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 원정길에 오른 전북 현대가 수적 열세를 이겨내고 귀중한 승점 3점을 획득했다.
전북 현대는 29일 오후 7시(이하 한국시간) 홍콩 스타디움에서 열린 2023-2024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ACL) F조 조별리그 5차전에서 킷치 SC를 2-1로 꺾었다.
이로써 전북은 3승 2패, 승점 9점으로 조 2위 자리를 지켰다. 한 경기 덜 치른 1위 방콕 유나이티드(태국, 승점 10)와 격차는 이제 1점이다. 방콕-라이언 시티 세일러스(싱가포르)의 맞대결 결과와 별개로 전북은 홈에서 열리는 최종전에서 방콕을 꺾는다면 16강 진출이 유력하다.
전북은 4-4-2 포메이션으로 시작했다. 송민규-박재용, 문선민-박진섭-백승호-이동준, 김진수-홍정호-정태욱-안현범, 김정훈이 선발 명단을 꾸렸다. 하파 실바, 최철순, 이준호, 박창우, 한교원, 정우재, 아마노 준, 구자룡, 이수빈, 윤영선, 보아텡, 정민기가 벤치에서 출격을 기다렸다.
킷치는 4-5-1 포메이션으로 맞섰다. 야콥 얀처, 루슬란 밍가조프-미카엘-찰리 스콧-클레이통-이고르 사르토리, 찬 신이치-앤드류 제임스 러셀-엘리우-라오 츠춘, 왕 젠펑이 선발로 나섰다.
'16강 진출 위해' 전북, 무조건 승점 3점 각오...킷치는 올 시즌 ACL 첫 승 도전
16강 진출을 판가름할 수 있는 중요한 분수령이었다. 전북은 이번 경기에서 승리하지 못한다면 조 3위로 밀려나면서 16강 진출에 빨간불이 켜질 수 있었다. 전북으로선 원정 부담을 딛고 무조건 승리해야 하는 경기.
조 2위를 차지해도 탈락 가능성이 있기에 승점 3점이 더욱 절실했다. ACL은 조별리그 종료 후 각 조 1위 팀(동아시아 5팀, 서아시아 5팀)은 16강에 자동 진출하지만, 각 조 2위 팀은 권역별 5팀 중 상위 3개 팀만 16강에 오를 수 있다.
전북은 일단 다득점 승리를 거둔 뒤 홈에서 열리는 방콕과 6차전을 준비하겠다는 생각이었다. 방콕 원정과 라이언 시티 원정에서 연달아 패한 만큼, 동남아 악몽을 끊어낼 절호의 기회이기도 했다.
경기를 하루 앞두고 28일 만난 안현범은 "내일 무조건 이겨야 한다. 사실 K리그 최종전인 울산전도 중요하지만, 이번 킷치전이 가장 중요하다. 조별리그 6차전은 우리 홈에서 열린다. 방콕 선수들은 한국에 오면 추워서 제대로 뛰기도 힘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단 페트레스쿠 감독 역시 "조별리그 1차전에서 킷치를 상대했다. 첫 경기인 만큼 압박감이나 부담이 덜했다. 이제는 5차전을 앞두고 있는 만큼 중요성이 더 크다. 킷치는 조별리그 탈락이 확정이기 때문에 킷치가 느낄 중압감은 비교적 덜하겠지만, 우리는 압박감이 더 크다. 이번 경기의 중압감은 선수들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주장 홍정호는 "선수들도 내일 경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인지하고 준비 중이다. 승점 3점이 필요한 만큼, 집중해서 좋은 경기력으로 승점 3점을 꼭 가져올 수 있도록 하겠다"라고 화답했다.
김동진 킷치 감독 대행도 "우리도 아직 승리가 없다. 전북을 상대로 물러서고 싶지는 않다"라며 "전북은 강팀이지만, 시즌 말미인 만큼 체력을 많이 소진한 시기다. 게다가 원정 경기고 주중 경기다. 중요한 광주전과 울산전 사이에 열리는 경기이기에 압박감도 클 것이다. 그런 점을 잘 이용하겠다"라고 의지를 불태웠다.
문선민 선제골-송민규 추가골, 그리고 정태욱 퇴장...10명 된 전북, 2-0으로 전반 마무리
경기 시작 2분 만에 전북이 앞서 나갔다. 이동준이 우측면을 돌파한 뒤 골문 앞으로 날카로운 크로스를 올렸다. 킷치 골키퍼가 백승호 발에 맞은 공을 제대로 쳐내지 못했고, 백승호가 재차 건드린 공이 박재용 무릎에 맞고 문선민에게 연결됐다. 문선민은 정확한 논스톱 슈팅으로 골망을 흔든 뒤 트레이드마크인 '관제탑 세레머니'를 펼쳤다.
전북이 간발의 차로 추가골을 놓쳤다. 전반 12분 백승호가 올려준 코너킥을 박진섭이 강력한 헤더로 연결했다. 공은 골키퍼를 지나 그대로 골문 안으로 들어가는가 싶었지만, 골라인을 넘기 직전 킷치 수비가 발을 뻗어 걷어냈다.
