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의 능력을 지금은 60%밖에 못 쓰는 거지 않나. 그래서 내가 악당이 되는 것이다.”
염경엽 LG 트윈스 감독은 ‘천재타자’ 김범석(20)에 대한 기대가 그 누구보다 컸다. 올 시즌을 앞두고 김범석을 1군에서 확실하게 활용하고 또 거포 포수로 성장할 수 있게끔 플랜을 세워 놓았다. 하지만 김범석이 기회를 스스로 걷어찼다. 비시즌 동안 몸 관리에 실패했고 결국 스프링캠프에서 내복사근 부상까지 당하면서 낙마했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김범석을 향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개막엔트리에서는 탈락했지만 4월12일 1군으로 불러 올리면서 김범석 육성을 다시 시작했다.
차명석 단장이 2023년 신인드래프트에서 김범석을 지명 하면서 “김범석이라는 고유명사가 한국 야구의 대명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그만큼 구단과 현장의 기대감은 남다르다. 여전히 체중 관리는 의문이 남지만 천부적인 재능을 감추지는 못하고 있다.
대타로 이따금씩 기회를 받았고 해결사가 되더니 이제는 1루수 혹은 지명타자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횟수가 늘어났다. 결정적인 순간에 김범석이 역할을 해내면서 타선의 무게감이 달라지고 있다. 현재 김범석은 20경기 타율 3할6푼2리(58타수 21안타) 3홈런 16타점 OPS 1.000의 성적을 기록 중이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김범석이 자리 잡아야 할 포지션은 포수다. 염경엽 감독이 김범석을 혹독하게 몰아붙이고 스프링캠프 낙마 당시 “본인이 엄청난 찬스를 놓쳤다는 것이다. 구단, 감독, 코치 모두가 키워주겠다고 나섰는데 본인이 기회를 발로 찼다. 안타깝다. 이제 기회는 다른 선수들에게 가게 될 것이다”이라고 이례적으로 독하게 쏘아 붙인 것도 김범석이 포수로서 자리 잡아주기를 바랐기 때문.
당시 과체중 문제로 부상이 찾아왔고 지금도 김범석의 체중 관리는 구단의 화두다. 하지만 염경엽 감독은 김범석의 안방마님 프로젝트를 더 이상 뒤로 미루지 않을 예정이다. 12일 부산 사직구장에서 열리는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 포수로 선발 출장시킬 예정. 김범석이 데뷔 후 처음으로 선발 포수 마스크를 쓰게 된다. 강효종과 선발 배터리 호흡을 맞추게 된다.
염경엽 감독은 “일주일에 한 번씩 꾸준하게 포수로 내보내려고 한다. 강효종과 호흡을 맞추지만 어차피 볼배합이 힘들면 벤치에서 사인을 내주면 된다. 잡는 것만 잘 하면 되고 블로킹, 송구가 어떤지를 체크하려고 한다. 확인을 해봐야 언제쯤 완벽하게 완성이 될 수 있을지를 확인할 수 있다. 안 내보내면 확인할 수가 없고 보완점을 찾을 수도 없다”라면서 “일주일에 한 번씩 경기에 내보내면서 부족한 점을 훈련하고 다시 내보내서 얼마나 좋아졌는지 확인하는 단계를 거칠 것이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빌드업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이제 김범석은 팀의 두 번째 포수로 자리잡게 된다. 염 감독은 “김범석이 두 번째 포수로 앉아있으면 타선도 훨씬 좋아지고 (박)동원이가 쉬어도 크게 공백이 없게 된다. 내년 우리 엔트리와 뎁스가 강해지기 위한 시도라고 보면 될 것 같다”라면서 “내년에는 무조건 된다. 올 시즌 후반기에도 가능하게 되면 우리 팀은 더 강해질 수 있고 카드가 생기는 것이다. 박동원의 휴식도 주면서 구멍이 사라지는 뎁스가 된다”라고 전했다.
만약 김범석이 부상을 당하지 않았다면 개막과 동시에 이 프로젝트가 시작됐을 것이다. 그렇기에 염 감독은 아쉽다. 현재 레전드 포수 출신 박경완 코치와 혹독한 포수 훈련을 받고 있는 김범석인데, 이 과정을 묵묵히 이겨내고 포수로서 능력과 재능을 더 발휘할 수 있기를 모두가 바란다. 재능의 발휘를 위해 체중 관리는 필수다.
염경엽 감독은 “내가 할 만큼은 했다. 이제 본인이 할 일이다. 가끔 지나가면서 ‘그만 먹어라’라고 얘기는 한다”라고 웃으면서도 “1루를 보는 것을 보면 운동 센스는 뛰어난 선수다. 저런 몸에도 순발력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살을 빼면 훨씬 좋다. 자기가 갖고 있는 능력의 100% 중 지금은 살 때문에 60%밖에 못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래서 살을 빼라는 것이고 아쉬운 것이다. 본인이 해내야 한다”라고 했다.
지금의 몸 상태로 포수를 보게 되면 무릎 발목 등 부상은 달고 살 수밖에 없다는 얘기. 염경엽 감독은 “아버지와 같은 마음으로 얘기한다. 나와 오래 야구 할 것도 아니지 않나. 하지만 팀에서 선수는 재산이고 영원한 것이다”라며 “내가 미워서 얘기하는 게 아니다. 본인 잘 되라고 악당이 되고 쓴소리고 하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했다.
과연 ‘천재타자’는 ‘천재포수’로서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12일 경기에서 확인해볼 수 있다.
/jhrae@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