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성 신임 전력강화위원장이 '허점투성이' 브리핑을 했다. 설명해야 할 부분을 교묘하게 넘어가 '무절차'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또 ‘최고 결정권자’ 정몽규 대한축구협회(KFA) 회장 이름이 나와야 할 때, 그를 언급하지 않았다.
정해성 위원장은 27일 서울 종로구에 위치한 축구회관에서 제3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를 주재한 뒤 언론 브리핑을 통해 “3월 A대표팀을 이끌 ‘임시 사령탑’으로 황선홍 감독을 낙점했다”라고 공식발표했다.
한국 축구대표팀은 오는 3월 21일 태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홈경기를 치른다. 5일 뒤인 26일엔 태국 원정 길에 오른다. 2경기를 황선홍 23세 이하(U-23)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겸직’ 상태로 맡는다.
황선홍 감독은 막중한 임무를 2가지, 그것도 동시에 맡게 됐다. 그가 이끄는 올림픽 대표팀은 당장 4월 아시아축구연맹(AFC) U-23 아시안컵을 앞두고 있다. 그는 3월 태국과 A매치 2연전 후 곧바로 U-23 팀으로 옮겨 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U-23 아시안컵은 친선 대회가 아니다. 3위 안에 들어 7월에 열리는 파리 올림픽 본선행 티켓을 따내야 하는, 무조건 성적을 내야 하는 무대다. 심지어 한국은 일본과 UAE(아랍에미리트), 중국과 B조에 속해 험난한 여정이 돼 있어 최상의 집중도가 요구된다.
그럼에도 KFA는 황선홍 감독에게 손을 내밀었다.
1차 회의 때까지 황선홍 감독은 유력 후보가 아니었다. 북중미 월드컵을 염두에 두고 당장 정식 감독을 선임할 가능성이 있다고 첫 회의 브리핑 때 정해성 위원장은 말했다. 올림픽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황선홍 감독이 주효 차기 사령탑으로 거론되지 않은 이유다.
그러나 분위기는 급변했다. 정식 감독으로 K리그 현직 감독 이름이 거론되자 KFA는 팬들의 거센 비난에 시달렸고, 결국 백지상태에서 2차 회의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리고 3월 태국과 2연전은 ‘임시 감독'에게 맡기기로 결론을 냈다. 정식 감독을 선임하기 위해선 여러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 시간이 부족하단 지적까지 맞물려 협회는 생각을 달리했다.
정해성 위원장은 이날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 지휘봉을 맡긴다고 발표하면서 1~3차 회의 내용을 차수별로 설명했다. 그는 말할 내용을 미리 적어왔지만, 절차에 대한 설명을 충분히 하지 않았다.
그는 먼저 “오늘 회의까지 총 3차례 전력강화위원회 회의가 있었다. 21일 1차 회의에서 3월에 '임시 체제로 가느냐’ 아니면 ‘대표팀 재정비를 위해 정식 대표팀 감독을 뽑느냐’ 논의가 있었다. 바로 정식 감독에게 맡겨야 한단 의견이 많아 이쪽에 무게를 두었다. 다음 2차 회의에서 후보자에 관한 논의를 이어가기로 했다”라고 1회 차 회의 내용을 간추려 설명했다.
