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친 사가가 끝났다."
치열했던 라두 드라구신(22, 제노아) 영입 경쟁이 토트넘 홋스퍼의 승리로 막을 내렸다.
유럽축구 이적시장 전문가 파브리시오 로마노는 10일 오후(이하 한국시간) "토트넘과 제노아는 드라구신 이적에 대한 모든 문서 작업을 마쳤다. 최종 조건은 기본 이적료 2500만 유로(약 361억 원)에 달성하기 매우 쉬운 옵션 500만 유로(약 72억 원)"라고 전했다.
계약 기간은 5년 반으로 2029년 6월까지다. 드라구신은 연봉으로 300만 유로(약 43억 원) 정도를 받게 될 예정이다. 제노아는 지난해 8월 500만 유로를 지불하고 그를 데려왔지만, 반년 만에 큰 이익을 남기게 됐다.
계약의 일부로 토트넘 풀백 제드 스펜스가 제노아로 남은 시즌 임대를 떠난다. 그는 최근 리즈 유나이티드에서 무릎 부상과 태도 문제로 임대 생활을 조기 종료하고 돌아왔다. 하지만 돌아온 토트넘에서도 뛸 자리가 없었고, 제노아에서 새로운 도전에 나서게 됐다.
로마노는 "스펜스는 제노아로 임대를 떠나지만, 급여는 토트넘이 부담한다. 제노아는 1000만 유로(약 144억 원)에 그를 완전 영입할 수 있는 옵션을 보유할 것"이라고 밝혔다.
마지막까지 한 치 앞을 알 수 없었던 드라구신의 이적 사가다. 시작은 토트넘이 끊었다. 수비 보강이 급한 토트넘이 드라구신을 포착했다. 미키 반 더 벤이 지난달 햄스트링 부상으로 쓰러지면서 이제 막 복귀를 준비 중이고, 최근엔 크리스티안 로메로까지 햄스트링을 다친 만큼 즉시 영입이 필요했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은 이전부터 1월 이적시장에서 수비수 영입이 목표라고 선언했다. 그는 지난달 "산타클로스에게 편지를 썼다. 이젠 아이들처럼 못된 짓을 했는지 착한 짓을 했는지 보고 어떤 선물을 받을지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라며 센터백 부족을 토로한 바 있다.
토트넘은 드라구신뿐만 아니라 OGC 니스의 장클레르 토디보를 비롯해 로이드 켈리(본머스), 토신 아다라비오요(풀럼) 등을 노렸다. 처음에는 토디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지만, 협상이 어려워지자 빠르게 드라구신으로 눈을 돌렸다.
포스테코글루 감독이 드라구신을 원한 이유는 확실하다. 그는 2002년생으로 나이도 어린 데다가 191cm의 큰 키와 강력한 피지컬을 자랑한다. 유벤투스 출신인 그는 지난 시즌 제노아 임대를 통해 기량을 꽃피웠고, 올 시즌 제노아로 완전 이적해 주전으로 뛰고 있다. 그는 제노아가 치른 리그 19경기에 모두 출전했다.
드라구신의 최대 강점은 압도적인 공중볼 싸움 능력이다. 축구 통계 매체 '스쿼카'에 따르면 그는 세리에 A 17라운드 기준 가장 많은 공중볼 경합 승리(53회)를 기록했다. 게다가 드리블 돌파도 딱 한 번밖에 허용하지 않았다. 흔들리는 토트넘 수비에 큰 힘이 될 수 있는 자원이다.
루마니아 국가대표팀에서도 활약 중이다. 드라구신은 아직 만 21세에 불과하지만, 벌써 대표팀에서 13경기를 치렀다. 오는 6월 독일에서 열리는 유럽축구연맹(UEFA) 유로 2024에도 출전할 가능성이 크다.
토트넘은 빠르게 움직여 드라구신 설득에 나섰다. 약 일주일 전 로마노는 "토트넘은 드라구신과 장기 계약에 관해 개인 합의를 마친 것으로 보인다. 이미 공개했듯이 제노아와 협상도 진행 중"이라고 전했다. 드라구신 영입은 시간문제라는 긍정적인 전망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갑자기 바이에른 뮌헨이 끼어들면서 상황이 급변했다. 9일 이탈리아 '가제타 델로 스포르트'는 바이에른 뮌헨이 제노아와 이적료 협상을 마쳤다며 드라구신 영입 경쟁에서 토트넘을 추월했다고 전했다. '스카이 스포츠 독일' 역시 바이에른 뮌헨이 드라구신을 영입 후보 목록에 올렸다고 설명했다.
