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도, 조커는 많이 쓰이는 용어다. 특히, 축구에서 그렇다. 교체 선수를 가리키는 말로 가장 입에 붙은 단어가 조커다.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변수로 작용한다는 점에서, 플레잉 카드와 축구에서 조커의 기능과 비중은 매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좀처럼 경기의 실마리를 풀지 못할 때 투입된 조커의 한 방이 승패를 가르는 결정적 요인으로 작용하곤 하는 스포츠가 축구다.
잉글리시 프리미어리그(EPL) 2023-2024시즌 초반 하나의 화두로 떠오른 전술이 ‘조커 승부학’이다. 경기의 맥을 짚고 조커 투입 시점을 판단하는 감독의 역량이 승부의 갈림길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음이 뚜렷하게 나타난 이번 시즌이다. 하나의 전술 트렌드로 뿌리내릴 만치 유달리 조커가 많은 골을 터뜨리는 추세를 쉽게 엿볼 수 있다.
조커의 득점 비중, 갈수록 가파른 기울기의 증가 추세
EPL 이번 시즌 대장정은 거의 ⅓을 마쳤다. 팀당 12경기씩을 치러 총 120경기를 치른 12라운드 현재, 두드러진 경향은 교체 선수 득점이 큰 폭으로 늘었다는 점이다. 최근 3시즌(2020-2021~2022-2023)과 대비했을 때, 가파른 기울기의 증가 곡선이 눈에 확 띈다.
이번 시즌, 맹위를 떨치는 조커의 활약은 확실히 놀라울 정도다. 12라운드 120경기에서 나온 득점은 370골이다. 이 가운데 교체로 들어간 카드가 기록한 득점은 57골로, 15.4%에 이른다.
얼마나 대단한 수치인지 실감이 나지 않으면, 최근 3시즌과 비교했을 때 금세 피부에 와 닿는다. 교체 선수 득점이 증가 추세였다고 하나, 기울기 면에서 크게 차이가 난다. 2020-2021시즌 8.8%(90/1,024골)에 견주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2021-2022시즌 9.5%(102/1,071골)로 완만한 증가 곡선을 보였다가, 2022-2023시즌 12.2%(132/1,084골)로 비교적 가파르게 변한 추세가 더욱 탄력을 받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표 참조).
조커의 경기당(90분) 득점도 2배로 많아졌다. 2020-2021시즌 0.24골에서 2021-2022시즌 0.27골→ 2022-2023시즌 0.35골 등 점진적 증가를 거쳐 2023-2024시즌 0.48골로 많이 늘어났다.
이처럼 조커가 차지하는 득점 비중이 높아진 요인으로, EPL은 교체 선수 수 변화를 꼽았다. 2022-2023시즌부터 교체 선수를 3명에서 5명으로 늘린 데 따른 자연스럽게 나타난 현상으로 풀이했다. 규칙 변경이 벤치에 앉아 투입을 노리는 선수들에게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더 큰 기회를 제공한다고 분석했다. EPL은 아울러 교체 선수 수 증가 변화가 감독이 조커와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하면서 개개인에게 높은 수준의 동기를 부여하는 데 밑거름으로 작용한다고 봤다.
그렇다면 이번 시즌 최고의 조커들을 보유한 팀은 어디일까? 답은 아스날과 브라이튼 & 호브 알비온이었다. 두 팀 모두 조커들이 기록한 골 수는 7이었다. 아스날은 팀 득점의 29.2%(7/24골), 브라이튼은 28%(7/25골)를 각각 교체 선수들이 차지했다. 팀 순위에서, 아스날이 3위를, 브라이튼이 8위를 각각 달리며 상위권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도 조커의 중요성을 밑받침한다. 두 팀의 뒤를 울버햄튼 원더러스(6골)→아스톤 빌라·뉴캐슬 유나이티드(이상 5골)가 쫓고 있다.
흥미롭게도, EPL 20개 팀 사령탑 가운데 3명만이 75% 이상 경기에서 교체 선수 5명을 모두 활용했다. 세 사령탑은 앤지 포스테코글루(토트넘 홋스퍼)-로베르토 데 제르비(브라이튼)-스티브 쿠퍼(노팅엄 포레스트·이상 9경기) 감독이었다.
가장 파괴력이 큰 ‘슈퍼 조커’는 레온 베일리(아스톤 빌라)였다. 조커 가운데 최대 수확량(2골 2도움)을 보였다. 지난 시즌 4골 2도움을 기록했던 다르윈 누녜스(리버풀)는 이번 시즌에도 2골 1도움 거둬들이며 ‘슈퍼 서브’의 명성을 재확인했다. 파비우 비에이라(아스날·1골 2도움), 파블로 사라비아(울버햄튼·1골 2도움), 장-필리프 마테타(크리스탈 팰리스·3도움) 등도 못지않은 활약상을 보였다.
조커가 펼치는 빼어난 몸놀림이 소중하게 느껴지는 2023-2024시즌이다. 데이터가 명확하게 나타내는 사실이다. 그 어느 시즌보다 스쿼드 게임이 된, ‘조커 승부학’이 대세로 자리 잡은 듯한 EPL이다.
전 베스트 일레븐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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