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맹은 16일 제8차 상벌위원회를 열어 집단 물병 투척 사태와 관련해 인천과 서울 골키퍼 백종범에 대한 징계 수위를 결정했다. 지난 11일 인천축구전용경기장에서 열린 K리그1 12라운드 인천과 FC서울 맞대결 후 발생한 사안에 관한 결정이다.
징계를 야기한 상황은 이러했다. 치열했던 경기가 마무리 된 후 서울 골키퍼 백종범은 등 뒤에 있던 '상대팀' 인천 서포터스를 향해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는 세레머니를 펼쳤다. 흥분한 인천 서포터스들은 백종범을 향해 물병을 내던졌다.
이 과정에서 백종범을 보호하기 위해 나선 서울 주장 기성용이 자신을 향해 날아온 물병에 급소를 맞고 쓰러졌다. 고통을 호소하던 기성용은 한동안 그라운드에서 일어나지 못했다. 결국 동료들의 부축을 받고 경기장을 빠져나갔지만 하마터면 큰 부상으로 이어질 뻔했다. 특히 인천 선수들도 홈 팬들이 던지는 물병을 온몸으로 막았다.
이날 연맹은 인천에 제재금 2000만 원과 홈경기 응원석 폐쇄 5경기의 징계를 부과하면서 “경기규정 제20조 제6항에 따라 홈팀은 경기 중 또는 경기 전후 홈 경기장 안전과 질서 유지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의무가 있다"라고 입을 열었다.
이어 "이번 건은 소수의 인원이 물병을 투척한 과거의 사례들과 달리 수십 명이 가담하여 선수들을 향해 집단적으로 투척을 했기 때문에 사안이 심각한 것으로 봤다”라며 역대 최고 수위의 징계를 내린 배경을 설명했다.
과거에도 그라운드 내 이물질 투척 사건이 있었다. 1000만 원이 최대 제재금이었다. 2023년 9월 7일 대전과 수원FC경기에서 심판이 이물질에 맞았고, ‘홈팀’ 대전에 1000만 원의 벌금이 부과됐다. 앞서 2022년엔 대구와 수원삼성 맞대결에서 심판이 이물질에 맞았다. 홈 구단 대구가 1000만 원 징계를 받았다.
어느 정도 예상됐던 징계. 문제는 백종범도 예상치 못한 중징계를 받았다는 것이다. 연맹은 인천 팬들에게 도발을 했다는 이유로 백종범에게 제재금 700만 원을 부과했다. 사유는 관중을 향한 비신사적인 행위라는 이유에서이다.
과거 사례에 비교하면 예상치 못한 중징계다. 단적인 예로 지난 시즌 포항 스틸러스 팬 상대로 '주먹 감자'를 날린 울산 현대의 김기희의 경우도 비슷한 사례였다. 당시 김기희는 0-0으로 경기가 끝나고 나서 포항 응원석을 향해 그 제스처를 취했다.
김기희는 상벌위에 직접 출석하는 대신 소명서를 통해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상벌위는 당시 영상과 소명서를 바탕으로 김기희의 행동이 관중을 자극한 부적절한 행동이라고 판단해서 500만원의 제재금 징계를 내렸다.
당시 상벌위는 "관중에 대한 비신사적 행위 시 5경기 이상 10경기 이하의 출장정지 또는 500만원 이상의 제재금 징계를 주도록 한 규정에 따라 최고 수위인 500만원 제재금"을 내게했다고 소병한 바 있다. 백종범의 징계는 당시 징계 수위를 훌쩍 뛰어넘은 것.
서울의 주장 기성용은 경기 직후 취재진과 만나 자신의 상태에 대해 "괜찮다"고 말하면서 서포터스의 물병 투척 사태를 맹비난했다. 그는 "어떤 의도로 물병을 던졌는지 모르겠지만, 물병을 던지는 건 위험한 행동"이라고 말했다.
사태의 시작점이 같은 팀 골키퍼 백종범의 도발이었다는 지적이 나오자 기성용은 "만약 그렇다고 친다고 해도 물병을 던질 수 있는 것인가?"라며 반문한 뒤 "그러한 물병 투척은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마찬가지로 김기희의 상황과 백종범의 상황은 전혀 다른 상황이었다. 그런데도 백종범이 도발 세리머니로 역대 최고 수준의 징계를 받은 것이다. 여기에 상벌위원장의 발언이 더욱 팬들을 분노하게 만들고 있다.
