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뻔하다.
오타니 쇼헤이의 통역 겸 개인 매니저, 나아가 인생의 동반자라고 여겨졌던 미즈하라 잇페이의 횡령 사건은 여전히 야구 팬들에게 충격적인 사건으로 남아있다. 그리고 미즈하라가 실제로 오타니의 돈을 얼마나 빼돌렸는지가 세상에 알려지면서 팬들은 더 충격을 받고 있다. 그런데 미즈하라는 자신의 범죄 행위에 반성하면서도 그럴 수밖에 없었다고 자기 합리화를 하고 있다.
북미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25일(이하 한국시간),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온라인 계좌 알림을 자신의 이메일과 전화번호로 연결해서 보안 절차를 뚫고 은행에 송금을 요청했다는 검찰의 증거 녹취 파일을 독점 공개했다.
녹취본에서 미즈하라는 은행 상담원에게 자신을 “오타니 쇼헤이”라고 태연하게 사칭했다. 그러면서 오타니 계좌의 인증 절차를 위한 6자리 보안 숫자가 미즈하라의 개인 휴대폰으로 전송됐다. 미즈하라가 오타니의 계좌를 관리하면서 자신에게 모든 알림이 향하도록 설정해 놓았다는 증거다.
은행 상담원이 “최근 사기 시도가 증가하고 있어서 온라인 거래들을 면밀하게 모니터링하고 있다. 거래 목적이 무엇이냐”라고 묻자 미즈하라는 “자동차 대출 때문이다”라고 답했다. 이후 수취인과 관계에 대해 “그는 내 친구다”라고 했다. 수취인은 미즈하라 자신이었다. 여러번 만났냐는 확인 질문에 여러번 만났고 앞으로도 송금할 계획이 있다고 태연하게 답변했다. 이렇게 오타니의 돈을 수차례 빼돌렸다.
미국 연방 검찰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미즈하라가 횡령한 금액은 무려 1700만 달러(243억원). 여기에 2021년 12월부터 2024년 1월 사이, 미즈하라는 약 1만9000여 건의 불법 온라인 도박에 빠져 4070만 달러(583억원)이라는 어마어마한 빚을 지고 있다.
연방 검찰은 미즈하라에게 4년 9개월의 금고형을 구형했다. 또한 횡령한 1700만 달러 상당의 금액을 모두 반환하고 미국 국세청은 114만9000달러의 벌금을 따로 징수하기로 결정했다. 하지만 이미 ‘빚쟁이’인 미즈하라가 이 금액을 반환하고 변제할 능력은 사실상 제로에 가깝다.
미즈하라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언급하며 4년 9개월 양형의 부당함을 역설하고 있다. 매체는 ‘미즈하라는 자신과 아내는 현재 일을 할 수 없고 부모님에게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때 배달원으로 일하려고 했지만 사진이 공개돼서 해고됐다고 밝혔다’라고 했다.
미즈하라는 “어머니는 간호사로 일하고 있었고 많은 아시안인들과 일하고 계셔서 일을 그만두셔야 했다. 제 아내와 저는 계속 미행 당하고 괴롭힘을 당했다. 외출할 때도 조심해야 했다”라며 “물론 모든 일이 제가 저지른 범죄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받아들이지만 결코 쉽지 않다. 가족에게 이런 수치를 안겨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하지 못했다”라며 현재 상황을 심리학자에게 털어놓았다고 한다.
18세 때부터 도박 중독이 시작되었다는 미즈하라는 “습관적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항상 모든 것을 되찾겠다고 스스로 다짐했지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명확해지자, 그냥 마음을 닫아버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박을 멈추지 못했습니다. 도박을 하지 않으면 불안하고 초조해졌고, 계속해서 도박판에 있어야 할 것 같은 압박감을 느꼈다”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미즈하라는 자신의 연봉이 “심각하게 저임금이었다”라는 궤변을 늘어놓았다. 횡령의 합리화에 대한 근거를 이어나갔다. 미즈하라는 그는 “24시간 대기 상태이고 늦은 밤까지 일하며 잠을 희생했다고 했다. 오타니의 식료품 쇼핑, 우편물 확인, 자전거 수리, 오타니의 가족이 있는 이와테현 동행, 반려견 진료, 식사 동행, 일본 및 미국 변호사와 혼전 계약서 조율 및 회의 참석 등 일상적인 업무도 처리했다. 가장 긴 휴가는 연말연시 4일 정도였고 아내와 보낼 시간이 거의 없었다”면서 항변했다.
