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악마가 '일당백'의 각오로 사우디아라비아의 초록 물결과 맞선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1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붙는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 2무를 거두며 E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요르단,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연달아 비기며 바레인에 1위 자리를 내줬다. 토너먼트 첫 상대는 F조 1위로 올라온 중동의 강호 사우디가 됐다.
패배는 곧 탈락인 녹아웃 스테이지. 더 이상 실수는 용납되지 않는다. 클린스만 감독이 꾸준히 강조했듯 한 경기 한 경기가 결승전이나 다름없다.
누가 이겨도 이상하지 않은 경기다. 축구 통계 매체 '옵타'는 한국이 8강에 진출할 확률을 51.7%, 사우디가 올라갈 확률을 48.3%로 예측했다. 단 3.4% 차이. 이는 16강에서 펼쳐지는 8경기 중 가장 근소한 차이다.
경기 시작도 전부터 사우디 팬들이 경기장 부근을 점령했다. 현지 시각으로 오후 4시가 넘어가자 초록색 유니폼을 입은 사우디 팬들이 하나둘씩 나타나기 시작했고, 순식간에 길을 뒤덮었다.
예고된 일이었다. 사우디는 처음부터 F조 1위를 예상하고 미리 숙소와 경기 티켓을 대거 예약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회 메인 미디어 센터(MMC)가 있는 도하는 물론이고 며칠 전부터 사우디 팬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클린스만 감독도 "사우디 팬들은 3만 명에 달할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응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라고 경계했다.
우려는 현실이 됐다. 사우디 팬들은 에듀케이션 시티 역 근처를 가득 메우고 노래를 불렀다. 마치 개선 행진을 연상케 했다. 그들은 한국 유니폼을 입은 팬들을 향해 "너네는 진다", "우리가 이길 거야", "손흥민은 어디 있나?" 등의 도발도 서슴치 않았다.
반대로 경기장 근처에 모인 붉은 악마는 20여명뿐이었다. 한국이 예상치 못하게 조 2위로 16강에 진출하면서 수백 명의 팬들이 티켓 예매에 실패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럼에도 붉은 악마들은 기 죽지 않고 "대한민국!", "오 필승 코리아!"를 외치며 맞서 싸웠다.
그중엔 '곤룡포좌' 크리에이터 박규태 씨와 스포츠 캐스터 이승준 씨도 있었다. 둘 역시 붉은 악마들과 함께 열정적으로 응원을 펼쳤다. 박규태 씨는 이미 카타르에 온 지 2주가 넘은 베테랑이었다. 그는 바레인과 1차전부터 모든 경기를 봤다며 지금까지는 아쉬움이 컸지만, 오늘만큼은 다르길 기대했다.
이승준 씨는 이제 막 카타르에 입국한 상태였다. 그는 "조 1위를 할 줄 알고 여유롭게 오늘 비행기를 타고 들어왔다. 그런데 조 2위를 하게 되면서 들어오자마자 경기를 보게 됐다. 오늘 지면 너무 충격과 슬픔이다. 이대로 집에 갈 순 없다"라며 웃음을 지었다.
박규태 씨와 이승준 씨 모두 목이 터져라 응원하겠다고 다짐했다. 박규태 씨는 "중동 국가들이 같은 아랍권 문화를 향유하다보니까 서로 응원을 해주더라. 오늘 팬들 비율은 9대1? 9.5대 0.5?도 안 될 것 같다. 스파르타 정신으로 일당백하겠다. 최대한 목소리 크게 내면서 열심히 응원하겠다"라고 비장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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