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한화 이글스를 42일 만에 위닝시리즈로 이끈 건 신인 좌완 투수 조동욱(20)이었다. 가장 최근 위닝시리즈를 이끌었던 또 다른 좌완 황준서(19)에 이어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 기록을 썼다. KBO리그에서 역대로 11번밖에 나오지 않은 진기록인데 한 해 같은 팀에서 2명이 해낸 건 처음이다.
조동욱은 지난 12일 대전 키움전에 선발등판, 6이닝 3피안타 1볼넷 1실점(비자책) 깜짝 호투로 한화의 8-3 승리를 이끌었다. 키움과의 3연전을 2승1패로 장식한 한화는 지난 3월29~31일 대전 KT전 싹쓸이에 이어 42일, 12시리즈 만에 위닝시리즈에 성공했다.
당초 이날 경기는 2군에 내려간 신인왕 문동주의 복귀전이 될 것으로 보였지만 재정비에 시간이 걸리면서 조동욱이 대체 선발로 낙점됐다. 지난해 일본 미야자키 마무리캠프 때 조동욱을 지켜봤던 최원호 한화 감독은 “주무기로 슬라이더, 체인지업이 있는데 나이에 비해서 완성도가 괜찮다. 슬라이더는 각이 있는 편이고, 체인지업을 좌타자한테도 던진다. 제구가 나쁘지 않다”고 평가했다.
이어 최 감독은 “아직 스피드가 140km 전후 정도 되는데 오늘 1군에서 던지는 것이니 긴장하면 140km대 중반까진 올라갈 것이다. 나이나 몸을 보면 구속이 향상될 여지가 충분하다. 140km대 중반만 던지면 기존 선수들과 비교해도 상당히 경쟁력 있다. (문동주 복귀시) 1군에 남으면 불펜으로 써도 괜찮을 것이다”고 기대감을 드러냈다.
최 감독 기대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조동욱이 데뷔전부터 보여줬다. 이날 직구 구속은 최고 145km, 평균 143km로 퓨처스리그에서 던질 때보다 빨랐다. 190cm 장신에서 내리꽂는 직구(42개) 중심으로 체인지업(16개), 슬라이더(12개)를 구사하며 크게 벗어나는 공 없이 안정적으로 던졌다. 3회 이용규에게 희생플라이로 내준 1점이 유일한 실점이었는데 이마저 우익수 요나단 페라자의 포구 실책이 발단으로 비자책점이었다. 탈삼진은 1개도 없었지만 좌타자 몸쪽을 집중 공략하는 등 빠르고 공격적인 템포로 맞혀 잡는 투구의 진수를 보였다.
한화 타선도 키움의 거듭된 실책으로 잡은 찬스를 놓치지 않고 8득점을 내며 조동욱의 첫 승을 도왔다. 고졸 신인 데뷔전 선발승은 1991년 롯데 김태형, 2002년 KIA 김진우, 2006년 한화 류현진, 2014년 LG 임지섭, 넥센 하영민, 2018년 삼성 양창섭, KT 김민, 2020년 KT 소형준, 삼성 허윤동, 올해 한화 황준서에 이어 조동욱까지 KBO리그 43년 역사에서 11명만이 달성한 진기록이다.
2014년, 2018년, 2020년 한 해 2명씩 기록했지만 같은 팀 소속 2명이 나온 건 올해 한화 황준서-조동욱이 처음이다. 황준서가 지난 3월31일 대전 KT전에서 5이닝 3피안타(1피홈런) 2사구 5탈삼진 1실점 호투로 데뷔전 선발승 기록을 먼저 썼고, 그로부터 42일 만에 조동욱이 같은 기록으로 계보를 이었다.
