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씩 스리백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의 훈련을 하곤 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지난달 31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1-1로 비겼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하며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후반전 시작 33초 만에 압둘라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9분 조규성의 극적인 대회 마수걸이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결국 양 팀은 연장전에서도 승자를 가리지 못하고 운명의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수문장 조현우가 영웅으로 떠올랐다. 그는 상대 3번 키커 사미 알나헤이와 4번 키커 압둘라흐만 가리브의 슈팅을 연달아 막아내며 한국에 승리를 안겼다. 이로써 벼랑 끝까지 몰렸던 클린스만호는 '64년 만의 아시아 정상’을 향한 여정을 극적으로 이어나가게 됐다.
이제 한국의 다음 상대는 신태용 감독의 인도네시아를 꺾고 올라온 호주다. 한국과 호주는 3일 0시 30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8강 맞대결을 펼친다. 클린스만호는 이틀만 쉬고 곧바로 경기를 치러야 한다.
황인범(28, 츠르베나 즈베즈다)은 이날도 선발 출전해 이재성과 중원에서 호흡을 맞췄다. 그는 연장 전반 14분까지 열심히 경기장을 누빈 뒤 홍현석과 교체되며 임무를 마쳤다.
경기 후 만난 황인범은 반등의 발판이 될 수 있는 승리라는 말에 "나도 무조건 그렇게 생각한다. 내가 이번 경기에 대해서 많은 얘기를 할 필요는 사실 없을 것 같다. 어차피 분석은 끝난 뒤 코칭 스태프분들이 모두 같이 해주신다. 선수들이 더 집중해서 분석해야겠지만, 정말 우리 팀 모두가 너무 자랑스럽다. 특히 (조)규성이가 가장 자랑스럽다. 너무 너무 대견하고 정말 멋있었다"라고 답했다.
황인범은 그동안 가장 답답했을 조규성을 향해 극찬을 보냈다. 그는 "내가 만약 규성이처럼 공격수였다면 정말 부담감이 컸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그렇게 중요한 순간에 역할을 해줬다는 게 동생이지만 정말 대견하고 멋있다. 많은 팬분들도 규성이의 필요성을 오늘 느꼈을 것 같다. 오늘 경기를 계기로 우리 팀이 단단해질 수 있을 것 같다. 너무 흐뭇하다"라며 미소 지었다.
벅찬 감정도 고백했다. 황인범은 "사실 우리가 결승전에서 이기고 우승한다면 더 좋아하겠지만, 오늘만큼은 정말 행복했다. 내가 엄청 감정을 표출하는 편은 아니다. 비록 우리 팀이 아쉬운 부분도 많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모습은 팀으로서 칭찬받아야 한다"라고 힘줘 말했다.
이날 클린스만 감독은 김영권-김민재-정승현을 모두 기용하는 깜짝 스리백을 꺼내 들었다. 사우디의 위협적인 공격을 어느 정도 억제하긴 했지만, 선수들끼리 호흡이 삐걱거리는 느낌이 강했다. 클린스만 감독도 후반 19분 정승현을 빼고 박용우를 넣으면서 포백으로 전환했다.
황인범은 "가끔씩 대표팀 소집이 있을 때 경기 중 스리백으로 바꿀 수도 있다는 의미의 훈련을 하곤 했다. 이번 경기를 앞두고는 애초에 스리백으로 준비했다"라며 "우리가 나름 실점 장면을 제외하면 연장전까지 상대의 위협적인 공격 패턴을 잘 막았다고 생각한다. 모든 걸 다 막을 순 없다"라고 말했다.
황인범은 스리백 전술이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평했다. 그는 "기회를 허용하기도 했지만, 전술적으로 잘 준비했다고 생각한다. 그 안에서 팀적으로 발전해야 할 부분도 있지만, 잘 준비했다. 다음 경기에 어떤 전술로 나가게 될지 모르겠지만, 어떤 전술이든. 또 3일 만에 다시 경기를 해야 하지만, 이젠 정신력으로 버텨야 한다. 오늘 얻은 단단함을 잘 이어나갈 수 있길 바란다"라고 전했다.
언제부터 계획된 전술이었을까. 황인범은 "경기를 준비하는 그 순간부터였다. 그러니까 우리가 말레이시아전 끝나고 회복 훈련을 한 뒤 그다음 훈련할 때부터는 계속 스리백을 연습했다. 그전부터도 처음 하는 게 아니었다"라고 설명했다.
본격적인 준비는 사실상 이틀 정도였던 것으로 보인다. 클린스만 감독은 말레이시아전이 끝나고 난 뒤 잘못된 부분을 고치겠다고 강조했다. 그중 하나가 스리백 카드였던 것으로 보인다.
황인범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감독님께서 그런 전술을 선택한 것 같다. 선수들은 믿었고, 우리끼리 많이 소통했다. 스리백으로 나섰을 때 어떻게 움직일지, 수비할 때 어느 공간을 막아야 하는지 이런 부분을 잘 소통했다. 어려운 경기였지만, 그 결과가 나온 것 같다"라며 만족감을 표했다.
/finekosh@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