이어 정해성 위원장은 “24일 2차 회의에서는 전력강화위원회에서 아직 후보자 논의를 구체적으로 시작하지 않았음에도 1차 회의 이후부터 특정 지도자들이 언급되면서 언론과 축구 팬들의 부정적 반응이 고조된 상태였다. 이런 상황에서는 국민들의 지지를 얻기 힘들다는 위원들의 의견이 있었다. 만약 지금 정식 감독을 뽑기로 했는데 국민들의 지지받을 수 없고, (선임된 감독이) 제대로 된 리더십을 발휘할 수 없으면 방향을 바꾸는 게 맞단 의견이 나왔다.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충분한 논의를 통해 신중하게 대표팀 감독을 뽑는 게 좋을 것 같단 의견이 나왔다”며 “2차 회의에서는 ‘임시 감독 체제’로 의견이 다시 모아졌고, 후보자 논의가 이어졌다. 임시 감독에 대해 ‘A매치 2경기를 위해 K리그 현직 감독을 선임하는 것은 무리다’, ‘주어진 시간을 생각할 때 외국인 지도자는 맞지 않다’, ‘협회 소속이거나 또는 경험이 많지만 현재 (프로)팀을 맡지 않고 있는 지도자가 선임돼야 한다’는 의견이 모아졌다. 이 자리에서 후보가 3명으로 압축됐고, 우선순위도 정해졌다. 1순위가 황선홍 감독이었다. 2차 회의 결과를 바탕으로 협회와 소통했고, 25일 황선홍 감독에게 대표팀 임시 감독직을 제안했다. 황선홍 감독은 생각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결국 26일 임시 감독 수락 답을 받았다”라고 2회 차 회의 주된 내용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정해성 위원장은 “3차 회의에서는 위원들에게 1순위 황선홍 감독의 수락 여부를 전했다. A대표팀과 올림픽 대표팀 운영 계획도 공유하고, 의견도 들었다. 다음 회의 때부터는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차기 대표팀 정식 감독 선임 논의를 이어가잔 내용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라고 마지막 3차 회의 내용을 말했다.
장황하게 차수별 회의 내용을 설명한 정해성 위원장이 밟아온 과정이 그럴듯해 보이지만 빈틈이 많다. 그는 중요한 부분을 전력강화위원들과 상의하지 않았다.
정해성 위원장 말에 따르면 24일 2차 회의에서 임시 감독 3명의 최종 후보 ‘우선순위’만 정한 상태였다. 그런데 그는 "KFA와 소통했다”는 이유로 2차와 3차 회의(27일) 사이인 25일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 감독직 제안을 했다. 이는 위원장으로서 독단적인 행동을 한 것이나 다름없다. ‘감독직 제안’은 최종 결정이 내려지기 직전 가장 중요한 단계다. 3차 회의에서 그는 KFA로부터 3명의 우선순위 후보 보고를 한 후 받은 결과를 위원들과 논의하고, 황선홍 감독에게 임시 감독직 제안을 해야 했다.
그러나 정해성 위원장은 3차 회의에서 1순위 황선홍 감독 수락 여부를 위원들에 전했다. 사실상 ‘통보’인 것이다. 자신이 수장으로 있는 위원회가 힘이 없단 것을 어리석게 증명한 셈이 됐다.
허점은 또 있다.
축구국가대표팀 운영 규정 제12조(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1항에 따르면 각급 대표팀의 감독, 코치 및 트레이너 등은 ‘국가대표 지도자 선발기준’에 따라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또는 기술발전위원회의 추천으로 '이사회'가 선임한다.
전력강화위원회는 의결 기구가 아니라 자문 기구 성격을 띠고 있다. 최종 결정권은 정몽규 회장에게 있다.
그런데 정해성 위원장은 3차 회의 후 황선홍 감독으로 'A대표팀 임시 감독' 뜻을 모은 이후 ‘최고 결정권자’ 정몽규 회장 및 이사회에 보고 했는지 여부, 과정에 대해 입도 뻥긋하지 않았다. 이는 위 운영 규정에서 언급한 ‘추천’ 단계 없이 ‘감독 선임 권한 없는’ 위원회가 감독을 결정한 것으로 비치기 충분하다. 더불어 정몽규 회장의 ‘책임 회피론’을 돕는 꼴도 됐다.
더욱 놀라운 것은 정몽규 회장 및 이사회가 감독을 최종 선임하기 때문에 정해성 위원장은 책임질 권리가 없지만 “황선홍 임시 감독 체제의 결과가 부정적 일시 전력강화위원장으로서 전적으로 책임지겠다”라고 당차게 말했다. 그의 사퇴엔 힘이 없다. 일을 벌이고 유유히 사라지는 꼴일 뿐이다. 이는 교묘하게 뒤에 숨어 있는 정몽규 회장이 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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