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이 답답했었고, 감정이 끓어올랐다.”
프로야구 한화 이글스의 꽉 막힌 타격 혈이 뚫렸다. 김태연(28)의 한 방을 시작으로 한화 타선이 모처럼 봇물처럼 시원하게 터졌다. 홈런을 치고 난 뒤 배트를 집어던진 김태연의 격한 포효에 한화 팬들의 묵은 체증까지 쑥 내려갔다.
한화는 지난 28일 대전 한화생명볼파크에서 열린 KIA 타이거즈와의 홈 개막전이자 신구장 개장 경기에서 7-2 역전승을 거뒀다. 개막전 패배 후 극심한 타선 침체로 4연패에 빠졌지만 이날 승리로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한화는 개막 5경기에서 팀 타율(.129), 출루율(.196), OPS(.428) 10위로 타선이 바닥을 쳤다. 시즌 극초반이라는 것을 감안해도 지나치게 낮은 타격 수치. 5경기에서 총 9득점 빈타에 허덕였다. 특히 25~27일 잠실 LG전은 3경기 연속 2안타에 그치며 총 1득점에 머물렀다.
‘백전노장’ 김경문 한화 감독조차 “시즌 초반 연패를 한 적은 있어도 이렇게 점수가 안 나오고, 안타가 안 나온 적은 없었다”며 “좋은 타구들이 막히니까 선수들이 더 힘이 들어가고, 잘하려다 보니 부담을 갖는 것 같다”고 말했다. 전체적으로 타자들의 타격감이 떨어져 있는 상황에서 잘 맞은 타구들이 호수비에 잡히거나 아깝게 파울이 되는 등 운이 따르지 않은 부분도 있었다.
개막 5경기에서 1번 리드오프로 나선 김태연의 타구들이 유독 더 그랬다. 지난 25일 LG전에서 1회 좌측 큼지막한 타구가 워닝 트랙에서 잡힌 것이 시작이었다. 다른 구장이었으면 홈런이 될 만한 비거리였지만 잠실구장에선 뜬공이었다. 같은 날 6회에도 장타성 타구를 날렸지만 LG 중견수 박해민의 그림 같은 다이빙 캐치에 걸렸다. 2루타 하나를 도둑맞았다. 26일 LG전에도 6회 날카로운 라인드라이브가 박해민 정면으로 향하며 아쉬움을 삼켜야 했다.


좋은 타구를 날리고도 잠실 3연전을 11타수 무안타로 마친 김태연은 28일 대전 KIA전에 타순이 6번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이날도 운이 따르지 않았다. 4회 1사 1,2루 찬스에서 제임스 네일의 초구를 잘 받아쳐 중전 안타성 타구를 만들었지만 2루 주자 에스테반 플로리얼의 도루를 의식했는지 베이스 근처에 붙어있던 KIA 2루수 김선빈에게 잡혔다. 2루 병살타로 허무하게 이닝이 끝났다.
지독한 불운이 이어졌지만 김태연은 웃었다. 그리고 작심한 듯 7회 다음 타석에선 수비가 잡을 수 없는, 담장 밖으로 타구를 넘겼다. KIA 필승조 전상현의 6구째 몸쪽 슬라이더를 잡아당겨 좌월 솔로포로 장식했다. 한화의 무득점 침묵을 깬 김태연의 시즌 1호 홈런. 대전 신구장 1호 홈런은 KIA 패트릭 위즈덤이 쳤지만 한화 소속으로는 김태연이 첫 홈런의 주인공이 됐다.
김태연이 혈을 뚫으면서 한화 공격이 마침내 풀렸다. 임종찬, 이진영, 문현빈, 황영묵의 4연속 볼넷으로 밀어내기 점수가 나와 2-2 동점을 만들었다. 이어 최인호의 밀어내기 몸에 맞는 볼로 역전한 뒤 플로리얼의 좌측 2타점 2루타로 쐐기를 박았다. 김태연은 8회에도 중전 안타로 멀티히트를 쳤고, 한화 타선도 개막 후 최다 7득점 경기로 반등 계기를 마련했다.

경기 후 김태연은 “팀 타선이 결과적으로 안 좋았던 건 맞는데 그 속에서 과정들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결과가 너무 안 좋았지만 (채)은성이 형이나 (김경문) 감독님이 자기 자신을 믿고 하다 보면 언젠가 타격이 잘 될 거라고 하셨다. 쭉 못 치란 법은 없다”며 “그동안 잘 맞은 타구들이 너무 많이 잡혔다. 거기에 빠지면 진짜 더 심각하게 빠져들 것 같아 최대한 신경쓰지 않으려고 했다. 타석에서 최대한 다운되지 않으려 했다”고 말했다.
박해민에 이어 김선빈에게도 안타를 도둑맞은 이날 5회 병살타는 멘탈이 완전히 무너질 수 있는 순간이었다. 하지만 김태연은 오기로 극복했다. 그는 4회 병살타에 대해 “칠 때 안타 같았는데 김선빈 선배님이 거기 계시더라. 웃음이 나왔다. ‘그래, 누가 이기나 한 번 해보자’는 마음으로 (불운을) 이겨내려고 했다”며 홈런을 치고 난 뒤 배트를 던진 격한 세리머니에 대해서도 “많이 답답했었던 상황에서 좋은 타구가 나와 감정이 끓어올랐다”고 답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