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NC 다이노스로선 가슴 철렁한 순간이었다. 하지만 기막힌 점프 캐치로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만든 외야수 권희동(34)의 끝내기 수비가 NC를 구했다.
NC는 지난 16일 대전 한화전에서 4-3으로 승리했다. 9회말 1점차 리드 상황에 올라온 마무리투수 이용찬이 투아웃을 잘 잡았지만 박상언의 투수 앞에서 원바운드된 땅볼 타구가 글러브를 맞고 뒤로 떨어지면서 내야 안타가 됐다. 이어 김태연 상대로 던진 이용찬의 2구째 포크볼이 가운데로 몰렸다. 김태연의 배트에 맞은 타구는 좌중간 쪽으로 쭉쭉 뻗어나갔다. 홈런성 타구였지만 체공 시간이 꽤 길었고, NC 좌익수 권희동이 펜스 앞에 바짝 붙었다.
이어 타구가 떨어지는 타이밍에 맞춰 권희동이 온힘을 다해 점프했다. 공이 글러브에 쏙 들어갔고, 점프 캐치 후 몸이 기울어 뒤로 넘어졌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공을 글러브에서 빠뜨리지 않았다. 한화 측에서 포구 여부에 대한 비디오 판독을 요청했지만 원심 그대로 아웃. NC의 승리를 이끈 끝내기 슈퍼 캐치였다.
만약 권희동이 타구를 잡지 못했더라면 1루 주자가 홈에 들어오며 4-4 동점이 됐을 것이다. 김태연이 최소 2루까지 가면서 한화에 끝내기 기회를 넘겨주는 절체절명 위기 상황이 될 수 있었다. 하지만 권희동의 슈퍼 캐치가 이 모든 상황을 막았다. 2연승을 거둔 2위 NC(25승17패1무 승률 .595)는 1위 KIA(26승16패1무 승률 .619)와 격차를 1경기로 좁히며 선두 싸움을 이어갔다.
경기 후 권희동은 “마지막에 큰 타구가 나와서 넘어갈 것 같았다. 펜스에 붙어있다 타이밍에 맞춰 뛰었는데 글러브에 공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공을 확인하곤 ‘경기가 끝났구나’ 생각했다”고 끝내기 캐치 순간을 말했다.
이 수비만으로도 대단했는데 4타수 2안타 1타점 1볼넷을 기록한 타석에서 활약도 간과할 수 없었다. 1회 첫 타석부터 한화 선발 리카르도 산체스 상대로 투스트라이크 불리한 카운트에서 4구 연속 볼을 골라내며 1루에 걸어나갔다. 존 근처에 오는 공에도 배트를 내지 않는 선구안을 뽐냈다. 올 시즌 31번째 볼넷으로 공동 1위 LG 홍창기, KT 멜 로하스 주니어(이상 32개)에 이어 이 부문 3위.
3회 무사 만루 찬스에선 산체스와 풀카운트 승부를 벌였다. 6구째 몸쪽 낮은 슬라이더를 파울로 커트하더니 7구째 비슷한 코스로 들어온 직구를 밀어쳣다. 2루수 키를 넘어 우중간에 떨어지는 선제 1타점 적시타. 타이밍이 늦긴 했지만 간결한 스윙으로 몸쪽 공을 밀어낸 타격 기술이 돋보였다.
4회 좌익수 뜬공으로 물러나긴 했지만 워닝 트랙까지 가는 큼지막한 타구를 날린 권희동은 7회 장시환과 9구 승부 끝에 좌전 안타를 쳤다. 이번에도 1~2구 스트라이크로 시작했지만 파울 커트 3개에 볼 3개를 골라낸 뒤 9구째 커브를 공략해 장시환의 힘을 빼놓았다. 권희동은 “최근 개인적으로 타격감이 안 좋다고 생각했는데 타격코치님과 상의해 조정한 부분이 이번 시리즈에 많은 출루로 이어진 것 같다. 지금처럼 좋은 분위기를 계속 이어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이날까지 권희동은 올 시즌 42경기 타율 2할8푼4리(141타수 40안타) 1홈런 22타점 26득점 31볼넷 23삼진 출루율 .422 장타율 .383 OPS .805를 기록 중이다. 선구안을 앞세워 출루율 전체 6위에 올라있고, 득점권 타율도 리그 전체 4위(.405)로 결정력을 보이고 있다. 결승타도 3개. 여기에 타석당 투구수 전체 1위(4.8개)로 상대 투수들을 괴롭히고 있다. 주로 2번 타순에 나서지만 4~5번 중심 타순까지 커버하며 팀이 필요로 하는 자리에 들어가면 그에 맞는 역할을 한다. 눈에 확 뛰진 않지만 공수 양면에서 NC에 없어선 안 될 활약으로 선두 싸움에 일조하고 있다.
이런 활약을 보고 있노라면 2022년 시즌 후 FA 시장에서 찬바람을 맞은 게 믿기지 않을 정도다. FA 시즌에 부진하긴 했지만 커리어 전체로 보면 알토란 같은 외야수로 쓰임새가 많은 선수였다. 두 자릿수 홈런 3시즌에 중견수 수비도 가능한 자원이었지만 시장 반응이 냉랭했다. 보호선수 25명을 제외하고 보상선수가 발생하는 B등급으로 운신의 폭이 좁았고, 사인&트레이드도 여의치 않았다. 자칫 FA 미아가 될 수도 있었다.
결국 스프링캠프가 한창이던 지난해 2월말에야 NC와 1년간 연봉 9000만원, 옵션 3500만원으로 최대 총액 1억2500만원에 계약했다. 2018년부터 5년간 억대 연봉을 받았지만 FA 계약으로 오히려 연봉이 깎일 만큼 자존심 상하는 조건이었다. 하지만 계약 당시 권희동은 “야구를 그만두게 될 수도 있다는 생각에 마음고생이 많았던 게 사실이지만 야구를 계속할 수 있어 기쁘다. 야구에 대한 간절함을 크게 느꼈고, 힘들지만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마음을 다잡았다.
지난해 계약 후 퓨처스 팀에서 시즌을 맞이했지만 5월초 1군 합류 후 주전 좌익수 자리를 되찾았다. 96경기 타율 2할8푼5리(309타수 88안타) 7홈런 63타점 49볼넷 50삼진 출루율 .388 장타율 .405 OPS .793으로 반등했다. 팀 내 최다 10개의 결승타로 결정력을 발휘하며 가을야구 진출에 힘을 보탰다. 가성비 최고 활약을 인정받아 올해 연봉 1억5000만원에 계약했다. 전년 대비 6000만원 오른 조건인데 지금 활약이라면 이 역시도 ‘헐값’ 수준이다. FA 시련에도 무너지지 않고 반등 계기로 삼은 권희동의 존재가 갈수록 빛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