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예상대로였다. 그런데 또 예상을 뛰어넘는 액수다. LA 다저스는 어떻게 오타니 쇼헤이의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계약금의 3배에 가까운 사사키 로키에게 650만 달러(약 95억원)이라는 거액을 올인할 수 있었을까.
일본의 괴물투수 사사키의 행선지는 결국 다저스였다. 사사키는 18일(이하 한국시간), 자신의 SNS 계정에 LA 다저스 모자 사진을 걸어놓으면서 다저스와 계약한 사실을 직접 공개했다. 사사키는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맺게 되었습니다. 정말 어려운 결정이었지만, 앞으로 야구 인생을 마치고 돌아봤을 때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라며 “입단 기자회견에서는 지금까지 저를 응원해 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다저스 유니폼을 입고 싶다”고 알렸다. 북미스포츠매체 ‘디애슬레틱’은 사사키가 650만 달러의 계약금을 받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사키는 지난해 12월 포스팅을 신청한 뒤, 에이전시인 와서맨 스포츠 사무실에서 메이저리그 구단들의 프레젠테이션을 확인했다. 에이전트인 조엘 울프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에서의 경험과 다르빗슈 유, 오타니 쇼헤이, 이마나가 쇼타가 최고 수준의 무대에서 우위에 선 것을 통해 사사키는 깨달았다"며 "다음 단계로 나아가기 위해선 매일 세계 최고 선수들과 경기를 해야 하고 팀의 자원을 활용해야 한다. 일본프로야구에서 온 최고의 투수가 되는 것 뿐만 아니라 메이저리그에서 최고의 투수가 될 수 있도록 도움을 받아야 한다”라며 사사키의 팀 선택 조건을 밝힌 바 있다.
이후 사사키의 마음을 사로잡지 못한 구단들이 하나씩 선택지에서 제외됐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뉴욕 양키스, 뉴욕 메츠, 텍사스 레인저스, 시카고 컵스 등이 영입전에서 탈락했다. 최종적으로 다저스를 비롯해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토론토 블루제이스가 남았다. 지난 주말 3개 팀의 구장을 투어하면서 최종적으로 미팅을 가졌다. 결국 사사키는 예상대로 다저스와 계약에 합의했다.
사사키는 만 25세 미만, 프로 경력 이하의 선수로 국제 아마추어 선수로 분류됐다. 국제 아마추어 계약을 맺어야 했고 각 구단별로 주어지는 국제 아마추어 보너스풀 금액 내에서 계약을 해야 했다. 연봉조정신청 자격을 얻기 전까지는 최저연봉 수준을 받아야 하고 또 프리에이전트(FA) 자격까지 6시즌을 뛰어야 했다. 여러모로 구단이 ‘갑’의 입장이었지만 사사키의 잠재력과 재능 때문에 구단들이 ‘을’이 되어 사사키의 선택을 기다리는 상황에 놓였다.
결국 사사키는 다저스의 현재 전력과 미래 플랜 등에 끌렸다고 볼 수 있다. 사실 그 전부터 사사키에 꾸준히 관심을 보였고 사사키가 다저스 유니폼을 입을 것이라는 게 기정사실로 여겨졌던 시기도 있었다.
예상대로 사사키의 소속팀이 결정됐지만, 다저스가 마냥 사사키 영입 경쟁을 주도할 수는 없었다. 국제 아마추어 보너스풀 내에서 계약금을 쥐어줘야 하는데, 다저스는 이 점에서 가장 불리한 위치였다. 다저스의 2025년 국제 아마추어 보너스풀 금액은 512만6200달러. 30개 구단 중 샌프란시스코와 함께 가장 적은 금액을 보유하고 있었다. 마지막까지 3파전을 이룬 샌디에이고와 토론토의 보너스풀이 626만1600달러였던 것을 감안하면 다저스는 출발선 자체가 뒤였다.
