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백종인 객원기자] 세상에 익히 알려진 스즈키 이치로(51)의 직함이 있다. 구단주 특별 보좌역이다. 여전히 시애틀 매리너스의 일원이라는 뜻이다. 선수들에게 조언도 하고, 가끔씩 배팅볼도 던져준다.
그 외에 또 하나 직장이 있다. 일본 도요타 자동차다. 거기서도 직함은 비슷하다. 회장 특별 보좌역이다. 도요타 가문의 4대째 승계자인 도요타 아키오(68)를 돕는 역할이다.
이제 입사 1년 차다. 그런 신입(?)에게 회장이 공개적으로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22일이다. 꾹꾹 눌러쓴 듯한 손 편지 하나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킨다.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헌액을 축하한다는 내용이다.
“이치로 씨, 다음 출근하는 날이 언제죠?”라는 질문으로 시작된다. 묻는 이유가 있다. 포상을 위해서다. 회장이 밝힌 저간의 사정은 이렇다.
“명예의 전당 입성은 그야말로 ‘세기의 위업’입니다. (우리 직원이 공을 세웠으니) 상을 주려고 인사부에 사내 포상제도를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업무를 불문하고, 전국 규모의 수상인 경우 소속 부서장이 표창하는 것으로 돼 있더군요.”
여기까지는 괜찮다. 다음이 문제다. 과연 무슨 상을 줄 것인가. 부상은 또 얼마나 될까. 여러모로 관심이 쏠린다.
하지만 정작 내역은 실망(?)스럽다. 표창장 외에 부상은 상품권이다. 액수도 크지 않다. 달랑 3만 엔(약 27만 원) 상당이 주어진다. 어쩔 수 없다. 그게 회사 규칙이다. 그걸 주기 위해 출근 날짜를 물어본 것이다.
세계 최대의 자동차 그룹 아닌가. 굴지의 기업치고는 너무 짜다. 회장 스스로도 인정한다. 편지에는 이렇게 적었다.
“역시 너무 적네요. 그렇게 생각하지만, 규정은 규정이라네요. 출근할 때 상사인 내가 직접 표창장과 3만 엔 상품권을 전달하겠습니다.”
사실 이건 광고다. 도요타 자동차가 이치로의 헌액을 기념해 주요 일간지에 전면광고를 실었다. 그곳에 실린 내용이다. 위트 넘친 편지 형식을 빌어, 회장 특별보좌역의 위업을 축하한 것이다.
물론 실제 포상은 3만 엔 상품권이 전부가 아닐 것 같다. 회장의 편지에는 그걸 기대하게 만드는 구절이 있다.
“추가적인 포상을 인사부와 상의할 계획이에요. 일단 나도 (사규를 따라야 하는) 회장이니까요. 하지만 도요타는 인색한 회사라서, 지급을 한다고 해도 현금은 어려울 것 같아요. 이치로 씨에게 어울리는 ‘세기의 현물 지급’을 생각해 두겠습니다.”
회장이 준비한 회심의 선물은 뭘까. 편지 속에 힌트가 있다는 추측이 설득력을 얻는다. ‘세기의…’라는 단어다. 바로 도요타의 플래그십(최고급) 모델 ‘센트리(CENTURY)’를 뜻하는 것이라고 짐작하는 사람들이 많다.
보통 ‘일본의 롤스로이스’라고 불리는 차종이다. 가격대는 옵션에 따라 차이가 생긴다. SUV 버전은 2500만 엔(약 2억 3000만 원)도 훌쩍 넘어간다. 특별보좌역 부임 당시(2024년) 신 모델 앞에서 함께 포즈를 취한 사진도 있었다.
아마, 선물이 된다면 명예의 전당 헌액을 기념하는 특별 에디션으로 제작되지 않을까. 그런 상상을 하는 자동차 마니아들이 많다.
회장은 확인까지 잊지 않는다. 다음 날(23일) SNS를 통해 재차 묻는다. “이치로 씨, 편지 읽었죠? 출근날이 결정되면 알려주세요.”
도요타 아키오 회장은 창업주의 증손자다. 도요타 본사가 있는 아이치현 나고야에서 나고 자랐다. 이치로와는 고향이 같은 셈이다. 게이오 대학을 거쳐, 미국 벱슨 칼리지에서 공부했다.
사장에 취임하기 전까지는 레이싱 드라이버로도 활약했다. 저명한 마스터 드라이버인 나루세 히로무를 스승을 모셨다. 팀을 만들어, 실제 대회에도 출전했다. 중계방송 때는 해설을 맡기도 한다. 그만큼 자동차에 진심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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