 20타석 17타수 연속 무안타로 시즌을 시작했다. 볼넷 3개를 얻었지만 삼진 5개를 당하는 등 좀처럼 첫 안타가 나오지 않았다.
지난 25일 잠실 LG전에선 4회 엘리에이저 에르난데스 상대로 우측 라인선상에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지만 밖으로 살짝 벗어나는 파울이 되며 운도 따르지 않았다. 다른 팀 외국인 타자들이 초반부터 맹타를 치고 있어 플로리얼이 조급함을 느낄 만했다.
하지만 지난 27일 LG전 9회 마지막 타석에서 마침내 기다렸던 첫 안타가 나왔다. 2사 2루 찬스에서 LG 김강률의 2구째 몸쪽 직구를 받아쳐 우측에 떨어지는 적시타로 2루 주자 김태연을 홈에 불러들였다. 무려 21타석 18타수 만에 터진 플로리얼의 첫 안타.
그 순간 3루측 한화 덕아웃이 난리가 났다. 같은 외국인 선수 코디 폰세, 라이언 와이스가 만세를 부르고 박수를 치는 등 동료 선수들이 플로리얼을 보며 격하게 기뻐했다. 한화는 LG에 1-2로 졌지만 플로리얼의 첫 안타는 가라앉은 팀 분위기에 불씨를 지폈다.
대전 한화생명볼파크 개장 첫 경기였던 28일 KIA전에도 플로리얼의 안타가 나왔다. 3-2로 역전한 7회 2사 만루에서 좌완 이준영의 2구째 슬라이더를 밀어쳐 좌익수 왼쪽에 떨어지는 2타점 2루타를 터뜨린 것이다. 빗맞은 타구로 운이 따랐지만 이런 타구들이 안타가 되면 타자의 타격감이 확 올라온다. 한화도 7회에만 2사 후 5득점 빅이닝으로 7-2 역전승을 거뒀다.

경기 후 플로리얼은 “한화 이글스의 팀원으로 뛸 수 있어서 매우 기쁘고 행복하다. 내가 안타를 친 것보다 팀이 이긴 것이 더 좋다. 내가 안타를 치든 못 치든 팀이 이기면 그걸로 만족한다”며 7회 만루 상황에서 터뜨린 2타점 2루타에 대해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지 않고 공격 흐름이 이어지게끔 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다”고 돌아봤다.
첫 안타를 치고 난 뒤 동료들의 격한 반응도 플로리얼에게 큰 힘이 됐다. 그는 “첫 경기부터 팀원들은 나를 항상 응원해줬다. 안타를 못 치고 있어도 항상 옆에 와서 ‘언젠가 나올 것이다’며 좋은 얘기들만 해줬다. 첫 안타를 치고 다같이 행복했다”고 고마워했다.
스프링캠프 때부터 진지하고 모범이 되는 훈련 자세로 김경문 감독의 마음을 사로잡은 플로리얼은 어린 선수들에게 ‘리얼이 형’으로도 불렸다. 20타석 17타수 무안타 침묵으로 누구보다 속이 타들어갔을 플로리얼이지만 그 역시 팀의 일원으로서 동료들에게 힘이 되어줬다. 당장 성과를 보여줘야 할 외국인 선수로서 옆을 둘러볼 여유가 없는 상황에도 동료들을 살피며 ‘팀 퍼스트’에 나섰다.

같은 동갑내기로 스프링캠프 때부터 플로리얼에게 먼저 다가갔던 김태연은 “제가 딱히 챙겨준 건 없다. 오히려 플로리얼이 제 멘탈을 챙겨줬다. 잘 맞은 것들이 다 잡혀서 짜증내고 그러니 ‘괜찮다. 잘하고 있다. 안타가 나올 때 나올 것이다’는 말을 해줬다”고 고마움을 나타냈다. 잘 맞은 타구들이 자꾸 호수비에 잡혀 답답했던 김태연은 이날 KIA전에서 7회 역전의 발판이 된 솔로 홈런 포함 2안타 멀티히트로 활약했다.
극심한 타격 침체 속에서 ‘팀 퍼스트’ 정신을 보여준 플로리얼이라 동료들도 그의 첫 안타에 자기 일처럼 기뻐할 수밖에 없었다. 차분한 성격이지만 이날 2타점 2루타를 친 뒤 플로리얼도 크게 기뻐했다. 1루측 한화 덕아웃을 향해 팔을 들어올리며 동료들의 호응을 유도했다. 김태연은 “그 상황에서 누구보다 간절했던 게 플로리얼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한다. 점수 차이를 벌리는 안타를 플로리얼이 쳐서 저도 기분이 많이 좋았다”며 기뻐했다.
아직 타격이 완전히 올라온 건 아니지만 중견수 수비와 주루는 플로리얼에게 기대했던 모습 그대로 나오고 있다. 이날 KIA전에서 2회 2사 1루에서 최원준의 중전 안타 때 정확한 송구로 3루를 노리던 1루 주자 이우성을 잡았다. 타구를 잡기 위해 뛰어가는 방향과 반대로 던져야 해 송구하기 까다로웠지만 스텝을 거의 밟지 않고 빠르게 원바운드 송구로 연결해 주자를 죽였다. 시즌 2호 보살. 4회에는 2루를 훔치며 시즌 첫 도루도 신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