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질랜드 국가대표 티모시 초이(16·한국명 최준혁)는 이번 대회에 출전하는 남녀 각 40개국 선수들 중에서 한국 남녀대표팀을 제외한 유일한 한국계 선수다. 2007년 9월생으로 아직 만 16세의 어린 나이지만, 당당히 국가대표로 선발돼 모국 땅을 밟았다. 최준혁은 대회 개막 이틀을 앞둔 14일 오전 부친 최윤철 씨와 함께 김해국제공항을 통해 부산에 입성했다. 아직은 낯선 경기장이 부자를 반겼다.
최준혁은 뉴질랜드 최대도시 오클랜드에서 나고 자랐다. 탁구는 8세 무렵 거주지 인근 시설에서 시작했다가 재질이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선수의 길로 들어섰다고 한다. 인상적인 것은 그의 부친 최윤철 씨가 바로 대전 한남대학교 탁구동아리 ‘FIRST’의 창립 멤버였다는 것. 엘리트 경기인 출신은 아니지만 동아리를 직접 창설할 만큼 탁구에 적극적인 윤철 씨가 아들의 탁구를 전폭적으로 지지했으리라는 것은 어렵지 않게 짐작할 만하다.
실제로 최윤철 씨는 아들의 성장을 위해 다양하게 노력했다. 그는 대학 시절 열혈 동호인으로서 한남대 탁구부의 엘리트 선수들과도 돈독한 인연을 이어왔다. 2002년 뉴질랜드로 이민한 윤철 씨는 준혁 선수가 탁구를 시작한 이후로는 거의 매년 겨울방학(뉴질랜드는 여름)마다 아들과 함께 대전동산중·고 체육관을 찾아 약 3주간의 훈련을 하고 돌아갔는데, 대전동산중·고는 바로 한남대 출신 권오신 감독이 이끄는 국내 주니어 최강팀이다. 수많은 재능들이 모여 있는 이 팀에서의 훈련은 기량 향상은 물론 선수로서의 의욕도 부채질했다. 뉴질랜드로 돌아간 최준혁이 꾸준히 탁구에 매진할 수 있는 힘을 제공했다.
최준혁의 성장가도는 가팔랐다. 10세가 되던 2018년에 이미 13세 이하 호프스 대표가 됐다. 2019년에는 U13은 물론 U15 대회 챔피언에도 올랐으며, 2020년부터 2022년까지는 당연히 뉴질랜드 카데트 대표로 활약했다. 이 기간 동안 최준혁은 카데트와 주니어(U19)를 넘나들며 수많은 전적을 쌓아올렸다. 그의 지나온 활약상은 2023년 뉴질랜드 국내 랭킹 현황만 봐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U17 1위, U19 1위, U21 1위, 시니어 포함 오픈랭킹 남자 전체 5위다. 뉴질랜드의 랭킹 시스템은 포인트를 누적하는 방식이며, 은퇴 선수들이 오랜 누적 포인트로 상위권에 남아있는 오픈 랭킹도 최준혁의 실질적인 1위권에 가깝다.
기량을 따라 지난해 ITTF 오세아니아 유스&시니어 챔피언십에도 출전했던 최준혁은 자연스럽게 이번 세계선수권대회 국가대표로도 선발됐다. 그리고 동료들과 함께 부산에 왔다. 최준혁은 뉴질랜드를 대표해 이번 대회에 참가하게 된 데 대해 어린 나이답지 않은 의젓한 소감을 밝혔다. 뉴질랜드에서 나고 자랐지만 아빠와 함께 자주 한국을 왕래한 까닭인지 한국어 발음이 명확하고 또렷했다. “이렇게 큰 시합은 처음이어서 영광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멋지게 만들어진 경기장을 보니 더욱 긴장이 되지만 많이 배워갈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런데 뉴질랜드 남자대표팀은 지난달 있었던 조 추첨식에서 하필 예선 3조에 배정됐다. 3조는 바로 한국대표팀이 속해있는 그룹이다. 최준혁은 조 1위가 유력한 한국의 탁구선배들과 ‘꿈같은’ 일전을 벌이게 됐다. “형들과 세계대회 경기장에서 시합을 하게 될 거라는 상상은 해본 적이 없어요. 솔직히 이길 자신도 없고요. 그래도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겁니다. 이기긴 어렵겠지만 열심히 하다보면 조금이라도 배우는 점이 있을 테니까요. 많이 가르쳐주십시오.”
사실 뉴질랜드는 소위 말하는 탁구강국은 아니다. 한국만큼 탁구가 활성화되지는 못했다. 세계대회에서도 예전 같으면 디비전이 달라 만나기 어려웠을 것이다. 한국과의 대전 기회는 세계선수권대회 방식이 파이널스 시스템으로 바뀌면서 성사될 수 있었다. ITTF가 오세아니아 지역 출전권을 늘렸고, 호주와 함께 뉴질랜드가 대륙 대표로 선발된 것이다. 아직은 약체 취급을 받는 뉴질랜드의 국가대표로서 최준혁은 책임감도 갖고 있다.
“뉴질랜드의 이번 대회 목표는 예선에서 1승을 하는 것입니다. 비슷한 레벨인 칠레 선수들을 분석하고 대비해왔어요. 만약 승리한다면 기세를 몰아서 폴란드에도 도전해볼 수 있지 않을까요? 쉽지만은 않겠지만 3위로 본선에 가고 싶어요. 본선에 못가더라도 세계적인 선수들과 싸워본 이번 대회는 뉴질랜드 탁구발전에 아주 중요한 계기가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들과 함께 부산을 찾은 아빠 최윤철 씨의 생각도 다르지 않다. 뉴질랜드 대표팀의 전력상 현실적으로는 1승도 쉽지 않을 전망이지만, 아직 어린 만큼 무한한 가능성과 잠재력을 지닌 최준혁 입장에서 중요한 것이 당장의 결과만은 아닐 것이다. “승패를 떠나 뉴질랜드 선수들이 의미 있는 자극을 받는 대회가 되길 바란다”는 것이 아빠의 소망이다. 그 선봉에 아들이 서있다. 이래저래 이번 대회는 최준혁의 탁구미래에 중요한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하다.
끝으로 최준혁에게 선수로서의 꿈을 물었는데 또 한 번 당찬 대답이 돌아왔다. “꾸준한 연습을 통해 최상의 실력을 쌓은 다음 유럽리그에서 뛰고 싶습니다.” 옆에서 듣고 있던 아빠 최윤철 씨도 싱긋 웃으며 한 마디를 보탰다. “어쩌면 한국의 실업팀에서 뛸 기회도 있지 않을까?” 만 16세 최준혁(티모시 초이)이 뉴질랜드 남자탁구 국가대표로 한국의 탁구인들에게 첫 선을 보인다. 뉴질랜드와 한국의 경기는 개막식이 열리는 17일 저녁 8시 벡스코 특설경기장 초피홀에서 열린다. /what@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