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육이 위기다. 해병대 극기훈련이 파리올림픽에서 좋은 성적으로 이어지리라는 강한 믿음을 가진 분이 대한체육회 회장이기 때문이다.
대한체육회는 지난 18일부터 2박3일 일정으로 경북 포항 해병대 1사단에서 국가대표선수 4천여명의 해병대 극기훈련을 실시했다. 당시 포항은 영하 6도 이하의 기온에 바람까지 심하게 부는 궂은 날씨였다. 선수들은 20일 훈련일정을 모두 마치고 퇴소했다.
이기흥 대한체육회장의 발언이 시발점이었다. 지난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한국은 금메달 50개와 종합 3위를 목표로 잡았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에 이어 3위는 달성했지만 금메달 42, 은메달 59, 동메달 89로 당초 목표 메달수를 채우지 못했다.
이에 이기흥 회장은 선수들의 근성부족을 지적하며 “나를 포함한 국가대표 선수단이 해병대 훈련을 받을 것”이라 선언했다.
이 회장의 발언은 현실이 됐다. 국가대표 선수들은 종목을 막론하고 가장 추운 날씨에 군복을 입었다. 종목의 특성이나 파리올림픽 국가대표 선발여부 등은 고려사항이 아니었다. 군대식 훈련이 시대착오적 발상이며 대표팀 선수들 경기력 향상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하지만 이기흥 회장은 “훈련보다는 파리올림픽에 선수들의 결의를 다지는 자리를 마련했다. 선수들이 단합하고 훈련을 잘 마치고 와서 내년 올림픽에 좋은 성적을 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훈련을 강행했다.
결국 후폭풍이 거세다. 문화연대 등 4개 시민단체는 21일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이들은 “국가대표 선수의 해병대 훈련은 신체자유권을 침해하는 징벌적 극기 훈련"이라고 주장했다.
이 회장이 한국선수단 성적의 책임을 선수들에게 물어 일방적으로 훈련참여를 강제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선수들의 인권이 무시됐으며 비과학적 훈련으로 경기력 저하까지 초래했다는 근거를 대고 있다.
같은 정부부처에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엄동설한에 선수들 부상우려도 있다. 구시대적 발상”이라며 이 회장의 훈련강행에 유감을 표시했다. / jasonseo34@ose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