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을 향한 경계가 생각보다도 큰 모양이다. 한 사우디아라비아 언론인이 국적을 속이고 한국 훈련을 구경했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축구대표팀은 28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도하 알에글라 트레이닝 센터에서 사우디아라비아전 대비 훈련을 진행했다.
한국은 이번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에서 E조 2위로 조별리그를 통과했다. 16강 상대는 사우디로 31일 오전 1시 카타르 알라이얀 에듀케이션 시티 스타디움에서 맞대결을 펼친다.
클린스만호는 현지 시각으로 28일 오후 4시에 훈련을 시작했다. 대표팀이 오전이 아니라 오후 훈련을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이다. 한국은 그간 오후 2시 30분에 경기를 치렀지만, 사우디전은 오후 7시에 열리기에 훈련 시간을 조정한 것.
선수들을 지켜보던 이들 사이에 낯선 인물이 있었다. 그는 갑자기 취재진을 향해 다가오더니 한 영상을 보여줬다. 뉴스 영상처럼 보이는 동영상 안에는 한국 기자들이 메인 미디어 센터(MMC)에서 일하고 있는 모습이 담겨있었다.
당황해서 누구냐고 묻자 "스페인 사람(spanish)"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영상 속에 등장한 취재진들도 모르는 새 찍힌 영상이었지만, 이번 대회에서 한두 번 겪은 일이 아니기에 다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하지만 스페인 사람이라는 말은 도통 믿을 수가 없었다. 바르셀로나 팬이라며 엠블럼 뱃지를 보여주긴 했지만, 등에도 가슴팍에도 'al arabiya'라는 글씨와 아랍어 로고가 적혀 있었기 때문. 잠시 후 그를 스페인어를 할 줄 아는 한국 기자에게 데려갔다. 그러자 '스페인 사람'이라던 그는 스페인어는 한마디도 하지 않은 채 "난 아랍인이다(arabic)"이라고 말을 바꿨다.
정체불명의 스페인 사람(?)은 사실 사우디 방송 관계자였다. 미디어 AD(AccreDitation) 카드를 확인하자 그는 사우디 미디어 '알 아라비야'에서 일하는 'Non Rights Holder(경기를 중계할 권리가 없는 방송 미디어 직원)'이었다. 이름도 파하드로 중동식이었다.
결국 파하드는 사우디와 맞대결을 펼칠 한국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보기 위해 훈련장을 찾았던 것. 미디어 공개 훈련이었던 만큼 큰 문제는 없지만, 취재에서 견제를 당할까봐 신분을 숨긴 것으로 보인다.
파하드는 이후로도 말없이 휴대폰을 들이대며 영상을 찍으려 했다. 그는 대표팀 부상 소식에 관해 한국 취재진과 이야기하는 대한축구협회(KFA) 관계자를 갑자기 촬영하기도 했다. KFA 관계자가 빠르게 자신은 주최 측 직원이 아니니 찍지 말라고 제지해야 했다.
이날 훈련장을 찾은 사우디 기자는 파하드뿐만이 아니었다. '아리야디아(arriyadiah)' 소속 압둘라흐만도 클린스만호가 훈련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는 파하드와 달리 자신이 굉장히 유명한 언론에서 일하고 있다고 소개하며 당당하게 사우디에서 왔다고 밝혔다.
한편 몇몇 한국 기자들도 전날 사우디 훈련장을 찾은 바 있다. 이에 대해 '아샤르크 알와사트'는 "한국인들이 잔디 위 훈련을 감시(spying)하고 있다! 사우디 대표팀이 훈련하는 모습은 한국 언론에서 주목을 받았다. 많은 한국인들이 찾아와 훈련과 준비 과정을 지켜봤다"라고 보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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