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자료발굴, 보존·해석의 참된 가치를 실현하는 잡지’를 표방하는 『근대서지』 28호(2023년 하반기호. 근대서지연구소 발행, 민속원 제작)에 여태껏 실물을 볼 수 없었던 세계명작시선집 『애련모사(愛戀慕思)』의 실체가 최초로 공개돼 문학계의 비상한 관심을 끌게 됐다.
오영식 근대서지학회 회장은 『근대서지』 28호의 발간사 ‘문학사 복원의 밀알들’이라는 글을 통해 “『근대서지』의 미덕은 자료의 발굴과 소개이다. 이번에도 이학인의 『무궁화』와 김기진의 『애련모사』. 신불출의 『대머리백만풍』, 개벽사 잡지 『신경제』 등을 선보인다.”고 알렸다.
오 회장은 “이학인은 민요시, 동요시 운동을 펼쳤던 인물로 1935년에 『조선문단』을 속간한 발행인 정도로만 알려져 왔는데. 이번에 이학인 문학의 출발이며 본령인 『무궁화』의 발굴로 그의 문학세계에 대해 좀 더 충실한 논의가 전개될 것”으로 기대했다.
『애련모사』는 문학평론가 팔봉(八峰) 김기진(金基鎭. 1903-1985)이 프랑스와 독일, 오스트리아, 헝가리, 스페인, 이탈리아, 영국, 아일랜드, 미국, 러시아. 일본 등 모두 12개국, 36명의 작가의 작품 총 64편을 국가와 작가에 따라 분류해서 엮은 번역시집이다. 1924년 11월 25일 박문서관에서 나온 이 시집은 46판(128×185mm), 총 203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표지에는 붉은 휘호로 ’세계명작시찬‘이라는 각서(角書)와 제목 ’애련모사‘가 씌어져 있다. 그 아래에는 새 한 쌍을 세 겹의 하트와 화초문양이 둘러싼 도안으로 장식했다.
애욕과 연애를 주제로 한 『애련모사』를 분석하고 번역문학사상의 의미를 짚어준 구인모 연세대 글로벌인재학부 교수는 “근대기 한국에서 외국시는 대체로 사화집(anthology)의 형태로 수용되었다. 그 시작은 김억이 옮기고 엮은 『오뇌의 무도』였다.”면서 “김기진의 『애련모사』는 그 실물의 처소가 묘연했다. 그래서 이번에 발견된 것은 번역문학사, 아니 한국문학사 연구에서 하나의 사건이라고 할 만하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학인의 시집 『무궁화』 역시 그동안 실체를 보기 힘들었던 희귀한 시집이다. 이 시집을 해제한 권유성 제주대 국어교육과 교수는 “1903년 평안북도 태천 태생인 이학인은 1923년경부터 193년끼 문학활동을 이어갔던 문학자였다. 새로 발굴된 이학인 시집 『무궁화』는 1923년부터 기획되어 최종적으로 1925년 1월에 발간된 시집으로 출간이 단순하지 않았다”면서 “이 시집은 애초 1924년에 초판 발간이 이루어졌으나 압수당했을 가능성이 있어 보이며, 새로 발굴된 『무궁화』는 재판일 가능성이 있다”고 살폈다.
권 교수는 ‘우이동인(牛耳洞人) 이학인의 문학적 생애와 새로 발굴된 시집 『무궁화』에 대하여’라는 제하의 글을 통해 이학인의 생애와 문학활동, 시집 『무궁화』의 특징, 발간 경위와 서지사항, 수록 시의 특징, 발간의 의미 등을 상세하게 풀이했다. 그에 따르면 이 시집에 수록된 시들은 크게 ‘조선의 고적과 전설을 소재로 한 것’과, ‘이학인이 연애시라고 지칭한 시들을 포함한 개인 서정은 담은 시들’로 구분된다.
권 교수는 “이번에 새로 발굴된 시집 『무궁화』는 한국근대문학 초창기로 문단형성이 이루어지기 시작하던 1920년대 중반에 출간된 보기 드문 시집 중 하나”라고 짚었다.
‘개벽사 잡지들의 시스템을 전문적으로 연구, 정리해온’ 정용서 연세의료원 동은의학박물관 연구원이 누차 언급했던 『신경제』 도 그의 풀이로 자세히 소개됐다. 실물 확인 결과 『신경제』는 일반 잡지 판형이 아닌 타블로이드 판형(8면)으로 경제 관련 기사보다는 당시 개벽사 발행 잡지들과 신약(新藥) 광고로 채워져 있는 것이 특이했다.
이번 『근대서지』에는 그밖에도 이육사 시인의 '초상화', 신석정의 '산호림으로 날러간 백공작' 과 노천명의 '책끝에', 월남화가 김영주의 글과 더불어 만담가로도 유명했던 신불출의 시 '시처럼 된 시', 그리고 그의 만담집 『대머리 백만풍(百萬風)』을 영인, 게재해 연구가들의 이해를 도왔다.
(이미지 제공=근대서지학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