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피프 천하’라 할 만하다.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 축구계에, 자신의 이름을 뚜렷하게 아로새겼다. 눈부신 용틀임으로 2024년을 자신의 한 해로 만들어 가는 아크람 아피프(27·카타르·알사드 SC)다.
2023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2024년 1월 12일~2월 10일·현지 시각) 득점왕 등극은 서막이었나 보다. 기세를 몰아 2024년 세계 국제 경기 최다 득점왕 타이틀도 움켜쥐었다. 비록 2개월간 집계일망정 여유 있게 맨 윗자리에 앉아 천하를 굽어보았다. 조국 카타르를 아시아 정상에 올려놓았을 뿐 아니라 그 자신은 아시아를 뛰어넘어 세계 으뜸의 골잡이로 자리매김했으니, 그야말로 멋진 한 해를 보내고 있는 아피프다.
선봉장 아피프의 포효에 힘입어 아시아 축구는 비상했다. 내로라하는 빼어난 골잡이들이 수두룩하게 버티는, 세계 축구의 양대 산맥인 유럽과 남미를 떨어뜨리고 하늘 높이 날았다. 1위에 오른 아피프를 필두로, 각각 2위와 3위에 자리한 아이멘 후세인(27·이라크·알쿠아 알자위야)과 야잔 알나이마트(24·요르단·알아흘리)를 앞세워 타 대륙을 압도했다.
2024년 1~2월 국제 경기 최다 득점 맨 윗자리에 올라… 선봉장으로 아시아 초강세 이끌어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지난 1~2월에 열린 국제 경기에서 나온 득점을 바탕으로 집계해 발표한 2024년 국제 경기 최다 득점 레이스 순위에서, 아피프는 넉넉한 격차를 보이며 선두에 나섰다. 9골을 터뜨리는 기염을 토한 아피프는 2위에 오른 후세인(6골)을 세 걸음 차로 멀찍이 따돌렸다(표 참조).
IFFHS는 국가대표팀 간 경기(A매치)와 주요 국제 클럽 간 경기를 합산해 이번 통계를 산출했다. 그런데 중간(1~2월) 레이스에서 선두 그룹(1~3위)을 형성한 다섯 명의 골잡이 모두 A매치에서만 골을 뽑아내는 기묘한 공통점을 보였다.
맹위를 떨친 아시아세를 이끈 아피프, 후세인, 알나이마트는 또 하나의 공통분모로 묶였다. 세 명 모두 2023 AFC 아시안컵 득점 판도를 호령했다는 상통된 점을 지녔다. 이 대회에서, 골든 부트를 차지한 아피프(8골)를 맨 위 꼭지점으로 해 후세인(6골)과 알나이마트(4골)가 삼각 구도를 형성한 바 있다. 곧 AFC 아시안컵 1~3위가 이번 통계 1~3위에 그대로 치환되는 공교로움을 자아냈다. 그만큼 아시아 축구가 당당한 위세를 보였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아피프와 알나이마트는 친선 A매치에서 각각 한 골씩을 보탰다.
2023 AFC 아시안컵에서, 아피프가 터뜨린 골 폭발력은 모두를 놀라게 했다. 특히, 돌풍을 일으켰던 요르단과 패권을 다툰 결승전에서, 홀로 3골을 잡아낸 ‘원맨쇼’는 모든 아시아 축구팬들을 아연케 했다. 결승전 해트트릭은 아시안컵 사상 최초였다. 카타르의 2연패를 이끈 아피프는 당연히 득점왕은 물론 MVP(최우수 선수)까지 휩쓸었다.
세계 축구의 신흥 기수를 다투는 각축전에서, 아시아는 아프리카를 눌렀다. 이번 통계에서, 아프리카는 에밀리오 은수예(34·적도 기니·CF 인테르시티)와 젤송 달라(27·앙골라·알와크라)가 공동 3위(5골)에 자리했다. 아시안컵과 비슷한 시기(1월 13일~2월 11일)에 열린 CAF(아프리카축구연맹) 아프리카 네이션스컵에서, 은수예와 달라는 역시 득점 판도를 휩쓴 바 있다. 은수예는 득점왕(5골)에 올랐고, 달라는 2위(4골)에 자리했었다.
세계 축구를 양분하는 유럽과 남미는 경기 수가 부족한 탓인지 10위권 내에 단 한 명도 포진하지 못했다. 올 1~2월에 유럽은 친선 경기를 빼고 타이틀이 걸린 A매치가 열리지 않았다. 또, 국제 클럽 대회도 크게 별다르지 않았다. 최고 권위의 UEFA(유럽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는 경기 일정이 없었다. 단지 UEFA 유로파리그와 UEFA 유로파 콘퍼런스리그 일부가 열렸을 뿐이다. 당연히 당금 세계 으뜸 골잡이로 꼽히는 엘링 홀란(23·맨체스터 시티), 킬리안 음바페(25·파리 생제르맹) 등은 경쟁에 뛰어들 여지가 거의 없었다. 남미도 매한가지였다.
어쨌든 아피프는 기분 좋게 2024년 초반을 보냈다. 시기와 맞물린 행운이 뒤따랐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애써 평가절하할 필요는 없을 듯싶다. 덩달아 아시아 축구의 위상도 크게 올라갔으니 두말할 나위 없지 않을까?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