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들의 분노 이유를 전혀 모른다.
위르겐 클린스만(60)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8일 오후 9시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클린스만 감독과 코치진, 대한축구협회(KFA) 직원들을 비롯해 조현우, 송범근, 김영권, 김주성, 설영우, 김태환, 이기제, 김진수, 황인범, 박진섭, 이순민, 문선민, 김준홍 13명의 선수가 귀국했다.
'클린스만호'는 7일 0시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치른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0-2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로써 클린스만호는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부임부터 목표는 아시아 정상이라고 큰소리쳐왔지만,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인천국제공항을 통해 다시 한국 땅을 밟은 클린스만 감독은 평소대로 미소를 띤 채 게이트를 통과했다.
한국 축구, 아니, 아시아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졸전이었다. 경고 누적으로 김민재가 빠졌다고 하지만, 한국의 수비와 경기력은 처참했다.
무사 알타마리, 야잔 알나이마트는 일단 공을 잡으면 한국 수비가 2~3명 붙어도 과감한 드리블을 시도했고 차례로 수비수들을 쓰러뜨렸다. 한국은 전반에만 슈팅 12개를 얻어맞았다. 조현우의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두세 골을 내줘도 이상하지 않았던 전반전이다.
후반전은 더 심각했다. 후반 8분 박용우의 패스 실수로 야잔 알나이마트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후반 21분엔 황인범이 중원에서 공을 뺏기면서 무사 알타마리에게 추가 골까지 얻어맞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첫 번째 실점을 허용한 후인 후반 11분 박용우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조규성을 투입했다. 후반 36분에는 양현준과 정우영을 투입하며 황희찬, 이재성을 빼줬다.
16강, 8강과 같은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경기는 그대로 0-2 패배로 막을 내렸다. '이번에야말로 우승한다'라고 자부했던 클린스만호의 여정은 보다 일찍 마무리됐다.
한국 선수단은 역대 최강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하다. 공격에는 '토트넘 홋스퍼 주장' 손흥민, '파리 생제르맹(PSG) 주전' 이강인이 있고 수비에는 세계 정상급 수비수 김민재가 버티고 있다. 이 선수들 이외에도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이번 시즌 최다 득점자 황희찬, VfB 슈투트가르트의 10번 정우영, FSV 마인츠 05의 이재성 등 유럽 무대 소속팀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선수들이 즐비하다.
한국 축구 전성기를 맞았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런 화려한 라인업으로도 우승에 실패한, 4강에서 한 수 아래로 평가받던 요르단에 패한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 축구 팬들이 화가 난 이유를 알겠냐는 질문에 "정확한 이유는 잘 모르겠다"라고 당당히 답했다.
지난 2019년 대회 당시 파울루 벤투 감독의 '벤투호'는 카타르에 패배하며 8강에서 탈락했다. 당시에도 국민들은 분노했지만, 아쉬움이 많이 섞인 분노였다. 벤투 감독은 아시아 정복에는 실패했을지언정 가고자 하는 '방향성'은 명확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물론 '벤투호'에도 시행착오는 많았다. 선수 발탁부터 의문을 표하는 목소리가 있었고 특유의 점유율을 바탕에 두고 짧은 패스로 풀어나가는 전술까지 일부 전문가, 몇몇 팬들은 ‘이게 월드컵과 같은 최고 수준의 대회에서도 통하겠느냐’라는 의문을 끊임없이 표했다.
실제로 우리는 아시아 2차 예선, 아시아 최종예선에서 비교적 약팀을 만나 상대했고 월드컵 본선에서는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 같은 강호 상대해야 했기 때문이다.
벤투 감독의 뚝심은 통했다. 끊임없는 연구와 실험, 모험적인 선수 기용을 통해 4년간 '시스템'을 심었다. 월드컵에서도 우루과이, 가나, 포르투갈을 상대로 대등하게 싸웠고 결국에는 16강 진출을 이뤄냈다. 벤투 감독은 4년 동안 대한민국도 주도적인 축구로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증명한 셈이다.
벤투가 심어 놓은 4년간의 시스템은 뿌리째 뽑혔다. '미소 천사' 클린스만 감독은 사임 생각이 없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