공개된 영상에서 조 위원장은 "정신을 못 차려, 아니 구단에서 나서서 지금 이거를 이런 짓이 하니까. 서울 구단이 뭐가 뭔지를 모른다"고 원색적인 비판을 했다. 이에 상벌위원인 이근호 프로선수축구선수협회장은 "(백종범 선수가) 심리적으로 아주 힘든 상황"이라고 옹호했다.
이런 백종범이 불참한 상황에 대해서 조 위원장은 "이 문제가 더 크지 않느냐, 구단 지도부에서 이 난리를 피우고 있으니"라면서 "자기들이 희생자라는 것이다. 이거 백종범이 어떻게 할래. 연맹의 디그니티(존엄성)를 무시하는 일"이라면서 공석에서 나올 수 없는 발언을 이어갔다.
애당초 이 사건서 백종범은 무조건 상벌위에 참석할 필요가 없다. 징계 대상자의 상벌의 참석 여부는 '선택' 사항이다. 김기희처럼 이전 대상자들도 소명서를 통해 입장을 밝히는 경우가 많았다. 또 서울은 심리적 불안을 호소한 백종범을 대신해 유성한 단장이 참석하기도 했다.
심지어 16일 열리는 회의 참석을 통보한 것도 14일이었다. 당초 양측의 일정을 조율해서 잡는 것과 달리 일방적으로 시간을 잡은 것으로 모자라서 시간적 여유도 부족했다. 여러모로 상벌위의 일방적인 집행이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애당초 이 사건에서 백종범이 원인을 제공했다고 해도 결국 그는 인천 관중의 물병 투척에 당한 피해자이다. 그를 가해자로 대하는 상벌위의 태도가 잘못된 것이다. 이런 상황서 상벌위를 대표하는 위원장이 선수를 '백종범이'라고 하대하면서 연맹의 회원사인 서울도 깎아내리는 모습은 팬들의 공분을 사고 있다.
디그니티를 운운하면서 선수와 구단을 깎아내린 처벌에 대해서 서울 서포터스 연합 수호신은 공식 성명문을 통해 “슈퍼매치서 상대팀 앞에서 세리머니를 한 나상호 오현규 어느 선수도 물병을 맞지 않았다"라면서 "연맹 역시 똑같이 상대 팬들 앞에서 멋진 세리머니를 보여줬던 위 선수들에게는 그 어떤 징계도 내리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이어 "연맹의 이번 징계 기준대로라면 K리그 스토리를 만들었던 수많은 세리머니들도 징계가 돼야 했었는데 그렇지 않았던 것은 당시의 연맹이 안일했던 것인지 도리어 묻고 싶다. 징계와 지탄을 받아야 할 사람들은 선수들이 아닌 오로지 물병을 투척한 당사자들이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선수 불참이 연맹의 디그니티를 무시한다면서 정작 본인이 선수와 구단에 대한 존중을 보이지 않는 모순적인 태도에 팬들의 분노는 가라앉지 않고 있다. 존중은 어디까지나 한쪽이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것이 아닌 상호 간에 오가야만 한다.
상벌위 불참으로 상벌위의 권위를 무시한다고 노하면서 상대를 깔아뭉개는 행동은 속된 말로 '꼰대'처럼 보일 뿐이다. 더군다나 이 사건서 백종범과 서울 구단은 피해자에 가깝다. 축구 경기에서 상대 관중을 향한 도발 세리머니가 처음 나온 것이 아니다.
승패가 정해진 스포츠서 적당한 선의 도발은 스토리를 위한 촉매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도발 자체를 문제시하기 보단 도발에 대처한 인천 서포터즈의 물병 투척이 사건의 진짜 원인 제공인 것이다. 서울 구단은 재심을 통해 선수 보호를 위해 나선다고 밝혔다.
과연 디그니티를 외치면서 세간의 시선을 사로잡은 상벌위가 재심에서도 선수를 향한 엄벌과 깔아뭉개기를 통해 자신들의 권위를 제대로 세울 수 있을지 주목된다. /mcadoo@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