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기억이 있는 장소와 좋은 기억이 있는 상대. 부활 무대는 마련됐다. 이젠 조규성(26, 미트윌란)이 다시 날개를 펼칠 일만 남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31일 오전 1시(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열리는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아시안컵 16강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맞붙는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1승 2무를 거두며 E조 2위로 토너먼트에 진출했다. 요르단,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졸전을 펼치며 연달아 비겼다. 상대는 F조 1위로 올라온 중동의 강호 사우디가 됐다.
16강 진출 국가 중 최다 실점 팀과 최소 실점 팀의 맞대결이다. 한국은 3경기에서 6골을 내주며 인도네시아와 함께 가장 많은 골을 내줬다. 이는 한국의 아시안컵 조별리그 역대 최다 실점 신기록(종전 기록은 1996년 5실점)이기도 하다.
반대로 사우디는 조별리그에서 딱 한 골만 내줬다. 로베르토 만치니 감독이 부임한 뒤 수비가 단단해졌다는 평가가 주를 이룬다. 다만 오만과 키르기스스탄, 태국 등 비교적 약팀을 상대하고 올라왔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사우디의 방패를 뚫기 위해선 무엇보다 조규성이 살아나야 한다. 한국은 앞선 3경기에서 8골을 넣었지만, 그중 조규성이 넣은 골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강인이 3골을 터트렸고, 손흥민이 페널티킥으로 두 골을 기록했다. 황인범과 정우영도 골 맛을 봤다.
그러나 최전방 공격수의 침묵은 계속됐다. 조규성은 3경기 모두 선발 출전해 총 204분간 피치를 누볐으나 유효 슈팅 1개에 그치며 고개를 숙였다. 번번이 교체 출전한 오현규도 말레이시아 페널티킥을 유도하긴 했지만, 합격점을 받기엔 모자랐다.
특히 조규성은 장점까지 사라진 모습이다. 전방에서 버텨주면서 동료에게 기회를 제공하는 능력은 물론이고 월드컵 무대에서도 통했던 제공권도 빛을 잃었다. 조규성이 방점을 찍어주지 못한다면 손흥민, 이강인, 황희찬, 이재성 등 '황금 2선'을 보유한 클린스만호 공격도 힘을 내기 어렵다.
이제 패배는 곧 탈락인 만큼 조규성의 부활이 간절한 상황. 일단 무대는 갖춰졌다. 16강전이 열리는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은 조규성에게 좋은 추억이 있는 곳이다.
조규성은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 조별리그 가나전에서 머리로만 두 골을 터트리며 전 세계에 이름을 알렸다. 사상 최초로 한국 선수가 기록한 월드컵 멀티골. 조규성이 순식간에 국가대표 주전 공격수로 발돋움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가나전이 열렸던 곳이 바로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이다.
상대가 사우디라는 점도 반갑다. 조규성은 지난해 9월 영국 뉴캐슬에서 열린 사우디와 친선 경기에서 머리로 선제골을 넣었다. 클린스만 감독이 부임한 후 대표팀에서 기록한 첫 득점이었다. 그 덕분에 한국은 1-0으로 승리하며 클린스만 감독 체제 6경기 만에 승리를 신고할 수 있었다.
조규성은 말레이시아전을 마친 뒤 "비판엔 신경 쓰지 않는다"라며 "토너먼트다. 지면 진짜 떨어진다. 이젠 정말 골도 넣고, 팀에 많이 기여하고 싶다"라며 의지를 불태웠다. 그간 클린스만 감독이 보여준 '믿음의 축구'를 생각하면, 이번에도 그가 선발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더 이상 기회는 없을 수도 있다. 좋았던 기억들과 자신감을 되살려 믿음에 보답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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