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만남, 그리고 긴 이별’
1964년 10월 9일 오후 4시 55분. 일본 도쿄의 조선회관에서 남북 분단 이후 첫 이산가족 상봉이 이루어졌다. 바로 신금단 부녀의 극적인 만남이었다. 아버지 신문준은 딸의 이름 “금단아”를, 딸은 “아바이”를 서로 부르며 얼싸안았으나 그 시간은 고작 7분 남짓. 부녀를 갈라놓은 세월에 비하면, 그야말로 찰나였다. 헤어진 지 14년 만의 애끓는 눈물의 상봉은, 허망하리만치 순간에 끝나버렸다. 그리고는 영영 이별.
아버지 신문준은 고향인 함경남도 이원에서 1951년 1.4 후퇴 때 아내와 딸을 남겨두고 단신으로 월남했다. 북쪽에 남은 그의 딸은 겨우 12살이었다. 운동세계에 발을 들여놓은 신금단은 그 후 1962, 1963년 모스크바에서 열렸던 즈나멘스키 형제상 쟁탈 국제육상경기대회 400m와 800m 달리기에서 1위를 기록했고, 196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에서 열린 제1회 가네포 대회(신생국 경기)에서도 400m와 800m에서 두 개의 비공인 세계신기록을 수립, 200m를 포함 3관왕에 올랐다.
육상 달리기 두 종목 세계 최고 기록 보유자였던 신금단은 1964년 도쿄 올림픽 금메달이 유력했으나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신생국 경기’를 유사대회로 규정, 그 대회 참가 선수들의 도쿄 올림픽 출전 자격을 박탈했다. 그에 반발한 북한 선수단이 올림픽 철수를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북한 선수단이 귀국하기 위해 니가타로 가는 열차를 타기 직전, 신금단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서울에서 ‘아바이’가 왔다는 것.
딸의 활약상을 알고 있었던 신문준(당시 세브란스병원 근무, 49살)이 대한올림픽위원회를 찾아가 신금단이 자신의 딸임을 호소, 남북이 도쿄 올림픽이 끝난 후 귀국하기 전에 만나기로 했다. 하지만 북한 선수단의 철수 결정으로 어려워지게 되었으나 막판에 극적으로 합의, 어렵사리 부녀 상봉이 성사됐다.
짧았던 남북 부녀 상봉은 분단의 아픔과 비극의 상징처럼 각인됐다. 당대 최고의 여가수였던 황금심이 노래한 ‘눈물의 신금단’을 비롯해 남한에서 ‘신금단의 부녀 상봉-눈물의 십 분간’, ‘신금단 부녀의 단장의 이별’, ‘부녀의 슬픔’ 같은 앨범과 노래가 한때 유행했고, 부녀의 얘기는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1965년 김기풍 감독, 김승호 태현실, 안인숙 주연, ‘돌아오라 내 딸 금단아’) 신금단의 아버지는 1983년 12월 27일, 6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신금단 이야기’는 조선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나 『로동신문』, 『조선녀성』, 『천리마』 같은 북한의 대중매체에서도 ‘열렬하게’ 다루었던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그 연장 선상에서 최근 발행된 근대서지학회의 『근대서지』 1923년 하반기호에 북한에서 최동협이 쓴 장편 오체르크(인물 실화소설) 『신금단 선수』가 최초로 발굴, 소개됐다.
『신금단 선수』는 평양 아동출판사가 1963년에 펴낸 것으로, 그 책을 ‘천리마 시대와 신금단이라는 문화상징’이라는 글로 풀어낸 유임하 한국체대 교양과정부 교수에 따르면 ‘최동협이 세계 육상계의 최정상에 오른 신금단을 취재해 쓴 오체르크’이다. ‘오체르크’는 ‘인물의 실화’를 일컫는다.
그에 따르면 그 책의 판권에는 ‘실화/ 신금단 선수/중학교 학생용’이라고 기재돼 있다. 오체르크의 도입부에서는 해방 전 빈농이었던 금단이네 가족상이 소개된다.
“고향을 등진 채 동북 만주 땅을 떠돌며 가난과 눈물의 세월로 어린 시절을 보냈으나 해방된 조국에 돌아와 학교에 다닐 수 있게 됐고, 6.25 전쟁 후 ‘낙천적인 노동계급의 딸’로 성장, 기쁨에 넘치는 노동 생활 속에서 체육인의 재능을 꽃피워 마침내 ‘천리마 시대’의 놀라운 결실을 거두었다”는, 서술자의 요약 진술로 이야기의 문을 연다.
신금단은 활동 기간에 11번의 세계 최고기록을 세웠고, 28개의 금메달을 따냈다. 그는 희천공작기계공장 선반공으로 일하면서 도체육경기 달리기 선수로 참가했다가 내무성체육단(현 압록강체육단) 선수로 발탁됐다. 3년 만에 세계 최정상급 선수로 도약한 신금단은 그 후 공훈체육인(1963.10)과 인민체육인(1966.10) 칭호를 받았다.
유임하 교수는 “신금단의 인물 전기에서는 식민지 시절 빈농계급이 겪은 만난각고(萬難刻苦)와 해방을 맞이하여 주권을 회복한 인민계급의 성장, 1950년대 중반 이후 노동자의 탄생에 이르는 사회 변화를 엿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신금단의 오체르크는 1950년대에 혜성처럼 등장해 1960년대 세계 여자 육상계의 전설이 된 여성체육인의 성공서사'이다. 유 교수는 “오체르크는 세계적인 체육인의 등장을 가능하게 만든 체제와 제도의 승리를 선전 교양하는 북한 교육의 지향과 대중문화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인 셈”이라고 정리했다.
근대서지학회(회장 오영식)가 찾아낸 『신금단 선수』는 이젠 아련한 역사 속으로 흘러 들어간 분단 비극의 상징적인 인물에 대한 가뭇한 기억을 새삼 불러일으킨다.
글. 홍윤표 OSEN 고문
(이미지 제공= 근대서지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