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차'를 무시해 '클린스만 사태'를 낳은 대한축구협회(KFA)가 '절차'에 필요한 '규정'을 앞세워 K리그 현역 감독을 빼올 가능성이 존재한다. 일관성이라곤 전혀 찾아볼 수 없는 협회의 바닥이 드러날까.
KFA는 24일 오후 축구회관에서 비공개 2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를 개최한다.
참석자는 알려지지 않았다. 정해성 신임 전력강화위원장 주재하에 최대 10명의 위원이 머리를 맞댈 것으로 보인다.
앞서 21일 열린 1차 회의엔 전력강화위원 10명 중 8명이 모습을 드러냈다. 고정운(김포FC 감독), 박주호(해설위원), 송명원(전 광주FC 수석코치), 윤덕여(세종스포츠토토 감독), 윤정환(강원FC 감독), 이상기(QMIT 대표, 전 축구선수), 이영진(전 베트남 대표팀 코치), 전경준(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위원이 참석했다. 박성배(숭실대 감독), 이미연(문경상무 감독) 위원은 소속팀 일정으로 불참했다.
KFA는 바쁘다. 대표팀이 오는 3월 21일 태국과 2026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 홈경기를 치르기 전 공석인 사령탑 자리를 채워야 하기 때문이다.
빠르면 이달 말 선임 작업이 마무리될 수 있다.
2차 회의에서 KFA는 차기 감독 후보군 추리기에 본격 착수한다.
정해성 위원장은 1차 회의 후 브리핑 때 “차기 감독에게 필요한 8가지 기준을 정했고, 국내파 감독으로 정식 선임하자는 이야기가 오갔다”라고 말했다. 일단 큰 틀만 짰단 소리다.
그러나 첫 번째 회의 전부터 이미 국내파 감독으로 꾸려진 차기 사령탑 후보군이 유출됐다. 거론된 사람은 홍명보 울산 HD 감독, 김학범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김기동 FC서울 감독, 황선홍 23살 이하(U-23) 대표팀 감독, 최용수 전 강원FC 감독 등이다.
이 중 홍명보 감독이 유력한 차기 사령탑으로 여겨지고 있다.
K리그 개막이 당장 다음 주인데 감독들을 흔드는 KFA 처사에 축구팬들은 분노하고 있다.
울산 HD 서포터스 ‘처용전사’는 23일 축구회관 앞에서 ‘트럭시위’를 벌였다. ‘대책 없는 감독 경질, 반복되는 돌려 막기, 축구 팬만 죽어난다’, ‘일주일 뒤 리그 개막, 자국 리그 무시하는 대한축구협회’ 문구를 내걸며 K리그 감독을 빼가면 안 된다고 목소리 높였다.
팬들이 이렇게까지 하는 이유는 정해성 위원장이 “(만약 K리그 현직 감독을 데리고 와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면) 구단에 직접 찾아가서 도움 요청을 해야 할 것”이라고 밝혀 불안함이 최고치를 찍었기 때문이다.
축구국가대표팀 운영 규정 제12조(감독, 코치 등의 선임) 제2항에 따르면 협회는 선임된 국가대표팀 감독 및 코치가 구단에 속해 있을 경우 당해 구단의 장에게 이를 통보하고, 소속 구단의 장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이에 응해야 한다. KFA가 마음만 먹는다면 국내 현역 프로팀 감독을 선임할 수 있단 뜻이다.
KFA는 확실한 명분을 좋아한다. 국내파 감독 선임으로 가닥을 잡은 KFA가 만약 실제로 ‘개막을 코앞에 둔’ K리그 감독을 빼온다면 운영 규정 제12조 제2항을 내세울 가능성이 99%다. 조직 내 제대로 된 ‘시스템’도 없으면서 상황이 불리하게 돌아가니 ‘규정’을 앞세워 중대한 사안을 결정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단 것이다.
‘규정’이 중요하지 않단 말이 아니다. ‘절차’를 무시한 채 정몽규 회장의 입김만으로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을 선임해 1년 만에 경질 사태를 낸 KFA가 ‘절차’에 필요한 ‘규정’을 논하는 것이 모순적이고, 가당치 않단 것이다.
만약 KFA가 정말로 K리그 현역 감독을 빼온다면 ‘일관성 없는 행정’을 인정하는 것과 같다. 자멸의 길이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