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師弟)가 함께 부른 개선가였다. 스승도 제자도 기록의 향연에 흠뻑 도취됐다. 토트넘 홋스퍼의 기록사의 빛깔을 한결 화사하고 선명하게 장식한 사제, 곧 안지 포스테코글루 감독(58)과 손흥민(31)이다.
공연은 10일(이하 현지 시각) 열렸고, 무대는 빌라 파크였다. 연출은 포스테코글루 감독이었고, 주역은 손흥민이었다. 손흥민의 연기는 단연 압권이었다. 1골 2어시스트! 눈부셨다. 완벽한 연기에, 세계 최대의 축구 전문 통계 사이트인 후스코어드닷컴은 만점에 가까운 평점(9.35)을 매겼다. 강렬한 몸놀림에, 애스턴 빌라는 제물로 전락했다.
당연히, 히어로는 대승(4-0)을 일구는데 선봉장으로 맹활약한 손흥민이었다. 토트넘 서포터스의 투표로 가려지는 HSBC 플레이어 오브 더 매치의 주인공으로 뽑히는 기쁨을 만끽했다. 선정 투표에서 46%의 득표율을 보였다. 2023-2024시즌에만도 벌써 여섯 번째의 영광이다. 물론 최다다. 이 부문에서, 이번 시즌 수문장으로 돋보이는 몸놀림을 펼치는 굴리엘모 비카리오(27·4회)보다 두 걸음 앞서 있다.
또 다른 기록적 측면에서도, 손흥민은 뜻깊은 발자취를 남겼다. 토트넘 역대 득점 순위에서, 마침내 다섯 손가락 안에 꼽혔다. 2015년, 토트넘에 둥지를 튼 이래 159골을 터뜨려 클리프 존스와 5위에 나란히 자리했다.
이제 그의 앞에 선 주자는 선두(280골)인 해리 케인(30·바이에른 뮌헨)을 비롯해 2위(266골) 지미 그리브스, 3위(208골) 보비 스미스, 4위(174골) 마틴 치버스 등 네 명뿐이다. 우승의 한을 씻으려 독일 분데스리가로 무대를 옮긴 케인을 빼고 나머지 3명은 모두 1960년대 토트넘의 전성기를 이끈 골잡이들이다. 토트넘에 진한 애정을 보이는 손흥민이 과연 누구까지 뛰어넘어 스퍼스의 전설로 화할지도 앞으로 관심 있게 지켜볼 만한 거리다.
포스테코글루, 연속 득점 경기 신지평 개척… 손흥민, 토트넘 역대 득점 5위로 뛰어올라
애스턴 빌라를 희생양으로 삼은 존재는 또 있다. 대승을 지휘한 포스테코글루 감독이다. 손흥민 이상으로, 깊은 발자국을 남기며 포효했다. 역시 토트넘 역사에 자신의 이름을 아로새겼다.
시즌 연속 득점 경기 부문에서,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용틀임했다. 지난해 6월 토트넘 사령탑에 앉아 이번 시즌 27경기 연속 득점을 끌어내며 새 지경을 개척했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가 1992년에 새 돛을 달고 출범한 이래, 토트넘을 이끌고 한 시즌에 이처럼 오랫동안 상대 골문을 열어젖힌 사령탑은 존재하지 않았다.
EPL 발족 이전인 풋볼리그 1부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가면, 딱 한 번 이 같은 대기록을 남긴 사령탑이 있었다. 토트넘 전설의 장에 이름을 남긴 아서 로우 감독이다. 1950-1951시즌, 로우 감독 역시 27경기 연속 득점포 가동을 지휘했다. 이 기록은 1951년 2월 3일 로커 파크에서 열린 원정 선덜랜드 AFC전에서 골을 뽑아내지 못함으로써 단절됐다. 로우 감독을 상징하는 전술인 ‘푸시 & 런(Push & Run)’의 맥이 끊긴 순간이었다.
그러나 이 시즌에, 로우 감독은 토트넘을 구단 역사상 첫 정상으로 이끌며 기록 연장 실패의 아쉬움을 씻어 냈다.
사령탑을 떠나 구단으로 외연을 넓히면, 토트넘은 39경기 연속 골맛을 봤다. 2022-2023시즌 26라운드 원정 울버햄프턴 원더러스전(2023년 3월 2일·몰리뉴 스타디움) 무득점(0-1 패)을 끝으로, 27라운드 홈 노팅엄 포리스터전(3월 11일·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부터 가동한 득점포(3-1 승)를 이번 시즌 애스턴 빌라전까지 끊임없이 이어 오고 있다.
이 기록은 EPL 역사상 2위다. 1위엔, 아스널이 올라 있다. 아스널은 2001년 5월부터 2002년 11월까지 두 시즌(2000-2001~2001-2002)에 걸쳐 55경기 동안 잇달아 상대 골문을 공략하는 데 성공했다.
이번 시즌에, 토트넘은 27경기에서 59골을 뽑아냈다. 경기당 평균 2.19골이다. 토트넘 공격력이 활활 불타올랐던 2016-2017시즌에 대비해 상당히 눈여겨볼 만한 페이스다. 당시 38경기에서 86골을 넣어 경기당 평균 2.26골을 기록한 바 있다.
하지만 2016-2017시즌 골 폭발은 대장정이 끝나기 직전에 일어났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2경기를 남기고 경기당 평균은 2.03골이었다. 그런데 37라운드 레스터 시티전 6-1과 38라운드 헐 시티 AFC전 7-1로 이어진 두 차례의 대승에 힘입어 경기당 평균은 2.26골로 수직 상승한 바 있다. 토트넘이 이 같은 막판 스퍼트를 펼친다면 신기록 탄생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오는 16일 토트넘은 크레이븐 코티지에서 원정 풀럼전을 벌인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으로선 토트넘 기록사의 새 역사를 개척할 수 있을지가 결정될 운명의 한판이다. 아울러 토트넘 역대 최고의 득점력을 폭발하기 위한 바탕을 좀 더 쌓을 수 있을지에도 눈길이 가는 일전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