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이나 왕족이라는 권위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오직 머리속에 태국축구발전 뿐이다.
태국의 축구대모 ‘마담 팡’ 누알판 람삼(58) 태국축구협회장 이야기다.
황선홍 감독이 임시로 지휘한 축구대표팀은 26일 오후 9시 30분(한국시간) 태국 방콕의 라자망갈라 스타디움에서 개최된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C조 4차전’에서 이재성, 손흥민, 박진섭의 골이 터져 홈팀 태국을 3-0으로 제압했다. 한국은 3차전 서울에서 1-1 무승부의 굴욕을 되갚으며 3승 1무로 조 선두를 지켰다.
비록 한국이 대승을 거뒀지만 태국은 역시 만만치 않았다. 초반에는 오히려 태국이 우세한 경기를 펼쳤다. 조현우의 선방쇼가 아니었다면 여러 차례 실점위기에서 위험한 장면이 많았다. 전반적으로 아직은 한국과 힘의 차이가 있었지만 태국축구의 발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지난 달 새로 태국축구협회장에 부임한 ‘마담 팡’ 람삼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기에 가능한 경기력이었다. 3차전 서울 원정에서 1-1로 비긴 태국은 기대이상의 성과를 거뒀다. 람삼 태국축구협회장은 지난 경기서 한국과 비긴 선수들에게 100만 바트(3660만 원)의 보너스를 지급했다. 태국이 한국에게 승리할 경우 400만 바트(1억 4640만 원)의 승리수당을 걸어놨다.
태국의 선전에 세타 타위신 태국 총리는 한 술 더 떴다. 태국 대기업 산시리 CEO 회장을 맡고 있는 그는 “태국이 승리할 경우 포상금 900만 바트(약 3억 3273만 원)를 주겠다!”고 선언했다.
태국리그에서 뛰는 스타선수들이 보통 연봉 1억 원 정도를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전 승리가 태국국민들에게 얼마나 큰 동기부여인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포상금은 없었다. 한국은 이재성, 손흥민, 박진섭의 연속골로 태국의 꿈을 부숴버렸다. 이재성의 골까지만 해도 태국의 기대감은 계속됐다. 하지만 주장 손흥민이 이강인의 패스를 받아 슈퍼테크닉으로 골을 넣자 태국팬들도 포기했다. 박진섭의 골까지 터지자 일찌감치 자리를 뜨는 팬들이 많이 보였다.
경기 후 만난 태국 기자는 “태국선수들이 승리했다면 총리가 준 900만 바트에 이어 람삼 협회장이 준 승리수당까지 추가로 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뤄지지 않았다. 비록 한국에 승리하지 못했지만 태국국민들이 하나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경기 후 취재진이 선수들을 취재하는 믹스트존에 갑자기 람삼 회장이 등장했다. 축구협회장이 취재진과 소통하기 위해 직접 믹스트존을 찾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언론에게 할말이 있다면 기자회견을 따로 갖는 것이 보통이다. 회장이 친히 믹스트존까지 내려올 필요가 없다. 파격행보다.
람삼 회장이 등장하자 태국언론은 난리가 났다. 수십대의 카메라와 핸드폰으로 그녀의 말과 행동을 담았다. 그는 처음부터 끝까지 친절하게 질문에 답했다. 경호원과 수행비서까지 동행했지만 대기업 재벌이나 왕족이라는 권위의식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언론과 10분 이상 인터뷰에 임한 람삼 회장은 선수들을 격려한 뒤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유유히 경기장을 빠져나갔다. 무려 93%의 지지율로 태국축구협회장 자리에 올랐다는 ‘파워우먼’의 인기를 몸소 실감할 수 있었다.
반면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은 아시안컵 참사 후 아직까지도 뚜렷한 원인규명이나 대책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정 회장 역시 이날 태국 현장 VIP석에서 경기를 지켜봤다. 하지만 한국 취재진은 정 회장이 태국에 왔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현장사진을 보고 알았다. 언론과 소통은 없었다.
정몽규 회장은 람삼 회장처럼 사재를 털어 선수들에게 포상금을 지급하거나 기자들과 허심탄회하게 대화하는 등의 파격행보는 보이지 않고 있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