토트넘으로선 공 들였던 드라구신을 하이재킹당할 위기. 바이에른 뮌헨 역시 에릭 다이어를 노릴 정도로 중앙 수비수가 부족했기에 드라구신 영입에 진심으로 나섰다. 바이에른 뮌헨은 김민재가 2023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으로 자리를 비우면서 마티아스 더 리흐트, 다요 우파메카노 두 명만으로 중앙 수비를 꾸려야 하는 상황.
바이에른 뮌헨은 제노아가 요구한 이적료 3000만 유로를 제시하면서 빠르게 구단 간 합의도 마쳤다. '스카이 스포츠 독일 '소속 플로리안 플레텐베르크는 "바이에른 뮌헨은 드라구신을 하이재킹하려 한다. 크리스토프 프로인트 단장은 그의 능력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 토트넘과 제노아가 9일 아침 이적료와 2029년까지 계약에 대해 합의하고 문서를 교환했지만, 완료되진 않았다. 이제 드라구신이 결정해야 한다. 토트넘과 바이에른 뮌헨의 공개 레이스다"라고 전했다.
마지막에 웃은 팀은 토트넘이었다. 바이에른 뮌헨 보드진은 드라구신을 데려올 수 있다고 확신했지만, 그는 경쟁이 덜 치열한 토트넘 이적을 택했다. '디 애슬레틱'과 이탈리아 '잔루카 디 마르지오' 등은 10일 오후 일제히 드라구신이 바이에른 뮌헨을 거절하고 토트넘 합류를 결심했다고 보도했다.
로마노 역시 "드라구신은 오늘 늦게 런던으로 날아가 메디컬 테스트를 받을 것이다. 바이에른 뮌헨의 미친 사가는 끝났다"라며 혀를 내둘렀다. 하루 사이에 속보에 속보가 쏟아지는, 그야말로 '미친' 사가였다.
이제 드라구신은 메디컬 테스트 탈락 등 큰 변수만 없다면 토트넘의 겨울 이적시장 2호 신입생이 된다. 1호 오피셜은 티모 베르너가 가져갔다. 토트넘은 10일 "RB 라이프치히로부터 베르너를 임대 영입했다"라고 발표했다. 계약 기간은 이번 시즌이 끝날 때까지이며 완전 이적 옵션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드라구신의 에이전트도 "우리가 바이에른 뮌헨을 거절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드라구신은 토트넘과 약속을 했고, 이를 존중하기로 했다. 우리 모두는 아직도 조금 충격받은 상태"라며 얼떨떨해했다.
드라구신은 이미 런던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잔루카 디마르지오는 그가 공항에 나타난 모습을 공개하며 "드라구신은 프리미어리그에서 새로운 모험을 시작할 준비가 돼 있다. 그는 아침에 동료들에게 작별 인사를 남겼고, 메디컬 테스트와 최종 서명을 위해 런던으로 떠났다"라고 알렸다.
다만 드라구신 영입전의 후폭풍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바이에른 뮌헨은 여전히 새로운 수비수가 필요하고, 차순위 후보였던 다이어로 눈을 돌렸다. 플레텐베르크는 "바이에른 뮌헨은 드라구신 하이재킹에 실패했다. 이젠 다이어가 가장 선호하는 영입 후보"라고 설명했다.
양측은 이미 구두 합의까지 마친 만큼, 이적에 걸림돌은 없을 전망이다. 플레텐베르크는 "이미 구두 합의가 완료됐다. 이적료는 약 400만 유로(약 57억 원) 수준이며 계약 기간은 2025년까지에 1년 연장 옵션이 포함돼 있다. 거래는 아직 완료되지 않았다"라고 덧붙였다.
다이어는 지난해 말부터 바이에른 뮌헨과 연결됐다. 토마스 투헬 감독과 보드진은 그의 낮은 이적료와 중앙 수비, 수비형 미드필더, 우측 수비를 모두 소화할 수 있는 멀티성을 높게 평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절친' 해리 케인이 다이어를 적극 추천한 것으로 알려졌다. 둘은 토트넘과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오랫동안 호흡을 맞췄다. 토트넘으로서는 어차피 다이어와 이번 시즌을 끝으로 계약이 만료되는 만큼, 이적료까지 챙길 수 있다면 거절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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