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세계 축구 수준을 가늠할 수 있는 무대인 FIFA(국제축구연맹)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은 아시아 으뜸의 성적을 쌓아 왔다. 10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1986 멕시코~2022 카타르 대회)과 4강 위업(2002 한·일 대회)은 축구 본향인 유럽을 기반으로 한 나라들일지라도 쉽게 꿈꿀 수 없는 업적이다.
특히, 2002 월드컵 4강 진출은 무에서 유를 창출한 금자탑이라 할 만하다. 그 순간, 한국 축구는 ‘변방’에서 ‘중핵’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날, 한국인은 어우렁더우렁 어우러져 환호작약했다. 19세기 말, 축구가 이 땅에 선보인 이래 ‘제일 대사건’은 감동과 기쁨을 자아냈다.
이 맥락에서 볼 때, 분명 기분을 좋게 하는 낭보가 전해졌다. 우리나라 프로 축구의 경연장인 K리그가 AFC 최고 리그로 뽑혔다는 기쁜 소식이다. 틀림없는 경사다. ‘아시아 맹주’라는 별호에 더욱 타당성을 부여하는 통계를 IFFHS(국제축구역사통계연맹)가 발표했다.
그러나 한편으론, 위기감이 감지되는 기별이다. 과연 1년 뒤에도 이 성적표를 받을 수 있을지 장담키 어렵지 않나 하는 걱정이 든다. 또한, 어딘가 모르게 개운하지도 않다. 마음 한구석이 찜찜하다. 기쁨과 안타까움을 한꺼번에 안겨 준 IFFHS 2023 세계 리그 순위다.
IFFHS는 지난 한 해 세계 축구를 결산하며 내놓고 있는 각종 세계 순위 시리즈 가운데 하나로, 세계 각국 프로리그 순위 랭킹을 집계해 공개했다. 1991년부터 전 세계 축구 클럽 성적을 수치화해 순위를 매기는 작업의 연속으로 산출한 통계기도 하다. 기간은 2023년 1월 1일부터 12월 31일까지였다.
K리그는 다시 한번 최고위에 올랐다. 484.5점을 얻어 맨 윗자리에 올랐다. 정상 복귀를 노리는 사우디아라비아 프로페셔널리그(2위·479.5점)와 일본 J리그(3위·438.5점)를 모두 굽어보았다. 우즈베키스탄 슈퍼리그(4위·280.5점)와 이란 페르시안 걸프 프로리그(5위·268.5점)는 큰 격차로 따돌렸다(표 참조). 2011년 으뜸의 리그로 올라선 뒤 좀처럼 흔들리지 않는 초강세를 지켜 오는 K리그다.
그러나 불안한 선두다. 프로페셔널리그에 턱밑까지 쫓겼다. 점수 차가 5점밖에 되지 않는다. J리그와 격차도 46점에 지나지 않는다. 언제 추월당할지 모르는 거리다.
2022년 순위와 비교하면, 그 위기감이 훨씬 더 극명하게 느껴진다. 2022년이 끝났을 때, K리그는 J리그를 큰 차이로 제쳤다. 525.25점 대 402점으로, 물경 123.25점이나 거리가 있었다. 프로페셔널리그와 차이는 더 컸다. 352.75점의 프로페셔널리그를 172.5점 차로 따돌렸다. 2022년도엔, J리그가 2위였고 프로페셔널리그가 3위였다.
세계로 외연을 넓혔을 때, AFC는 하락세가 완연했다. 2022년에 18위까지 치솟았던 K리그였건만, 2023년엔 31위로 떨어졌다. J리그(30→ 39위), 슈퍼리그(57→ 67위), 페르시안 걸프 프로리그(63→ 68위)도 매한가지였다.
엄청난 ‘오일 머니’를 앞세워 덩치를 부쩍 키운 프로페셔널리그만 유일하게 상승했다. 40→ 33위로, 일곱 계단을 뛰어올랐다. 지난해,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알나스르)를 기폭제 삼아 카림 벤제마(알이티하드), 네이마르(알힐랄 SFC) 등 걸출한 월드 스타들을 영입한 ‘묻지 마 투자’ 효과를 톡톡히 봤다고 할 수 있다.
한편, K리그가 과연 아시아 최고 프로 무대인가 하는 의문이 일각에서 존재함도 사실이다. 이 시각은 최근 아시아 프로 클럽 정상을 타투는 ACL 챔피언스리그(ACL) 성적을 그 대표적 보기로 제시한다.
한 해 안에 치르는 춘추제에서 두 해 사이에 벌어지는 추춘제로 바뀐 2023-2024시즌 이전 ACL에서, K리그는 확실히 밀리는 추세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지난 열 번(2013~2022년)의 ACL에서, K리그는 단 한 번(2020년 울산 현대)를 챔피언으로 배출한 데 그쳤다.
반면 같은 기간에, J리그와 프로페셔널리그는 각기 3회와 2회 우승 클럽을 내놓았다. J리그 클럽 중 우라와 레드 다이아몬즈(2017·2022년)와 가시마 앤틀러스(2018년)가 정상에 오른 바 있다. 프로페셔널리그 클럽 중에선, 알힐랄이 2회(2019·2021년) 우승컵을 안았다.
IFFHS는 철저히 성적에 기반을 둔 클럽 랭킹을 산출해 순위를 매긴다고 주장한다. 정량분석만이 객관성을 담보할 수 있다는 판단에서 취한 산출 방식임을 내세운다. 각국 리그와 대륙 대회 결과를 바탕으로 이뤄진 신뢰성 높은 통계라고 자랑한다. 하지만 어느 성격의 대회와 경기의 가중치가 어떻게 얼마나 다른지에 대해선 설명하지 않는다. IFFHS의 자부심에 걸맞지 않게 객관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는 의문의 시각을 자초했다고나 할까?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