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분을 뛰고도 '국가대표의 무게'를 먼저 떠올렸다. 김민재(28, 바이에른 뮌헨)가 '월드클래스'다운 행동으로 훈훈한 이야기를 남겼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일 0시 30분(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에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8강전에서 연장 혈투 끝에 2-1로 승리하며 4강에 진출했다.
이번에도 기적 같은 승리였다. 한국은 전반 42분 황인범의 패스 실수로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탈락이 눈앞이던 후반 추가시간 4분 드라마가 펼쳐지기 시작했다. 손흥민이 상대 태클에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고, 황희찬이 강하게 차 넣으며 1-1 동점을 만들었다.
연장전에서도 황희찬과 손흥민이 차이를 만들었다. 연장 전반 12분 황희찬이 박스 바로 바깥에서 프리킥을 얻어냈고, 손흥민이 환상적인 오른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한국은 더 이상 실점하지 않으면서 4강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클린스만호는 경기 바로 다음 날 도하 알에글라 트레이닝 센터에서 회복 훈련을 진행했다. 햄스트링 부상에서 재활 중인 문선민과 '연습 파트너' 김준홍까지 포함해 26명 모두 훈련장을 밟았다.
훈련 도중 대한축구협회(KFA) 관계자가 김민재의 숨은 미담을 공개했다. 그는 호주전이 끝난 뒤 이강인과 함께 도핑 테스트를 받았다. 무작위로 뽑히는 도핑 테스트에서 둘이 선정된 것.
김민재와 이강인 둘 다 심한 탈수 증상으로 애를 먹었다. 김민재는 120분 풀타임을 소화했고, 이강인도 연장 후반 종료 직전 교체될 때까지 부지런히 피치를 누비며 모든 것을 쏟아냈다.
결국 둘은 소변 검사와 혈액 검사를 받는 데 2시간 가까이 걸린 것으로 알려졌다. 호주 선수들이 먼저 도핑 테스트를 마친 뒤 자리를 떠났고, 이강인도 김민재보다 빠르게 검사를 마쳤다. 그리고 김민재가 마지막으로 테스트를 완료했다.
오랜 기다림을 끝낸 관계자들은 빠르게 짐을 싸고 이동하려 했다. 카타르 현지 시각으로도 새벽이 된 만큼 모두 지칠 대로 지친 상황.
KFA 관계자에 따르면 이때 김민재가 먼저 나서서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호주 선수들과 김민재, 이강인이 먹은 바나나와 물, 간단한 간식 등을 정리하려 나선 것. 당황한 관계자들은 청소 담당 직원이 있으니 곧바로 샤워하고 숙소로 돌아가 쉬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김민재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한국 사람들이 먹고 치우지도 않고 갔다고 생각할 수 있다. 외국에 나와서 그런 소리까지 들을 필요는 없지 않나"라며 뒷정리를 이어갔다. 이에 대표팀 스태프들도 합류해 호주 선수들의 몫까지 깔끔히 청소하고 돌아갔다.
그야말로 국가대표의 품격을 보여준 김민재다. 그는 경기 막판에 주저 앉을 정도로 투혼을 발휘한 뒤에도 태극마크의 무게를 먼저 생각한 것. KFA 관계자는 "역시 월드클래스 선수는 다르구나. 호주전 승리를 더 뿌듯하게 해주는 모습이었다"라고 전했다.
한편 김민재는 경고 누적으로 4강 요르단전에 나설 수 없다. 그는 조별리그 1차전 바레인과 맞대결에서 옐로카드를 받았고, 호주와 8강전에서도 후반 막판 옐로카드를 받았다.
이번 대회 들어 처음으로 김민재 없이 수비 라인을 꾸려야 하는 클린스만호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후 "안타깝고 슬프다. 김민재 본인이 아마 가장 안타까울 것"이라며 "대안은 있다. 정승현도 있고, 수비형 미드필더 박진섭을 변칙적으로 기용할 수도 있다. 스리백 전술을 쓸 수도 있다"라고 생각을 밝혔다.
조현우 역시 "민재가 함께하지 못해 아쉽다. 하지만 훌륭한 선수들이 워낙 많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4강전에서 이겨야 민재가 돌아와서 뛸 수 있다. 하나하나 천천히 잘 풀어나가겠다"라며 각오를 다졌다.
/finekos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