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도 제대로 된 절차라곤 없는 모양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경질됐지만, 대한축구협회(KFA)의 일처리는 그대로다. 이러다가는 제2의 클린스만, 제2의 강남스타일 사태가 또 나올 수밖에 없다.
KFA는 지난 16일(이하 한국시간)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정몽규 회장이 직접 모습을 드러내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운영, 선수 관리, 근무 태도 등 대표팀 감독에게 요구하는 지도력을 리더십과 보여주지 못했다"라고 전했다.
결국 지난해 3월 부임했던 클린스만 감독은 1년도 채우지 못하고 경질됐다. 그는 한국 축구가 전임제 감독을 시작한 뒤 가장 빨리 잘린 감독이 됐다.
모두가 예상했던 결과다. 클린스만 감독은 언제나 우승을 목표로 내걸었던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졸전 끝에 4강 탈락했다. 손흥민(토트넘)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황희찬(울버햄튼) 등 황금 세대를 데리고 단 한 번도 상대를 압도하지 못했다. 여기에 선수단 불화까지 터지면서 선수단 관리에도 실패했다는 비판을 들었다.
이제 KFA가 직면한 다음 과제는 새로운 감독 선임이다. 당장 오는 3월 태국과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 2차 예선이 코앞이기에 시간이 많지 않다.
정몽규 회장은 원점에서 새로 출발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클린스만 감독 경질을 알린 뒤 "차기 대표팀 감독에 관해서는 국적 등 상의된 바 없다. 전력강화위원회를 꾸린 뒤 조속히 알아보겠다"라고 전했다.
전력강화위원회도 빠르게 구성됐다. KFA는 20일 신임 국가대표 전력강화위원장에 정해성 협회 대회위원장을 선임했다. 고정운 김포 감독, 박성배 숭실대 감독, 박주호 해설위원, 전경준 프로축구연맹 기술위원장 등 정해성 위원장과 함께할 전력강화위원 10인도 확정됐다.
전력강화위원회는 곧바로 작업에 착수한다. KFA는 "정 신임 위원장은 21일 1차 국가대표전력강화위원회 회의를 소집할 예정이다. 그는 이날 1차 전력강화위원회 회의 개최 후 취임 소감 및 대표팀 운영 계획을 회의 내용과 함께 브리핑할 예정"이라고 알렸다.
이로써 대표팀 감독 선임에 관여할 인물들이 누가 될지는 정해졌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하다. KFA의 발표엔 '누가'만 있을 뿐이지 '왜', '어떻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
KFA는 정해성 위원장을 적임자로 선택한 이유를 설명하지 않았다. 국가대표팀 지도자 경험과 대표팀 코치 이력 정도를 소개한 게 전부기에 물음표가 떠오를 수밖에 없다. 전임자였던 마이클 뮐러 위원장을 앉히며 설명했던 것과는 너무나 대조된다.
정해성 위원장이 뽑은 전력강화위원 10명도 마찬가지다. 현역 프로 감독과 대학 감독은 물론이고 IT 기업 대표, 은퇴 후 해설위원으로 변신한 박주호 등 다양한 인물들로 채웠지만, 선임 기준이나 기대하는 바는 하나도 알 수 없다. 과연 이들이 대표팀 운영에 얼마나 큰 도움과 적절한 방향성을 제시할 수 있을지 궁금할 따름이다.
심지어 차기 감독 후보군이 누구인지까지 유출됐다. 사실 전력강화위원회가 생기기도 전에 후보가 정해졌다는 것부터 비정상적이다. 하지만 누가 물망에 올랐는지를 살펴보면 더욱 충격이 크다.
KFA 내부에서는 선수단 내홍을 정리하고자 국내파 감독을 선호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오고 있다. 실제로 들려오는 후보군은 홍명보 울산 HD 감독과 김기동 FC 서울 감독, 김학범 제주 유나이티드 감독, 휴식 중인 최용수 감독 등이다. 개막을 눈앞에 둔 K리그 감독들을 빼올 수도 있다는 것. 모두 국내파 위주로 추린 명분도 기준도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정몽규 회장이 언급했던 '정당한 프로세스'가 있기나 한 건지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는 "클린스만 감독도 벤투 감독 선임 때와 마찬가지로 정당한 프로세스를 진행했다"라고 밝혔으나 현재로서는 모두 깜깜이 프로세스일 뿐이다.
이러다가는 클린스만 사태가 되풀이될 가능성이 크다. 지난해 2월 뮐러 위원장은 클린스만 감독을 선택한 이유를 묻자 "한국적인 요소를 겸비한 축구가 필요하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처럼 말이다"라며 어처구니없는 답변만 내놨다. KFA 내에서 상식적인 프로세스가 실종됐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대목이었다.
이제 클린스만 감독은 떠났다. 큰 실패를 겪은 KFA도 정신 차리고 바뀌어야 할 때다. 국적이 한국인지 아닌지에 신경 쓰고 있을 이유가 없다.
가장 중요한 건 투명하고 확실한 프로세스다. 어차피 결과는 현재 컨트롤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니다. 객관적인 기준을 바탕으로 체계적으로 다음 감독을 선임해야만 미래로 나아갈 수 있다. 강남스타일이 아니라 정확한 선임 이유를 밝힐 수 있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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