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2023년은 ‘1923년 9월 1일 도쿄 일대를 중심으로 관동(간토) 대지진이 발생, 그 직후에 일본군과 정부에 의해 조선인인 대학살이 자행된 지’ 100년이 된 해였다.
공교롭게도 미국에 거주하는 작가 이민진의 소설(2017) 『파친코』가 2022년에 드라마로 영상화돼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재일동포(자이니치 조센징)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과 선입견이 여전한 일본 사회에서 ‘파친코’를 매개로 한 이 드라마는 조선인 학살 만행을 부분적으로나마 다루어 새삼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정작 ‘파친코와 재일 한국인’을 정면으로 다룬 책은 여태껏 찾아보기 어려웠다. 때마침 일본 릿쿄(立敎)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민속학자 김광식 교수가 펴낸 『파친코의 역사민속지』(2023년 민속원 발행)가 입소문을 타고 호사가들을 사로잡았다. ‘드라마만으로는 알 수 없는 재일 한국인들의 이야기’라는 부제를 달고 나온 이 책은 ‘파친코와 재일 한국인들’의 실상을 제대로 파헤친 최초의 학술서로도 화제를 불러모았다.
이른바 입본의 파친코 산업에 종사하는 외국인의 70%가 재일 한국(조선)인이라는 통설도 있다시피 파친코와 재일 한국인은 밀접한 역사적 연관성을 갖고 있다. 드라마 ‘파친코’를 계기로 재일동포의 삶과 역사에 관심은 일깨웠으나 일본에서 전개된 역사적, 문화적 상황을 이해할 수 있는 단행본은 한국에서 출간된 적이 없었고, 그동안 그 연구 성과 또한 매우 제한적이었다.
김광식 교수는 이 책의 집필 동기에 대해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 및 모순적 상황 속에서 재일 한국· 조선인은 일본 땅에서 가혹한 차별을 받았다. 드라마 ‘파친코’를 통해서 재일동포 역사가 새롭게 조명을 받았으나 실상을 알기에는 한계가 있었다”며 “한국에서는 그와 관련된 책이 없어서 이를 알기도 어렵다. 그래서 이 책은 파친코를 통해 재일 한국· 조선인들이 해방 후에 전개한 역사적 사실을 새롭게 조명코자 했다”고 밝혔다.
지은이가 다년간 심혈을 기울여 집필한 이 책은 ‘산업으로 인식이 미흡했던 파친코를 통해 재일 코리안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의 이해를 돕기 위해’ 파친코 산업의 역사성에 대한 정밀 해부를 시도했다.
『파친코의 역사민속지』는 ‘파친코를 산업으로 인식’하고 이 산업을 혁신해 온 재일동포의 역사성과 주체성에 초점을 맞춰 그 과거와 현재, 미래의 역사 민속지를 객관적으로 정리한 것이다.
한때 ‘빠찡꼬’라고도 불렀던 ‘파친코’에 대한 일반의 인식은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도박과 연결 지어 부정적으로 바라보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만, 일본에서 성행하는 파친코는 재일동포들의 아픈 역사와 결부돼 우리들에게 새로운 이해와 시각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은 그에 대한 깊은 이해와 해답을 안겨준다.
뭉뚱그리자면, 『파친코의 역사민속지』는 파친코 산업을 통해 살펴본 재일동포의 역사, 문화론, 그리고 차별과 응전의 생활 기록이다. 지은이는 설문과 각종 통계 자료, 일본의 법률 ‘풍속영업 단속법’은 물론 카지노와의 비교, 분석 등을 통해 독자들의 접근을 쉽게 허용하고 있다.
김광식 교수의 “일본의 파친코 문화와 역사를 살펴보는 작업은 재일 한국인의 삶을 통해서 우리 자신의 과거를 다시 묻는 성찰의 시간”이라고 규정했다. “파친코 산업은 복잡한 변모를 거듭해 왔지만, 한편으로 오해받는 부분도 있다. 신뢰할 만한 데이터를 참고해 실상을 확인하고, 그 역사성과 일상성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해 보고자 한다.”는 설명처럼 이 책은 ‘파친코와 재일 한국인들의 삶’ 속으로 깊숙이 안내한다.
『파친코의 역사민속지』는 ‘파친코로 다시 보는 재일(자이니치在日) 이야기’로 시작, ‘재일 코리안과 피친코의 역사’, ‘풍속 규제와 일본인론’, ‘파친코 의혹 부풀리기’, ‘파친코 산업과 재일동포들’, ‘한국인의 일본 관광과 원정 파친코’, ‘파친코의 미래’ 등으로 짜여져 있다.
지은이 김광식 교수는 민속학 전공자로, 릿쿄대학 겸임 강사로 한양대 석사, 동경학예(東京學藝)대학 박사 과정을 거쳤다. 연세대, (동경이과)東京理科대학, 요코하마국립대학, 사이타마대학, 일본사회사업대학 등에서 강의했고, 20여 년간 일본에 거주하며 동아시아 민속, 전승 문화를 연구하고 있는 중이다.
김광식 교수는 특히 다방면의 연구 성과물로 단행본만 하더라도 『식민지기 일본어 조선설화집의 연구』(2014), 『식민지 조선과 근대설화』(2015), 『근대 일본의 조선 구비문학 연구』(2018), 『한국·조선 설화학의 형성과 전개(2020), 『북한 설화의 새로운 이해』(2022) 등 여러권의 저작물을 내놓았다.
또 공저로 『식민지 시기 일본어 조선설화집 기초적 연구』, 『경성제국대학 부속도서관 장서의 성격과 활용』, 『박물관이라는 장치』, 『국경을 초월하는 민속학』과 역서로 『조선아동 화담』(2015), 『제국일본이 간행한 설화집과 교과서』(2019), 『문화인류학과 현대민속학』(202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