사사키에게 650만 달러 계약금을 쥐어주기 위해서는 135만3800달러를 더 확보해야 했다. 다저스는 사사키 영입에 진심이었다. 기존에 가계약을 맺었던 중남미 유망주들과의 가계약을 철회했다. 도미니카공화국 출신 유격수 대럴 모렐(110만 달러), 테일론 세라노(100만 달러), 베네수엘라 출신 외야수 올랜도 파티노(40만 달러) 등과 계약을 취소하면서 자금을 확보했다.
그럼에도 역부족이었는지, 사사키를 영입하기 직전에 유망주들을 트레이드해서 국제 보너스풀 금액을 늘렸다. 각 팀들은 보너스풀 금액의 최대 60%를 트레이드로 추가 확보할 수 있었다.2023년 드래프트 4라운드에 지명된 외야수 유망주 딜런 캠벨을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보냈다. 올해 상위 싱글A에서 42개의 도루를 성공시킨 발 빠른 유망주다. 여기에 19세의 외야 유망주 아르날도 란티구아를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 시켰다. 중남미 소식을 다루는 프랜시스 로메로 기자는 ‘란티구아를 신시내티로 보내며 다저스는 100만 달러 이상의 국제 아마추어 보너스풀을 받았다’라고 설명했다.
사사키 영입을 위해 다저스는 제대로 올인했다. 어쩌면 샌디에이고,토론토와 치열한 계약금 경쟁이 붙었다는 것으로도 풀이할 수 있다. 사사키를 위해 다저스는 가계약 했던 선수들 포함해 5명의 유망주를 포기한 셈이다. 650만 달러의 계약금은 오타니가 2018년 LA 에인절스와 계약할 때 받은 231만5000달러(약34억원)의 약 3배다. 오타니도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사사키처럼 만 25세 이하, 프로 경력 6년 미만의 국제 아마추어 선수였다.
오타니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메이저리그에 입성한 사사키다. 일본프로야구 통산 64경기(394⅔이닝) 29승 15패 평균자책점 2.10을 기록했다. 2022년 일본프로야구 최연소 퍼펙트게임을 달성하고 WBC에서도 활약을 펼쳤다. 최고 165km의 강속구에 결정구 스플리터까지 완벽하게 구사하는 사사키의 재능과 잠재력에 메이저리그 전체가 매료됐다.
다만, 우려스러움 점도 적지 않다. 일본프로야구에서 뛴 4시즌 동안 풀타임 시즌은 없었다. WBC에서 이름을 알린 2023년에도 물집, 내복사근 부상, 고열 증세 등으로 15경기 7승4패 평균자책점 1.78(91이닝 18자책점) 135탈삼진의 기록을 남겼다. 지난해도 오른팔 피로 증세로 두 달 가량 결정해 18경기(111이닝) 등판에 그쳤다. 10승 5패 평균자책점 2.35로 데뷔 후 처음으로 10승을 달성한 것 뿐이었다.
다저스는 올해 해외 시장의 유망주들을 포기하면서 사사키 한 명을 영입했다. 지난해 월드시리즈 챔피언 다저스의 트로피 수성 의지를 드러내는 행보다. 기존 오타니, 야마모토 요시노부에 더해 일본인 3인방을 영입해 전력 강화는 물론 일본 마케팅을 더욱 공세적으로 펼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됐다. 무키 베츠, 프레디 프리먼, 윌 스미스, 테오스카 에르난데스, 토미 에드먼 등 기존 전력에 블레이크 스넬, 마이클 콘포토, 그리고 김혜성을 영입하며 투타를 더욱 탄탄하게 다졌다.
‘MLB.com’은 ‘다저스는 사사키가 활약하는 동안 경쟁력 있는 팀을 꾸릴 것이 거의 확실하다. 이는 어느 팀도 제공할 수 없는 장기 비전이다’라며 ‘사사키는 높은 잠재력을 지는 통제 가능한 재능이면서 또 합리적인 계약을 할 수 있는 선수라는 점에서 다저스가 정기적으로 주목해야 할 팀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는 새롭지 않다’라고 전했다.
그러면서 ‘다저스는 월드시리즈 타이틀 방어를 목표로 하고 있고 사사키와 같은 선수를 영입하면서 지금의 선수단이 이룰 수 있는 가능성의 한계를 한층 더 끌어올렸다’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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