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알고 나를 알면, 백 번 싸워도 위태하지 않다(知彼知己 百戰不殆·지피지기 백전불태). 적을 알지 못하고 나를 알면, 한 번 이기고 한 번 진다. 적을 알지 못하고 나도 알지 못하면, 싸울 때마다 반드시 패한다.”
병서(兵書) 가운데 으뜸으로 꼽히는 『손자병법』(『孫子兵法』) 「모공편」(「謀攻篇」)에 나오는 유명한 글귀다. 고대 최고 병가(兵家)로 손꼽히는 손자의 사상이 함축돼 있다. 현대에 이르러서도 동서양을 막론하고 스포츠를 비롯해 각종 인간사에서 회자하며 두루 통용된다.
한국 축구 국가대표팀을 이끌고 전장에 – 2023 카타르 AFC(아시아축구연맹) 아시안컵- 나선 장수인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59)은 어떠했을까? 대회 내내 무색무취의 전략과 전술로 일관한 클린스만 감독에게 대입하면, 필패(必敗)는 필연의 수순이었다. 적을 알지 못했음은 고사하고 나 자신도 알지 못했으니, 어찌 패배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겠는가.
FIFA(국제축구연맹)가 이 같은 ‘진리’를 간접적으로 엿보여 줬다. 자신이 거느린 병졸(선수)의 능력조차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장수(감독)가 승리를 갈구함은 어불성설임을 FIFA가 깨닫게 해 줬다.
양현준을 높게 평가한 FIFA 對 양현준을 기껏 교체 멤버로 활용한 클린스만
FIFA가 누리집 뉴스난에 게재한 ‘올림픽을 열망하는 아시안컵 스타 5명(Five Asian Cup stars with Olympic aspirations)’을 보면 클린스만 감독의 무능에 다시 한번 화가 치민다. FIFA는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눈길을 끈 U-23 선수 5명을 집중 조명한다”라고 운을 뗀 뒤, 그 가운데 한 명으로 한국의 양현준(21·셀틱)을 손꼽았다. 다른 4명은 자셈 가베르(카타르), 스즈키 자이온(일본), 마르셀리노 페르디난(인도네시아), 압둘라 라디프(사우디아라비아)였다.
양현준을 두 번째로 적시한 FIFA는 “한국 국가대표팀에서 유명한 드리블러는 손흥민과 황희찬이다. 그런데 ‘태극 전사(Taegeuk Warriors)’ 가운데엔, 재능 있는 드리블러가 또 있다. 그의 이름은 양현준이다”라고 소개했다.
FIFA는 한국 공격의 주축인 손흥민(31·토트넘 홋스퍼)과 황희찬(28·울버햄프턴 원더러스)과 대비해 양현준을 분석해 눈길을 끌었다. 아울러 2024 파리 올림픽을 기약하는 한국 올림픽대표팀의 선봉장으로 활약하리라 내다봤다.
“손흥민은 빠른 돌파에 능하며 수비 뒤 공간으로 공을 몰고 들어가기를 좋아하는 폭발적 드리블러다. 황희찬은 1:1 상황에서 역동적 움직임으로 수비수를 흔드는 데 강점이 있다. 이에 비해 양현준은 좁은 공간에서 활동하는 데 탁월하며, 뛰어난 컨트롤과 균형으로 종종 마크맨의 집중 시선을 피해 수비진을 뚫는다. 이 흥미로운 윙어는 4월에 다시 카타르로 돌아온다. 2024 카타르 AFC U-23 아시안컵에서, 10회 연속 올림픽 본선 진출을 갈망하며 도전의 여정에 나서는 한국을 이끌 것으로 예상된다.”
이처럼 FIFA는 양현준이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쳤다며 그의 장래성을 높게 평가했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극히 대조적이었다. 마지못해 양현준을 쓰는 듯한 인상마저 내풍긴 클린스만 감독이다.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양현준은 단 2경기에서만 그라운드를 밟았다. 8강 호주전(2-1 승리)과 4강 요르단전(0-2 패배)에 모습을 비췄다. 그것도 후반 막판 교체돼 투입됐다. 호주전에선 후반 40분 김태환을, 요르단전에선 후반 36분 이재성을 각각 대신해 들어갔다.
그러나 인상 깊은 몸놀림을 보였다. 과감하면서도 유려한 드리블로 꽉 막혔던 공격의 숨통을 틔웠다. 특히 호주전에선, 역전승의 숨은 기폭제였다. 후반 추가 시간 6분 황희찬의 페널티킥 동점골과 연장 전반 14분 손흥민의 프리킥 결승골이 잇달아 터질 수 있었던 데엔, 기록상으로는 나타나지 않은 양현준의 활기찬 몸놀림이 하나의 바탕이 됐다.
이런 숨은 진주를 클린스만 감독은 찾아내지 못했다. 아니, 원천적으로 불가능했을지 모른다. ‘재택 근무’에 치중했으니 어떻게 잠재력 있는 선수를 캐내 갈고닦을 수 있었겠는가. 오로지 역량이 표출된 선수들에게만 눈길을 줬고, 당연히 그들만 혹사하며 쓸 수밖에 없었다. 휘하 병사의 능력을 완벽에 가깝게 파악하고 활용해도 적을 모르면 50%의 승리밖에 담보되지 않는 판에, 그마저도 도외시했으니 필패는 불을 보듯 분명하고 뻔했다. 카타르에서 다시 걸린 ‘아시안컵의 저주’로 말미암아 당한 ‘요르단전 참패’를 자초한 클린스만 감독이었다.
원죄 짊어진 정몽규 회장은 장막 뒤에서 나와 태도 표명해야
“벌은 윗사람에게 주고, 상은 아랫사람에게 준다(誅大賞小·주대상소).”
축구는 단체 스포츠다. 톱니바퀴처럼 원활하게 돌아가는 유기적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선, 상벌은 공정하고 엄격해야 한다. 엄하고 바른 규율은 응집력을 최대화하는 하나의 방편이기도 하다. 고대 통치자들은 윗사람에겐 철저하게 냉정했고 아랫사람에겐 용기를 북돋우는 ‘채찍과 당근’ 전략을 병용했다.
‘아시안컵 참사’가 끝난 지도 일주일을 넘어섰다. 그런데도 대한축구협회(KFA)는 이렇다 할 태도를 표명하지 않고 있다. 시스템 선임을 배제하고 독단의 아집으로 클린스만 감독을 사령탑에 낙점함으로써 ‘원죄’를 짊어진 정몽규 KFA 회장은 아예 장막 속으로 숨은 듯 모습조차 보이지 않는다.
그 사이 클린스만 감독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거주하는 미국으로 돌아갔다. 국가대표팀이 돌아와 가진 기자회견에서도 사령탑 고수를 내비쳤던 염치를 모르는 태도에서, 어쩌면 예견됐던 ‘자택행’이었다.
과연 정 회장과 KFA의 속내는 무엇인가? 해임을 원하는 국민청원까지 나왔을 만치 사령탑 퇴진을 원하는 여론을 정녕 모르지는 않을 텐데 말이다. 여론이 잠잠해지기만을 바라며 그 향배를 관망할 때가 아닌, 퇴진의 회초리를 들어야 함을 애써 외면하려 하는 자세가 볼썽사납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