하지만 미국 현지에서도 미즈하라의 항변이 설득력 없다는 것을 알고 있다. 통상적인 근로자의 노동 강도와 벌어들이는 급여에 비해 미즈하라는 훨씬 더 좋은 여건이기 때문.
‘디애슬레틱’은 ‘오타니의 첫 번째 팀이었던 LA 에인절스에서 미즈하라는 8만 달러(1억 1400만원)의 연봉을 받았다. 2022년에는 25만 달러(3억 6000만원)로 증가했고 2024년 다저스로 이적했을 때는 연봉이 50만 달러(7억 2000만원)로 두 배 증가했다고 검찰 문사에 나와있다. 또 오타니는 미즈하라에게 추가로 돈을 지급했고 포르쉐 카이엔도 선물했다’라며 미즈하라의 구체적인 급여를 명시했다.
검찰 역시도 미즈하라의 주장을 반박했다. 도박 중독에 대해 “피고(미즈하라)가 도박에 중독됐다고 하더라도 피고의 행동을 전부 설명할 수는 없다. 피고는 도박과 관련이 없는 개인적인 비용에도 훔친 돈을 사용했기 때문이다. 궁극적으로 피고의 범죄 동기는 도박 중독이 아니라 탐욕이었다”라면서 “오타니에게 자금을 장기간 훔친 것과 그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오타니의 에이전트와 재무 고문들에게 했던 무수한 거짓말은 피고가 오타니를 돕기 위해 고용됐다는 사실을 재신한 행동이었다”라고 주장했다.
또한 검찰은 도박 빚을 갚는 것 뿐만 아니라 오타니의 신용카드로 32만5000달러(4억7000만원) 상당의 오타니 야구 카드를 구매하고 오타니가 치과 치료를 위해 발행한 6만 달러짜리 수표를 개인 계좌에 입금하고 오타니의 직불카드로 지불한 사례들을 예로 들었다.
미국 ‘팟캐스트’ 파울 테러토리’에서도 이 문제에 대해 야구 선수 출신 패널들이 논의했고 이해가지 않는다는 반응을 보였다. 내야수 출신 토드 프레이저는 “마음이 아프고 신뢰했던 동료인데 더러운 행동을 저질렀다. 용서할 수 없는 행위였다”라면서 “낮은 임금을 변명으로 삼을 수 없다”고 힘주어 말했다.
포수 출신 패널 에릭 크라츠 역시 미즈하라의 ‘급여 저평가’ 발언을 직격했다. 크라츠는 “그가 낮은 임금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물론 메이저리그 생활 기준에서 고급 요리를 먹거나 고급 주택가에 살기 위해서 8만 달러는 충분히 부족할 수 있다”라면서 “하지만 통역사다. 통역사로 일하면서 많은 선수들에게 식사를 얻어 먹었을 것이다. 8만 달러 대부분 개인 소유로 남았을 것이다”고 강조했다.
‘파울 테러토리’의 진행자인 스캇 브라운은 “오타니가 치과 치료비도 지불해줬지만 돈을 가로채고 실제로는 오타니의 직불카드로 결제했다.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라고 전하면서 “현저히 낮은 임금이라고 표현했는데 굉장히 강한 표현이다. 오타니는 충분히 좋은 연봉을 받았고 미즈하라 역시 그에 못지 않은 연봉을 받았다. 게다가 도움도 요청할 수 있었을 것이다”라며 미즈하라의 주장에 모순점이 있다는 것을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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