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대표 공격수 조규성(26, 미트윌란)이 천당과 지옥을 오갔다. 그가 절벽 끝에서 한국을 구하며 영웅으로 등극하고도 마음껏 웃지 못할 뻔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1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대결에서 연장 120분까지 1-1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하지만 승부차기에서 4-2로 승리하며 8강에 올랐다.
한국은 후반전 시작 33초 만에 압둘라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하지만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9분 조규성의 극적인 대회 마수걸이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리고 1-1로 돌입한 운명의 승부차기. 수문장 조현우가 펄펄 날았다. 그는 상대 3번 키커 사미 알나헤이와 4번 키커 압둘라흐만 가리브의 슈팅을 연달아 막아내며 한국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로써 한국은 혈투 끝에 8개 대회 연속 8강 진출에 성공했다. 한국은 지난 1992년 대회에서 조별리그 탈락한 뒤 언제나 8강 무대는 밟아왔다.
'64년 만의 아시아 정상’을 향한 여정도 계속된다. 클린스만 감독은 지난해 3월 부임 이후부터 언제나 목표는 아시안컵 우승이라고 공언했다. 클린스만호의 도전은 16강에서 꺾일 뻔했지만, 포기하지 않는 투지와 집념으로 희망의 불씨를 이어갈 수 있게 됐다.
한국은 3-4-3 포메이션을 택했다. 정우영-손흥민-이강인이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렸고 황인범-이재성이 중원에 자리했다. 설영우-김태환이 양쪽 윙백에 나섰고 김영권-김민재-정승현이 중앙 수비에 섰다. 골문은 조현우가 지켰다.
클린스만호의 깜짝 스리백은 잘 통하지 않았다. 오히려 사우디보다 한국 선수들이 더 당황한 것처럼 보였다. 처음 손발을 맞추는 전술 때문인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했다.
흔들리던 한국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선제골을 내줬다. 교체 투입된 20번 압둘라 라디프가 수비 뒷공간으로 빠져나간 뒤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김민재가 튀어나갔지만, 공을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 게 실점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9분 기적이 일어났다. 조규성이 설영우가 왼쪽에서 내준 헤더를 머리로 마무리하면서 극적인 동점골을 터트렸다. 그는 가장 중요한 순간 이번 대회 마수걸이 골을 터트리며 한 순간 영웅으로 떠올랐다.
연장전에선 달랐다. 탄성을 자아내던 조규성은 탄식을 자아내고 말았다. 후반 3분 황희찬이 박스 왼쪽을 돌파한 뒤 컷백 패스를 내줬다. 튀어나온 골키퍼가 공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면서 조규성이 결정적인 기회를 맞았다. 골문엔 수비밖에 없는 만큼 모두 슈팅을 기대했다.
그러나 조규성은 슈팅하는 대신 왼쪽으로 패스했다. 공을 받은 홍현석도 각이 애매해 다시 옆으로 패스했다. 손흥민이 어떻게든 슈팅으로 연결하려 했으나 조규성과 겹치면서 무산됐다. 그렇게 사우디를 무너뜨릴 절호의 기회가 날아갔다. 결국 한국은 역전골을 만들어내지 못한 채 120분 혈투를 마쳤고, 승부차기에 돌입했다.
다행히 끝은 해피엔딩이었다. 수문장 조현우가 상대 3번 키커와 4번 키커의 슈팅을 모두 막아내며 포효했다. 그리고 한국의 4번 키커 황희찬이 오른쪽 상단 구석에 슈팅을 꽂아 넣으며 길고 길었던 혈투에 방점을 찍었다. 조규성이나 한국이나 모두에게 행복한 마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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