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주세혁 감독은 예선에서 싸웠던 세 명의 멤버를 그대로 다시 기용했다. 출전 순서까지 똑같았다. 인도 역시 같은 선수들이 나왔지만 순서에 변화를 줬다. 노장 아찬타 샤라드 카말을 앞으로 전진 배치했고, 변칙적인 랠리 스피드를 지닌 그나나세카란 사티얀으로 하여금 3매치 승부처를 지키게 했다. 장우진(28)은 데사이 하르밋과 재대결했고, 임종훈(27·한국거래소)과 이상수(33·삼성생명)는 예선 때와 다른 상대를 만나 싸웠다. 결과는? 다르지 않았다.
한국 남자탁구대표팀이 21일 밤 벡스코 특설경기장 초피홀에서 열린 BNK부산은행 2024 부산세계탁구선수권대회 남자단체 16강전에서 인도를 3대 0으로 완파하고 8강으로 갔다. 예선라운드 한국과 같은 5조에서 3위로 본선에 오른 인도는 앞서 치러진 24강전에서 2조 2위 카자흐스탄과의 풀-매치접전을 이겨냈으나, 다시 만난 한국과의 승부에서는 결과를 바꾸지 못했다. 예선 때와 달라진 게 있다면 3매치에서 따낸 한 게임을 2매치에서 가져갔다는 정도뿐이다. 인도는 노장 카말 아찬타 혼자만이 한국전에서 매치마다 한 게임씩을 따냈다.
데사이 하르밋과 첫 매치에서 다시 만난 장우진은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활발한 공격 전환으로 상대를 압박했다. 데사이 하르밋도 만만치 않았다. 포어사이드 깊은 코스를 공략해 장우진의 발을 묶었다. 1, 2게임은 치열한 시소게임 끝에 듀스까지 가서야 승부가 났다. 다행히 이겨낸 쪽은 장우진이었다. 막판 집중력을 끝까지 유지한 장우진이 2연속 게임포인트를 따내며 포효했다. 3게임도 초반은 접전 양상이었지만 중반 이후 장우진이 앞서갔다. 아까운 게임을 연속으로 내주고 힘이 빠진 데사이 하르밋을 장우진이 몰아쳐 승리했다.
2매치는 임종훈과 아찬타 샤라드 카말이 대결했다. 인도가 41세 노장 아찬타 샤라드 카말을 2매치에 낸 것은 국제무대 상대전적에서 임종훈과 카말 아찬타가 1승 1패로 대등한 데이터를 감안한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기록은 기록일 뿐 임종훈은 평정심을 유지했다. 1, 2게임은 완벽한 임종훈의 페이스였다. 강한 공격으로 상대를 압박하며 승리했다. 카말 아찬타의 노련미는 3게임에서 잠시 빛났다. 힘 대결 대신 코스공략으로 임종훈의 실점을 이끌어내며 11-8로 승리했다. 하지만 추격은 거기까지였다. 4게임에서는 임종훈의 결정타가 적재적소에서 작렬했다. 카말 아찬타의 노련미는 임종훈의 파상공격 앞에서 무용지물이 됐다.
마지막이 된 3매치는 스피드와 스피드의 싸움이었다. 테이블 가까이에서 빠른 공격으로 상대의 기를 빼는 이상수, 독특한 박자의 변칙 스피드로 상대를 흔드는 그나나세카란 사티얀이 팽팽하게 마주 섰다. 하지만 팽팽한 흐름이 오래 가지는 않았다. 변칙 공격으로 정통파를 흔드는 데는 한계가 있었다. 섬세한 기술로 랠리를 장악한 이상수가 곧 경기를 지배했다. 특히 4-8에서 연속 7득점하면서 일순간에 모든 전세를 역전시킨 2게임은 압권이었다. 그나나세카란은 전의를 상실한 채 마지막 게임에서 단 2점을 따는 것으로 만족했다.
경기를 마친 뒤 공동취재구역에서 취재진을 만난 선수들은 “아직 배가 고프다”고 입을 모았다. 첫 매치 접전을 승리해 기선을 제압한 장우진은 “예선 때와 같은 상대를 다시 만나 심리적으로 안정감을 가져가는 게 중요했다. 기술적으로는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팀원들과 우리 팬 분들을 믿고 편하게 하려고 노력했다. 이제 8강인데 어느 팀이 올라오든 잘 싸워서 중국과 만날 것이다. 우리 팀 모두 배가 고프다. 배가 터질 만큼 꽉꽉 채워 넣겠다는 마음이다”라고 남은 일정에 대한 각오를 환한 표정으로 전했다.
예선 인도전을 앞두고 악몽을 꾸었다던 임종훈은 정작 본선에서는 “잘 잤다”고 말했다. “카말 선수가 왼손을 상대로 잘 하는데다 상대전적도 1승 1패여서 나올 것으로 예상했는데, 그대로였다. 조금 어려울 수도 있었겠지만 감독님과 함께 단점을 많이 보완한 것이 큰 힘이 됐다. 올림픽 티켓을 땄지만 애초부터 우리 목표는 더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당장은 큰 의미를 두지 않겠다. 저 역시 배가 고프고, 잘 준비해서 남은 시합 잘 해내겠다”고 말했다.
이상수는 예선에 이어 다시 마침표를 찍었다. 이날부터 시작된 WTT와의 공식 인터뷰도 맡았다. “오늘 경기도 앞에서 다 이겨줬기 때문에 더 편하게 한 것도 있었다. 제가 생각해도 시원한 경기력이 자주 나왔다. 이 경기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할 것 같다. 그리고 늘 하는 말이지만 관중의 응원은 정말로 큰 힘이 된다. 응원에 보답하기 위해서라도 더욱 잘하고 싶다. 우리 선수들도 잘 준비하고 있고, 감독 코치님들도 정말 좋은 얘기 많이 해주신다. 지금 하는 대로 계속하다 보면 충분히 좋은 성과가 나올 수 있다고 믿는다”고 말했다.
이로써 한국 남자대표팀은 앞서 경기를 치른 여자대표팀과 마찬가지로 8강에 진출하면서 2024 파리올림픽 단체전 출전권을 확보했다. 23일 이어질 8강전에서는 계속 경계해왔던 덴마크와 대결하게 됐다. 주세혁 남자대표팀 감독은 “한 명의 확실한 에이스 한 명으로 버티는 슬로베니아보다는 전 멤버 기량이 고른 덴마크가 까다로운 상대여서 올라올 것으로 예상했다. 유럽 선수들과의 경기는 늘 많은 변수가 따르는데 어차피 피할 수 없는 싸움이라면 적극적인 분석과 대비가 필요할 것”이라며 철저한 준비를 예고했다.
8강전에서도 명승부를 예고한 남자대표팀은 23일 오전 11시 덴마크를 상대로 경기를 치른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