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수들의 장점은 하나도 살리지 못한 채 대회를 마쳤다. 위르겐 클린스만(60) 감독이 살린건 '팀 내 분위기' 하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7일 0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아흐마드 빈 알리 스타디움에서 요르단과 치른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4강전에서 0-2로 패하며 탈락했다.
이로써 클린스만호는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에 실패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부임부터 목표는 아시아 정상이라고 큰소리 쳐왔지만, 꿈을 이루는 데 실패했다.
한국 축구, 아니, 아시아 축구 역사에 남을 만한 졸전이었다. 경고 누적으로 김민재가 빠졌다고 하지만, 한국의 수비와 경기력은 처참했다.
무사 알타마리, 야잔 알나이마트는 일단 공을 잡으면 한국 수비가 2~3명 붙어도 과감한 드리블을 시도했고 차례로 수비수들을 쓰러뜨렸다. 한국은 전반에만 슈팅 12개를 얻어맞았다. 조현우의 세이브가 아니었다면 두세 골을 내줘도 이상하지 않았던 전반전이다.
후반전은 더 심각했다. 후반 8분 박용우의 패스 실수로 야잔 알나이마트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후반 21분엔 황인범이 중원에서 공을 뺏기면서 무사 알타마리에게 추가 골까지 얻어맞았다.
클린스만 감독은 첫 번째 실점을 허용한 후인 후반 11분 박용우를 벤치로 불러들이고 조규성을 투입했다. 후반 36분에는 양현준과 정우영을 투입하며 황희찬, 이재성을 빼줬다.
16강, 8강과 같은 극적인 반전은 없었다. 경기는 그대로 0-2 패배로 막을 내렸다. '이번에야말로 우승한다'라고 자부했던 클린스만호의 여정은 보다 일찍 마무리됐다.
한국 선수단은 역대 최강이라고 불릴 만큼 강력하다. 공격에는 '토트넘 홋스퍼 주장' 손흥민, '파리 생제르맹(PSG) 주전' 이강인이 있고 수비에는 바이에른 뮌헨의 주전 수비수 김민재가 버티고 있다. 이 선수들 이외에도 울버햄튼 원더러스의 이번 시즌 최다 득점자 황희찬, VfB 슈투트가르트의 10번 정우영, FSV 마인츠 05의 이재성 등 유럽 무대 소속팀에서 핵심 역할을 맡은 선수들이 즐비하다.
한국 축구 전성기를 맞았다고 평가받기도 했다. 이러한 평가와 함께 '클린스만호'의 분위기는 정말 좋아 보였다.
실제로 대표팀 선수들은 지난해 인터뷰를 진행할 때면 줄곧 '선수단 분위기가 정말 좋다'라는 말을 해왔다. 지난해 조규성은 "선수단 분위기는 정말 좋다. 클린스만 감독은 선수를 위한 분위기를 조성하신다"라고 말했다. 김민재는 "여론이 좋았던 감독님은 없었던 것 같다. 결과는 선수들이 만드는 것이다. 감독님 역할도 중요하겠지만 선수들이 잘해서 분위기를 반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전했다.
지난 11월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싱가포르전에 앞서 기자회견에 나섰던 손흥민 역시 "분위기도 상당히 좋다. 계속 결과를 못 내고 있었는데 지난 소집에서 좋은 결과와 경기를 내면서 자신감도 올라갔다"라며 좋은 분위기를 알렸다.
대회 중에도 자신감 넘치는 말들이 오갔다. 지난 조별리그 3차전 말레이시아전을 앞두고 기자회견을 진행한 조현우는 "팀 분위기는 아주 좋다. 선수들은 지나간 일은 크게 생각하지 않고 다가오는 경기를 잘 준비했다"라고 말했고 말레이전이 끝난 뒤 김진수는 "당연히 우승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기에 서 있는 이유가 없다"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클린스만 감독도 같은 이야기를 했다. 5일 경기 전 기자회견서 그는 "팀 분위기도 좋고 긍정적으로 잘 준비했다"라며 "준결승까지 온 만큼, 우리가 원하는 목표를 꼭 달성할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자신있게 이야기했다.
이 대회 클린스만호가 보여준 장점은 '좋은 분위기' 하나로 끝이다. 선수 개개인의 강점을 전혀 살리지 못했다. 프리미어리그에서는 팀 내 주포로 활약하는 손흥민과 황희찬이 필드골 한 골도 기록하지 못했다. 이강인의 찬스 메이킹 능력은 대회 내내 조명받았지만, 득점으로 연결되지 않았다. 세밀한 부분 전술과 상황 대처가 전혀 되지 않았던 이번 여정이다.
이번 요르단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과 경기에서부터 불안한 모습을 내리 보여줬던 대표팀이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끝내 상황을 개선하지 못했다.
개선의 의지가 있었는지도 의문이다. 조별리그에서부터 매경기 보여왔던 공수간격, 공격 세부 전술, 부실한 수비 등은 탈락하는 시점까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4강 요르단과 경기에서는 0-2로 끌려가는 상황에서도 뒤늦게 교체 카드를 꺼내 들며 안일한 대처를 보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표팀에서 '분위기 메이커' 역할만 해냈다. /reccos23@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