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르겐 클린스만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이 손흥민(토트넘), 김민재(바이에른 뮌헨), 이강인(파리 생제르맹) 등 세계적으로 내로라하는 선수들을 보유하고도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 130위 말레이시아에 3골이나 내주고 비기는 충격적인 결과를 냈다. 한국은 23위다. 소속팀에서 ‘상종가’를 기록하고 있는 이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한 클린스만 감독의 부족한 전술 능력만 부각된 경기다.
한국은 25일(이하 한국시간) 카타르 알와크라 알자누브 스타디움에서 말레이시아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조별리그 E조 3차전을 치러 3-3 무승부를 거뒀다. 후반 추가시간 막판 통한의 동점골을 헌납하며 다잡았던 승리를 놓쳤다.
이날 한국에선 정우영, 손흥민(페널티킥 득점)이 득점을 기록했다. 한 골은 이강인의 프리킥이 상대 골키퍼 자책골로 연결됐다.
대회 전 조별리그 3승이 목표였던 한국은 근사치에도 접근하지 못했다. 2승도 못 올린 것. 1차전 바레인(86위)을 상대로 3-1 승리를 거뒀을 뿐 요르단(87위)과 2차전(2-2), 말레이시아와 3차전은 모두 비겼다.
16강 진출 지장은 없다. 한국은 2승 1패(승점 6)를 기록한 바레인에 이어 조 2위로 토너먼트에 올랐다. 오는 31일 오전 1시 사우디아라비아와 8강행 티켓을 놓고 다툰다.
한국은 말레이시아에 철저히 ‘판정패’ 했다. FIFA 랭킹 100계단 넘게 차이나는 말레이시아를 상대로 허망하게 무너졌다. 공격에선 상대의 헌신적인 수비를 뚫지 못했고, 수비에서도 상대 역습에 휘청이며 쩔쩔맸다.
이날 경기 전 이미 16강 진출을 확정 지은 한국이 힘을 뺀 채 경기에 임했던 것도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은 손흥민, 이강인, 김민재를 비롯해 조규성(미트윌란), 정우영(슈투트가르트), 황인범(즈베즈다), 이재성(마인츠), 김영권, 설영우(이상 울산), 김태환(전북), 조현우(울산, 골키퍼)을 선발로 내세웠다. 해외파만 7명. 특히 체력 안배가 가장 필요한 ‘공수 믿을 맨’ 손흥민과 김민재를 전반전부터 투입시켰다. 이유는 명확하다. 실력이 보장된 선수들을 앞세워 조별리그 마지막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겠단 계산이다.
그러나 화려한 선수 면면이 무색한 결과가 나왔다. 3실점 무승부. 개인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의 전술 능력 부재가 ‘무승부 참사’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힌다.
이달 초 아시안컵 차출로 대표팀에 합류하기 전까지 손흥민은 소속팀 토트넘에서 윙어와 최전방 공격수 자리를 오가며 펄펄 날고 있었다. 2023-2024시즌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경기 소화해 무려 12골을 기록했다. 득점 선두 엘링 홀란(맨체스터 시티)이 기록한 14골과 불과 2골 차.
‘해외파 중원 자원’ 이강인도 절정의 기량을 과시하며 대표팀에 합류했다. 심지어 그는 ‘우승컵’까지 손에 쥐고 클린스만호를 찾았다. 이강인은 지난 4일 프랑스 파리의 파르크 데 프랭스에서 열린 2023 트로페 데 샹피옹(프랑스 슈퍼컵) 툴루즈와 경기에 나서 결승골을 작렬, 팀의 2-0 승리를 이끌고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수비 핵심’ 김민재 역시 ‘독일 명문’ 바이에른 뮌헨에서 주전 중앙 수비수로 연신 그라운드를 누빈 뒤 대표팀으로 왔다. 합류 전 치러진 분데스리가 16경기를 모두 소화하고 지난 6일 리그 사무국 선정 ‘전반기 베스트11’에 들 정도로 그는 출중한 경기력을 자랑해 왔다. 이외 선수들도 말레이시아 선수들과 비교하면 큰 격차로 우위에 있다.
‘공격~중앙~수비’ 전 포지션에 걸쳐 전성기 가도를 달리고 있는 선수를 적어도 1명씩 보유하고 있지만 클린스만 감독은 말레이시아전 승전고를 울리지 못했다. 심지어 앞서 1,2차전에서 지적됐던 헐거운 미드필드진 약점을 보완하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았다. 공격 성향이 강한 미드필더 이재성과 황인범을 배치하며 안정적인 중원 장악에 실패했다. 이재성이 공격에 적극 가담하고자 올라가 있으면 황인범이 홀로 내려앉아 중원에서 상대의 역습을 저지하기엔 버거울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심지어 황인범은 앞서 요르단과 2차전에서 경고를 받았다. 이날 옐로카드를 하나 더 받았다면 경고누적에 따른 징계로 16강에 나설 수 없었다. 카드를 받을 위험한 상황이 몇 차례 있었지만 다행히 이날 황인범에게 부여된 카드는 없다. 하지만 반칙을 해서라도 상대의 역습을 끊어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카드 위험’이 있는 황인범에 맡긴 클린스만 감독의 판단 자체가 문제란 지적이다.
그나마 클린스만 감독은 한국이 3-2로 한 골 리드할 땐 이재성을 빼고 후반 45분 수비형 미드필더 박용우를 투입시켰다. 그러나 늦은 판단이었다. 박용우가 그라운드에 적응하기도 전에 말레이시아가 후반 추가시간 극적 동점골을 넣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후 "전술적인 부분에 대해 선수들과 진지하게 대화를 나눠야 할 것"이라며 "역습 수비 장면은 선수들도 분명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가야 한다. 다 같이 보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대회 전 "한국의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자신한다"라고 수차례 말했다. 그러나 조별리그 경기를 통해 기대감을 증발시켰다. 색깔 없는 전술로 우승한다는 것은 단지 허황된 꿈일 뿐이다. /jinju217@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