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이미 모든 틀은 짜여졌다. 어떻게든 정식 감독을 빠르게, 그리고 국내파로 선임하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대한축구협회(KFA)의 행보는 누가 봐도 '답정너(답은 정해져있고 너는 답만 하면 돼)'다.
KFA는 21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구 축구회관에서 정해성 신임 전력강화위원장 주재하에 비공개 1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를 진행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전 감독의 후임자를 찾기 위한 작업이었다.
KFA는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간)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정몽규 회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운영, 선수 관리, 근무 태도 등 대표팀 감독에게 요구하는 리더십과 지도력을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말했다.
칼을 빼 든 KFA는 이후 차기 감독 물색에 나섰다. 20일 마이클 뮐러 전력강화위원장을 대신해 정해성 위원장을 새롭게 선임하며 새 판 짜기에 돌입했다. 그와 함께할 고정운 김포 감독, 박성배 숭실대 감독, 박주호 해설위원, 전경준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등 정해성 위원장과 함께할 전력강화위원 10인도 확정됐다.
일단 정몽규 회장은 원점에서 새로 출발하겠다고 다짐했다. 그는 "종합적인 책임은 축구협회, 나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그 원인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더 자세히 해 대책을 세우겠다"라며 "차기 대표팀 감독에 관해서는 국적 등 상의된 바 없다. 전력강화위원회를 꾸린 뒤 조속히 알아보겠다"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돌아가는 상황은 전혀 그렇지 않다. 원점에서 다시 출발할 전력강화위원회가 발을 떼기도 전에 모든 게 결정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다.
이석재 부회장이 내놓은 '사견'대로 정해성 위원장이 새로 자리에 앉았다. 심지어 차기 감독 후보군이 누구인지까지 유출됐다. 전력강화위원회가 생기기도 전에 후보가 정해졌다는 것부터 비정상적이지만, 홍명보 울산 HD 감독과 김기동 FC 서울 감독, 김학범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등 프로팀을 맡고 있는 감독들이 주요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충격적이다.
실제로 정해성 위원장은 국내파 감독을 빠르게 '정식 선임'하는 데 비중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21일 브리핑에서 "일단 국내파 감독 선임에 좀 더 비중을 둬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을 위원들과 함께 나눴다"라며 "임시 감독보단 정식 감독을 뽑아야 한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라고 전했다.
이 역시 "이제 국내파 감독으로 가야한다"라고 이석재 부회장이 했던 말과 똑같은 기조다. 정해성 위원장의 선임부터 다음 감독 선임의 방향성까지 짜여진 각본대로 흘러가고 있는 모양새다.
누가 보더라도 사실상 답은 정해졌다. 앞으로 회의에서 큰 반전이 없는 한 KFA는 한국인 감독 정식 선임을 강행하고 볼 가능성이 크다. 정해성 위원장이 제시한 ▲전술적 역량 ▲육성 ▲지도자 성과 ▲경험 ▲소통 ▲리더십 ▲인적시스템 ▲성적 8가지 기준도 보기 좋은 허울에 불과할 뿐 구체적인 잣대라고 보기는 어렵다.
대체 누굴 위한 감독 선임인지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다 같이 머리를 맞대고 고심해서 최적의 사령탑을 찾아도 모자랄 판에 일부 인원들의 입맛에 맞춘 졸속 행정을 이어간다면 클린스만 사태가 되풀이될 우려가 크다. 과연 지금 찾고 있는 인물이 KFA 감독이 아니라 대한민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맞기나 한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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