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보여주기식' 회의였다.
대한축구협회(KFA)는 13일 2023카타르아시안컵 리뷰를 시작으로 대회 전반적인 사안에 대한 ‘자유 토론 방식’의 회의를 열였다.
이 자리에 김정배 상근부회장, 장외룡, 이석재, 최영일 부회장, 마이클뮐러 전력강화위원장, 정해성 대회위원장, 이정민 심판위원장, 이임생 기술위원장, 황보관 기술본부장, 전한진 경영본부장이 참석했다.
KFA 최고 권위자 정몽규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지난 7일 한국이 아시안컵 4강전에서 요르단에 0-2로 패한 직후부터 순식간에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설이 대두된 상황에서 열린 ‘첫 회의’에 정몽규 회장은 참석하지 않았다. 사실상 이날 KFA는 보여주기식 회의를 한 것이나 다름없다.
KFA는 “이번 주 내로 전력강회위원회가 열릴 것이다. 최종적인 결정사항을 조속히 발표하도록 하겠다”라고 설명했다.
정몽규 회장은 들끓는 민심을 무시하고 시간만 벌고 있다. 협회 수장으로 이날 회의에 참석하고, 전력강화위원회도 함께하면서 최대한 여러 차례 클린스만 감독의 경질 여부 사안에 대해 고심해야 하지만 그가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회의 패싱’이다.
‘핵심 인물’ 클린스만 감독은 아예 한국에 없다. 그는 지난 10일 일찌감치 미국으로 휴가를 떠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요르단전 후 쏟아지는 비난에 일단 “한국 가서 분석하겠다”라고 답했다. 손흥민(토트넘),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황희찬(울버햄튼),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등 ‘역대급 스쿼드’로 대회에 임했지만 요르단에 패하면서 클린스만 감독이 ‘전술 없는 전술’을 인정하고 반성의 시간을 가지진 않을까 일말의 기대를 하게 만드는 발언이었다.
이는 누가 시키지 않아도 모두가 실망하는 결과를 내고 돌아온 감독으로서 지켜야 하는 최소한의 예의다. 그러나 클린스만 감독은 일단 가족들이 있는 미국으로 홀연히 떠났다.
클린스만 감독은 8일 입국하면서 "일단 다음 주 출국 할 예정”이라고 알렸으나 예고했던 것보다 빠르게 10일 한국을 떠났다. 아시안컵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자신을 향한 비난을 객관적으로 살펴봐야 하는 중요한 시점에서 그는 휴가를 선택했다.
성난 민심을 모를 리 없는 KFA는 팬들을 위해서라도 클린스만의 미국행을 막아 세워야 했지만 명분이 없었다. 그동안 협회는 '아시안컵 우승컵만 가지고 오면 된다'는 생각으로 클린스만 감독의 ‘재택근무’를 눈감아줬다. 그런 협회와 일을 해온 클린스만은 이번에도 미국으로 어렵지 않게 떠났다. 협회가 자초한 일이다.
가겠다는 클린스만 감독을 잡지 못한 데 이어 대회 직후 오고 가는 말이 가장 많을 첫 번째 회의도 제대로 개최하지 못하면서 KFA의 무능함은 바닥을 드러냈다.
이날 회의에 클린스만 감독과 정몽규 회장이 불참한 가운데, 김정배 상근부회장은 참석했지만 회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갔을지 의문이다.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인 그는 축구 현장을 가까이 한 적 없는 '비경기인 출신'이다.
김정배 상근부회장은 지난해 5월 '사면 철회 사퇴'에 따른 이사진 전면 개편을 통해 KFA에 발을 들여놓았다. 당시 협회는 경기인이 주로 맡았던 전무이사직을 폐지하고 상근부회장 제도를 도입했다. "이사회가 축구계 인사들만이 아닌 축구를 사랑하는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참여하는 ‘확장형 구조’로 만들고자 했다”는 게 정몽규 회장의 설명이었다.
그러나 전임 '경기인 출신' 전무이사들과 달리 행정가의 길만 걸어왔던 김정배 상근부회장이 과연 현장의 목소리를 잘 이해함과 동시에 잘못된 목소리를 거를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 끊임없이 뒤따랐다.
중요한 회의 자리에 정몽규 회장 없이 김정배 상근부회장만 나선 것은 사실상 '알맹이' 없는 회의였다고 볼 수 있다. KFA는 스스로 추락의 길을 걷고 있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