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명의 목숨을 빼앗아간 1일의 시청역 교통사고는 분명 비극이다. 그러나 사고의 원인을 풀어가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논쟁들이 집단 공포와 패닉이라는 사회적 비용을 유발할 수 있어 우려된다.
대형 사고일수록 과학적 사고에 기반하는 냉철한 접근이 필요한데, 소위 전문가 집단들일수록 자신의 신념에 근거해 사고를 바로 보는 태도를 취하기 쉽다. 전문가 집단인지라 지식과 경험이 많기는 하겠지만 섣부른 예단은 과학적 사고의 기회를 원천적으로 막아버리는 오류에 빠지게 한다.
자동차를 담당하는 기자들에겐 온갖 체험 행사의 기회가 주어진다. 30도 이상의 가파를 경사길을 횡으로 종으로 누비기도 하고 시속 200km 이상의 속도로 서킷을 주행하기도 한다. 현상만 보면 공포스러운 일이다. 경사로를 오를 때는 운전자의 눈이 닿지 않는 사각지대가 존재하는데, 웬만한 강심장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주변 사물이 내 차 뒤로 뒷걸음질 치는 듯한 현상을 경험하는 초고속 주행 또한 아찔하기 짝이없다.
이런 행사를 이끄는 인스트럭터들이 참가자들이 차를 타기 전에 빼놓지 않는 말이 있다. “차를 믿어 달라”는 당부다. 극한 상황일수록 차를 믿고 차의 성능에 자신을 맡겨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순간 진짜 사고가 발생한다는 교훈이다.
지레 급발진을 단정한 듯한 접근은 자칫 운전자들을 집단 패닉에 빠뜨릴 수 있다. 내 차를 의심하기 시작하면 다른 모든 차들도 의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인간의 윤택한 삶을 위해 태어난 차가 공포의 대상이 된다.
최근 있었던 또 다른 교통사고는 공포와 패닉이 몰고올 사회적 매몰 비용의 좋은 예가 된다.
작년 11월의 일이다. 서울 시내의 한 주택가에서 60대 기사가 모는 전기택시가 담벼락을 들이 받는 사고가 발생했다. 이 기사는 급발진 사고를 우려해 평소에 운전자의 발 동작을 녹화하는 페달 블랙박스를 달고 다녔다.
사고가 나자 택시 기사는 수순처럼 급발진을 주장했고, 경찰은 페달 블랙박스를 포함한 4개 채널의 블랙박스를 수거해 영상을 분석했다.
영상 속 택시 기사는 골목에서 우회전한 뒤 30미터를 달리는 동안 가속 페달을 6번이나 밟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7번째 가속 페달을 밟은 뒤에는 충돌할 때까지 계속 밟고 있었다. 담벼락을 충돌하기 직전까지 약 7.9초 동안 119미터를 달리는 과정에서 택시 기사는 단 한 번도 브레이크 페달을 밟지 않은 것이 영상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이 사례는 지난 2월 유럽연합 유엔 경제 위원회(NECE, United Nations Economic Commission for Europe) 주관의 분과 회의에 참석한 한국교통안전공단의 발표에 의해 공개됐는데, 사고 과정이 너무도 명확하게 분석이 돼 있기 때문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택시기사도 운전을 평생의 업으로 살아왔을 테니 내로라하는 운전 전문가다. 이 사고 당사자도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는 생각으로 급발진을 주장했지만, 자신도 인지 못한 명백한 조작의 오류가 있었다.
이 운전자는 가속 페달을 브레이크 페달이라고 확신하고 사고 상황 내내 가속 페달만 밟고 있었고, 영상을 확인하기 전까지는 ‘내가 그랬을 리가 없다’고 확언하고 있었다. 전문가 집단일수록 빠지지 쉬운 확증편향의 오류를 범하고 있었던 셈이다.
사고의 원인을 밝히는 과정은 분명 과학적이고 논리적이어야 하는데,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예단이 많을수록 사회 전체가 같은 오류에 빠질 수 있다. 공포를 확대재생산 하는 일부 유튜버들의 행태는 괜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킨다.
이번 시청역 교통사고도 하나하나 정황이 밝혀지고 있어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사고 원인에 접근할 필요가 있다.
오히려 현 시점에서 더 절실한 논의의 주제는 페달오조작 방지 대책이다.
세계 주요 국가 사이에서도 의도하지 않은 가속의 주요 원인이 페달 오조작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유엔 경제 위원회는 페달오조작 방지장치(ACPE)에 대한 글로벌 평가 기준과 법규 제정을 위한 논의를 펼치고 있다. ACPE를 오래전부터 상용화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ACPE 적용 차량이 확대되면서 페달 오조작으로 인한 사고와 사상자 수는 최근 10년 간 절반으로 준 것으로 나타났다.
섣부른 예단으로 공포감을 조장하는 행태보다는 차라리 수동변속기를 부활하자는 논의가 더 현실적일 수 있다. /100c@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