황준서와 조동욱은 같은 장충고 출신 좌완 투수로 지난해 9월 열린 2024 KBO 신인 드래프트에서 각각 1라운드 전체 1순위, 2라운드 전체 11순위로 한화에 지명됐다. 좌완 투수가 부족했던 한화는 고교 랭킹 1~2위 왼손을 모두 품었다. 고교 동기가 같은 팀에 1~2순위로 나란히 뽑힌 것도 흔치 않은데 연이어 데뷔전 선발승 진기록까지 합작했다.
즉시 전력감으로 평가된 황준서가 먼저 온 기회를 잘 살렸고, 2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돌며 때를 기다리던 조동욱도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조동욱은 “워낙 친하다 보니 준서가 굉장히 세세한 것까지 많이 조언해줬다. 마운드 거리나 공인구가 다른 것도 알려줬다. ‘퓨처스랑 1군 타자가 많이 다르냐’고 물었는데 ‘그런 것 생각하지 말고 똑같다는 생각을 하고 던져라’고 조언해준 게 도움이 됐다. 많이 긴장했는데 준서가 ‘막상 올라가면 긴장 안 될 거다’고 말해줬다. 그게 딱 맞는 말이었다”고 동기에게 고마움을 나타냈다.
42일 전 황준서의 데뷔전 선발승을 2군에서 떨어져 지켜봤던 조동욱은 “제일 친한 친구가 잘 던지니까 기분이 좋으면서도 부러웠다. 나도 저렇게 준서처럼 선발 데뷔승을 하는 상상과 이미지 트레이닝을 혼자 했었다”고 돌아봤다. 머릿속으로 그려온 데뷔전 선발승을 빠르게 현실로 이뤄냈고, 그 옆에서 누구보다 기뻐한 것도 황준서였다.
두 투수 모두 포수 최재훈과 배터리를 이뤄 첫 승을 거둔 것도 공통점이다. 최재훈은 “준서와 동욱이 모두 제구가 되고 공격적인 패턴으로 승부하는 게 똑같다. 다른 점은 준서가 직구에 포크볼 위주로 던진다면 동욱이는 슬라이더에 체인지업을 던지는 것이다. 좌타자한테 몸쪽을 잘 던진다. 준서는 볼끝이 좋아서 치기 힘들다면 동욱이는 몸쪽과 바깥쪽 왔다 갔다 던지니 타자들이 헷갈려 하는 것 같다”며 “기록을 함께한 나도 뿌듯하다. 둘 다 정말 크게 될 선수라고 생각한다. 잠시 2군에 떨어져 있지만 (문)동주도 곧 올라올 선수다. 어린 투수들이 잘해주면 우리 팀도 정말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고 자신했다. /waw@osen.co.kr
1991년 4월24일 롯데 김태형(사직 OB전 9이닝 6피안타 2볼넷 6탈삼진 1실점)
2002년 4월9일 KIA 김진우(광주 무등 현대전 6이닝 7피안타 무사사구 10탈삼진 2실점 1자책)
2006년 4월12일 한화 류현진(잠실 LG전 7⅓이닝 3피안타 1볼넷 10탈삼진 무실점)
2014년 3월30일 LG 임지섭(잠실 두산전 5이닝 3피안타 4볼넷 2탈삼진 1실점)
2014년 4월13일 넥센 하영민(대전 한화전 5이닝 3피안타 2볼넷 1탈삼진 1실점)
2018년 3월28일 삼성 양창섭(광주 KIA전 6이닝 4피안타 2볼넷 2탈삼진 무실점)
2018년 7월27일 KT 김민(수원 LG전 5이닝 2피안타 3탈삼진 3볼넷 1실점)
2020년 5월8일 KT 소형준(잠실 두산전 5이닝 5피안타 1볼넷 2탈삼진 2실점)
2020년 5월28일 삼성 허윤동(사직 롯데전 5이닝 4피안타 5볼넷 1탈삼진 무실점)
2024년 3월31일 한화 황준서(대전 KT전 5이닝 3피안타 2사구 5탈삼진 1실점)
2024년 5월12일 한화 조동욱(대전 키움전 6이닝 3피안타 1볼넷 0탈삼진 1실점 무자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