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지는 것을 망각한 데 이어 또 '무절차' 논란을 자초한 대한축구협회(KFA)다. 비난이 끊이지 않고 있다.
설동식 한국축구지도자협회 회장은 28일 OSEN과 인터뷰에서 “한국은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에 성공한 ‘축구 선진국’이다. 그러나 축구 행정은 ‘후진국’보다 한참 뒤처져 있다”면서 “사면 철회 사태와 위르겐 클린스만 경질 논란에 이어 절차를 무시한 채 황선홍 감독을 선임했단 의심을 받는 KFA는 뚜렷한 책임을 지금까지 지지 않고 있다”라고 통탄했다.
3월 출범 예정인 한국축구지도자협회는 축구 지도자들이 KFA에 효과적으로 의견을 전달하고, 선수 및 지도자들의 처우 개선과 권리 보호에 앞장서는 것을 목적으로 창립됐다. 2월 11일 열린 창립총회에 300여 명의 축구지도자가 참석했다.
최근 KFA가 또다시 ‘무절차’ 논란을 자초한 행태를 보고 설동식 회장은 불만을 숨기지 않았다.
지난해 3월 정몽규 KFA 회장의 입김이 세게 작용해 ‘전술 없는 전술’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해 1년 만에 ‘경질 사태’를 만든 KFA는 지난 27일 황선홍 임시 감독 선임 역시 시스템을 무시한 채 결정했다.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지만 책임을 통감한 KFA 고위 임원은 없다.
정해성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은 황선홍 감독을 3월간 A대표팀 임시 사령탑으로 결정했다고 전하면서 스스로 중요한 절차를 ‘삭제’했단 것을 시사했다.
그에 따르면 24일 2차 회의에선 임시 감독 3명의 최종 후보 ‘우선순위’만 정해진 상태였다. 그런데 정해성 위원장은 "KFA와 소통했다”는 이유로 2차(24일)와 3차 회의(27일) 사이인 25일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 감독직 제안을 했다. 이는 위원장으로서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감독직 제안’은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 가장 중요한 단계다. 3차 회의에서 그는 KFA로부터 3명의 우선순위 후보 보고를 한 후 받은 결과를 위원들과 논의하고, 그때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 감독직 제안을 해야 했다.
설동식 회장은 “대표팀 감독을 선임하는 과정에서 위원들이 실제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분위기인지, 아니면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 의해서 (감독이) 뽑히는 건지 의문이 강하게 든다. 클린스만 선임도 엇박자로 인해 한국 축구가 호되게 당했는데, 이번(황선홍 임시 감독 선임 관련)에도 명확한 절차가 지켜지지 않았단 합리적 의심을 하게 만든다”라고 목소리 높였다.
그러면서 과거 제주 18세 이하(U-18) 팀과 서귀포 고등학교 축구부 감독직을 역임했던 설동식 회장은 “프로스포츠에서 성적이 나오지 않으면 모든 책임은 감독이 진다. 그런데 KFA는 임시 체제, 그리고 황선홍 사령탑 선임만 발표하고 클린스만 감독을 데리고 온 것에 대한 책임은 전혀 지고 있지 않다. 그저 감독, 선수들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모습에 축구인 한 사람으로서 참 안타깝다"라고 강조했다.
KFA 최종 결정권자는 정몽규 회장이다. 축구국가대표팀 운영 규정 제12조(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1항에 따르면 각급 대표팀의 감독, 코치 및 트레이너 등은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기준’에 따라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 이사회는 정몽규 회장, 그리고 이사들로 꾸려진다.
즉, 용서받지 못할 일을 KFA가 벌이면 책임을 져야 할 사람은 정몽규 회장이란 것이다. 하지만 놀랍게도 그는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황선홍 임시 감독 발표 때도 ‘최종 의결자’ 정몽규 회장은 온데간데없고 정해성 위원장이 언론에 나서 발표했다.
설동식 회장은 “KFA는 대한민국 축구를 책임지는 곳이란 것을 명심해야 한다. 그리고 더욱 투명한 행정을 해야 한다”면서 “강화위원들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어야 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하고, 외부세력에 좌지우지되면 안 된다”라고 짚었다.
그는 더 나아가 "KFA는 왜 위기 상황 때만 국내파 감독을 모실까"라며 “우리나라 지도자들을 인정하지 않는단 느낌을 강하게 받는다. 월드컵, 아시안컵 등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파울루 벤투, 클린스만 같은 외국인 감독을 선임했다. 왜 국내 지도자들에게는 기회를 주지 않다가 위기에 몰리자 한국인 감독들을 찾는 것인가. 박지성, 김민재, 황희찬 등 우수한 선수들은 한국에서 기초를 배우고 축구 선수로 성장했다. 훌륭한 선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지도자들이 한국에 많은데 왜 그걸 KFA가 간과하는지 모르겠다. 가까운 일본은 자국 감독에게 무한한 힘을 실어주고 있다”며 “세계적인 명장을 만드는 책임도 KFA에 분명히 있다”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설동식 회장은 “축구인들도 KFA를 신뢰・존경하고 싶다. 상생하는 관계이고 싶다. 이건 분명하다. 그런데 KFA가 하는 행정을 보면 심각하다”며 “앞으론 이런 일이 더는 발생하지 않았으면 하는 진심에서 목소리 낸다”라고 설명했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