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너먼트에서는 모든 경기가 결승전이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은 대체 왜 '결승전'에서 한 번도 쓰지 않던 '깜짝 스리백'을 가동했을까. 극적으로 연장전에 돌입하긴 했지만, 스리백 카드는 확실히 실패에 가까웠다.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1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대결을 펼치고 있다. 양 팀은 1-1로 연장 승부에 돌입했다.
한국은 후반전 시작 33초 만에 압둘라 라디프에게 선제골을 내줬다. 그러나 패색이 짙던 후반 추가시간 9분 조규성이 천금 같은 극장 동점골을 터트리며 승부를 연장전으로 끌고 갔다.
한국은 3-4-3 포메이션을 택했다. 정우영-손흥민-이강인이 최전방에서 득점을 노렸고 황인범-이재성이 중원에 자리했다. 설영우-김태환이 양쪽 윙백에 나섰고 김영권-김민재-정승현이 중앙 수비에 섰다. 골문은 조현우가 지켰다.
클린스만호는 깜짝 스리백을 채택한 만큼 사우디가 당황했을 초반을 노려야 했다. 하지만 더 당황한 쪽은 오히려 한국이었다. 한국 선수들은 처음 손발을 맞추는 전술 때문인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은 것처럼 보였다.
전반 내내 사우디가 주도했다. 사우디가 공을 잡고 한국이 막아내는 구도였다. 한국은 수비 시 파이브백으로 버티면서 손흥민을 활용한 역습 한 방을 노렸으나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사우디가 초반 20분 점유율을 70% 가까이 가져갔다.
양 윙백인 설영우-김태환이 수비 시 깊숙이 내려가 완전한 파이브백을 형성했다. 이때 양 날개인 정우영-이강인의 위치가 애매했다. 아예 내려와 미드필더처럼 뛰자니 손흥민이 홀로 고립됐고, 내려오지 않자니 이재성-황인범이 너무 많은 공간을 커버해야 했다.
한국은 전반에 실점하지 않은 게 천만다행일 정도였다. 골대까지 도와줬다. 전반 41분 코너킥 공격에서 알셰흐리의 헤더가 골대를 때렸고, 이어진 라자미의 헤더도 크로스바를 강타했다. 알다우사리의 마지막 슈팅은 조현우가 손끝으로 건드린 덕분에 김민재가 몸을 날려 건져낼 수 있었다.
그러나 두 번 행운은 없었다. 한국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선제골을 내줬다. 교체 투입된 20번 압둘라 라디프가 수비 뒷공간으로 빠져나간 뒤 정확한 슈팅으로 골망을 갈랐다. 김민재가 튀어나갔지만, 공을 제대로 끊어내지 못한 게 실점으로 이어졌다.
한국은 이후로도 사우디에 쩔쩔 매며 힘을 쓰지 못했다. 결국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19분 이재성, 정승현을 빼고 조규성, 박용우를 투입하며 포백으로 전환했다. 사실상 자신이 꺼내 든 스리백 카드가 실패로 끝났다는 걸 인정하는 교체였다.
클린스만 감독은 앞서 자신감과 자만감은 다르다고 강조하면서, 자신은 자신감으로 승부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는 사우디가 분명히 어렵고 강한 상대라면서도 "우린 잘 준비했다. 내일 경기가 기대된다"라며 밝게 웃었다.
하지만 본인이 말한 대로 결승전만큼 중요한 경기에서 한 번도 합을 맞춰본 적 없는 전술을 꺼내 든 건 분명히 '자만'이었다. 급조된 스리백은 삐걱거리기만 했고, 한국은 포백으로 전환한 뒤 훨씬 경기력이 좋아졌다. 사우디가 체력적으로 한계를 드러낸 것도 맞지만, 클린스만표 스리백은 아직 풀어야 할 숙제가 많아 보였다.
다행히 한국은 아직 탈락하지 않았다. 경기 종료 직전 조규성이 머리로 이번 대회 1호 골을 터트리며 한국을 패배에서 건져냈다. 그가 아니었다면 꼼짝없이 지난 1992년 대회(조별리그 탈락) 이후 처음으로 8강 무대도 밟지 못할 뻔했던 클린스만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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