옐로카드가 쏟아져 나왔다. 전북은 전반 15분 송민규가 박스 안에서 슈팅 기회를 놓치면서 역습을 허용했다. 이동준이 이를 막으려다가 경고를 받았다. 2분 뒤엔 라오 츠춘이 측면으로 빠져나가는 송민규를 뒤에서 잡으면서 경고받았다.
전북은 이후로도 강한 전방 압박과 빠른 공격으로 킷치를 위협했다. 하지만 전반 21분 송민규의 슈팅은 수비벽에 걸렸고, 전반 22분 이동준의 돌파도 태클에 걸리며 코너킥으로 이어졌다.
킷치도 공격 숫자를 많이 배치하며 맞불을 놨다. '물러서고 싶지는 않다'던 김동진 감독 대행의 각오대로였다. 수비수 4명과 수비형 미드필더 스콧을 제외한 필드 플레이어 5명은 모두 높이 전진했다.
전북이 골대 불운에 땅을 쳤다. 전반 28분 백승호의 과감한 왼발 중거리 슈팅이 우측 골포스트를 강타하고 튕겨 나왔다. 1분 뒤 나온 문선민의 박스 안 발리슛도 골대 위로 살짝 넘어갔다.
전북이 머지않아 추가골을 뽑아냈다. 전반 38분 러셀이 후방에서 불안하게 공을 처리했고, 송민규가 이를 놓치지 않고 달려들며 공을 뺏어냈다. 골키퍼와 일대일 기회를 맞은 송민규는 침착한 오른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2-0을 만들었다.
전반 막판 치명적인 변수가 발생했다. 전반 45분 정태욱이 상대 공격수를 막으려다가 다이렉트 레드카드를 받았다. 주심은 그가 킷치의 완벽한 득점 기회나 다름없는 일대일 기회를 저지했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페트레스쿠 감독이 강하게 항의해 봤지만, 판정은 바뀌지 않았다.
'버티고 버텼다' 전북, 1실점으로 후반 마무리...1골 차 승리 지켰다
수적 열세에 처한 전북은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 카드를 사용했다. 페트레스쿠 감독은 송민규를 불러들이고 중앙 수비수 구자룡을 투입했다. 수비 밸런스를 위해 어쩔 수 없이 공격 숫자를 줄이는 선택이었다.
킷치의 기세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킷치는 후반 10분경부터 연달아 위협적인 슈팅을 날리며 만회골을 노렸다. 후반 13분엔 김진수에게 맞고 굴절된 공이 자책골로 연결될 뻔하기도 했지만, 골키퍼 김정훈이 몸을 날려 막아냈다.
전북은 웅크린 뒤 역습을 시도하며 기회를 엿봤다. 후반 16분 문선민이 우측 빈 공간으로 질주한 뒤 반대편으로 공을 건넸다. 이동준은 수비를 떨쳐내고 과감한 슈팅으로 골문을 겨냥했으나 공은 골대 위로 넘어갔다.
킷치가 매섭게 몰아쳤다. 후반 19분 미카엘이 왼쪽에서 올라온 낮은 크로스에 발을 갖다 댔다. 골키퍼도 튀어나온 상황이었지만, 다행히 공은 골대 왼쪽으로 살짝 빗나갔다.
김정훈이 연속 선방으로 위기를 넘겼다. 그는 후반 20분 클레이통의 중거리 슈팅을 옆으로 쳐냈다. 멀리 걷어내진 못하면서 추가 슈팅을 허용했지만, 이 역시 몸을 날려 막아내며 엄청난 반사신경을 자랑했다.
전북이 변화를 줬다. 페트레스쿠 감독은 후반 23분 이동준과 문선민을 불러들이고, 최철순과 한교원을 투입하며 양 측면 날개를 모두 바꿔줬다. 우측 수비수를 맡던 안현범이 최철순에게 자리를 내주고 왼쪽 미드필더 위치로 이동했다.
킷치가 추격을 시작했다. 후반 24분 미카엘이 박스 안에서 가슴으로 공을 떨궈놨고, 이를 야콥 얀처가 뛰어들며 마무리했다. 점수는 2-1, 한 골 차가 됐다.
전북은 후반 32분 안현범을 빼고 이수빈을 투입하며 피치 위에 에너지를 불어넣었다. 이후로도 전북이 잠그고, 킷치가 공격하는 흐름이 계속됐다. 후반 37분 킷치 밍가조프의 중거리 슈팅은 골대 위로 떠올랐다.
부상 악재까지 겹쳤다. 후반 41분 박재용이 발목을 접질리면서 고통을 호소했다. 페트레스쿠 감독은 잠시 후 그를 대신해 이준호를 넣었다.
전북이 경기 막판 힘을 짜냈지만, 골운이 따르지 않았다. 후반 44분 백승호의 중거리 슈팅은 골대 왼쪽으로 살짝 빗나갔고, 추가시간 1분 이준호의 오른발 슈팅은 왼쪽 골포스트를 때리고 말았다. 더 이상 골은 나오지 않았다. 끝까지 집중력을 발휘한 전북은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며 적지에서 승점 3점을 얻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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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전북 현대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