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객원 연구원 생활을 마치고 교토를 떠날 때 독락(獨樂)의 역사문화 여행을 허락해준 이 고도(古都)에 어떻게 작별 인사를 할까, 생각해본 적이 있었다. 그 시간이 왔을 때 나는 도시샤(同志社)대학 교정의 ‘윤동주 시비’ 앞에 문득 서 있었다.”
그의 일본의 옛 도시 교토 여행기 마지막 연재(2024년 3월 1일 치 한겨레신문 서울&)는 그렇게 시작한다.
“한국인으로서 교토에 살면서 윤동주기념비를 찾아보는 일은 일종의 ‘의무’에 해당했다. 교토 여행기를 쓰게 됐을 때도 빼놓지 말자고 다짐했다.”던 그는 “1943년 7월 여름 동주는 교토역에 나타나지 않았다. (……) 동주가 그날의 기차를 탔다면, 고향 언덕에서 일본 군국주의의 패망과 조국 해방 소식을 들을 수 있었을 것이다. (……) 부질없다고 해도, 다고 기치로 선생의 꿈처럼 1년에 한두 번만이라도, 동주가 교토에 돌아갔다는 꿈을 꾸고 싶다”고 여행기의 끝을 맺었다.
이인우, 그가 쓴 ‘교토, 걸으며 생각하며’의 끄트머리, 윤동주 편(윤동주 서거 79주기, “전쟁 없는 평화 세상을 위한 시인의 꿈” 이뤄지길)을 신문연재로 읽고, 그 인상이 아련하고 애틋하며 은은했기에, 그의 교토 여행기를 엮은 책을 얼른 보고 싶다는 바람이 일었다. 그 작은 소망이 이제 이루어졌다.
한겨레신문 기자 출신인 문필가(그를 이렇게 일러 마땅하겠다) 이인우 리쓰메이칸대학 객원 연구원이 마침내 그의 ‘교토 여행기’를 묶은 책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 (파람북)를 최근 펴냈다.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는 ‘빛나지만 음험하고 고요하지만 번화하며 고풍스러우면서도 탈역사적인 척하는 어느 매력적인 도시 여행기’라는 부제가 달려있듯이 저자가 리쓰메이칸대학 객원 연구원으로 교토에 머무는 동안 그 도시를 샅샅이 훑어가며 발품 팔아 쓴 교토 답사 여행기이다.
이 기행(紀行)이 단순한 여행기에만 그치지 않는 것은 바로 교토가 윤동주 시인의 마지막 삶의 터전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가 그 여행기를 윤동주 시비(기념비) 순례로 매듭지은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윤동주를 외면했다면, 이 여행기는 일본의 한 옛 도시 탐방기에 지나지 않았을 터. 그래서 ‘윤동주’에 방점을 찍은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는 저자가 윤동주에게 바치는 헌사(獻辭)나 마찬가지다.
왜 교토인가.
이 책을 출간한 파람북은 “여기, 일본이 자랑하는 천년고도 교토를 탐사하듯 걸으며 기행문을 채워나가는 한국인 대학 연구원이 있다. 기자이기도 했던 그가 독자들을 처음 안내하는 장소들은 긴가쿠지(금각사), 가쓰라리큐(일본 황실정원) 등 한국인들에게도 이제 제법 익숙한 교토의 명승들이다. 하지만 그와 함께 걷다 보면 점점 현지인들도 잘 모르고 지나치는, 도시 이곳저곳에 숨은 일본의 역사·문화 명소, 나아가 고대 한반도 도래인의 자취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고 책을 안내한다.
“교토라는 이름으로 대표되는 ‘일본적’ 아름다움을 만끽하는 법으로, 그리고 탐미적인 일본인들도 놓치는 –그렇지만 한국인이기에 간파할 수 있는- 미학의 정수로,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저 아득한 시간 속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전방위 고품격 인문 기행기’는 그동안 우리 서점가에서 볼 수 없었던 “교토(또는 일본) 인문 여행기의 결정판”이라고 주장할만하다.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는 일본 미학의 요체를 보여주는 장소 10곳을 선정한 1부, 예술 도시를 낳은 교토의 상공업자와 민중의 생활을 조명한 2부, 교토의 아름다운 정원 12곳을 화보 형식으로 소개한 3부, 교토를 처음 건설하는 데 지대한 노릇을 했던 한반도 도래인들의 흔적을 추적하는 4부, 혐오와 배척을 극복하는 한국인들과 일본인들의 우애의 연대기인 5부로 본문을 구성하고, 필자가 교토의 윤동주 시비를 찾아가 바치는 감동의 귀향 인사를 에필로그로 삼고 있다.
저자인 이인우 전 한겨레신문 기자는 이 책의 머리글에서 “필자의 ‘교토 걷기’는 크게 두 테마로 진행됐다. 한 번은 교토 속의 ‘일본’을 찾아서, 한 번은 교토 속의 ‘한국’을 찾아서”라고 언급했다. “일본문화의 박물관이자 일본 미의식의 원천지인 교토는 여행자가 어느 나라 사람이든 일본이라는 나라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함축적으로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적합한 도시는 없다”는 필자의 시각은 교토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까닭을 잘 설명해준다.
일간지 도쿄 특파원을 지낸 조양욱 일본문화연구소장이 “이 책을 읽을 때 교토의 아름다움은 다른 차원으로 업그레이드된다.”고 강력추천한 것이나 문학평론가인 권성우 숙명여대 교수가 “저자 이인우는 에필로그에서 시인 윤동주를 호명하며, ‘동주는 교토에 다시 돌아가(오)고 싶어하지 않았을까?’라고 적었다. 시인의 슬픈 운명과 교토의 매력을 한껏 상징하는 이 문장은 왜 우리가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를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한마디로 청년 윤동주를 생각하며 교토의 골목골목을 거닐고 싶게 만드는 뜻깊은 책이다.”라고 상찬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한반도와 일본열도로 이뤄진 환동해(環東海) 지대의 언어와 문명의 기원에 관심을 지닌 저자는 그 연장 선상에서 역사·문화 답사기인 이 책 『교토, 길 위에 저 시간 속에』를 집필했다. 그동안 쓴 책으로는 『세상을 바꾸고 싶은 사람들-한겨레 10년의 이야기』(공저, 1998), 『삶의 절벽에서 만난 스승 공자』(2016), 『서울 백 년 가게』(2019), 『음식천국 노회찬』(2021) 등이 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에는 ‘노을공원시민모임’(노고시모) 활동가로 쓰레기 산이었던 난지도가 다양한 식물과 동물들이 살아가는 자연으로 복원되는 데 힘을 보태고 있다
정갈한 문장과 풍부한 인문적 식견, 아름다운 사진으로 채워진 이 책은 모름지기 일본을 여행하려는 ‘길 위의 사람들’이 반드시 음미하고, 통과해야 할 필독서이다.
이미지 제공=파람북, 이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