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SEN=홍윤표 선임기자] 죽음은, 인간이라면 그 누구도 피해갈 수 없는 숙명이다. 신에 의존해 ‘영생(永生)’을 기대하는 것이야말로 인간의 무력함, 삶의 허망함을 역설적으로 드러낼 뿐이다. ‘불멸과 영생’은 신의 영역이다. 죽음을 눈앞에 둔 인간이 꾀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그 지점에서 기발한 상상력의 나래를 펼 공간이 생긴다. 최근 출간된 장편소설 『다차원 인간』(지성의 샘 발행)은 죽음을 앞둔 한 인간(작중에서는 대장암 말기 선고를 받은 재벌 총수 박상수)을 둘러싸고 세 부류의 인간을 등장시켜 펼치는 ‘영생’을 위한 이야기다.
이 작품을 창작한 이는 놀랍게도 아흔을 바라보고 있는 기자 출신 민병택(82) 작가이다.
“미풍이 나뭇잎에 스치는 소리가 울리더니 신령은 종적 없이 표연히 사라졌다. 상수는 귀신에게 홀렸는지 어안이 벙벙했고,(…) 나는 신령이 지켜주는 보루일까? 원귀 먹이가 되라고 세상에 내던져진 떨이 인간일까?”
죽음을 ‘내다보는’ 작중 주인공은 “죽음을 철천지원수로 증오하면서도 목숨을 다해 사랑한다고 연가를 부르는 이중인격자”이고, “원천적으로 통합을 도모할 수 없는 무수한 염색체로 갈라져 있는 분자적 존재”로 인식한다. 상상력의 변주가 시작되는 것이다.
치밀한 묘사와 ‘서사의 힘’으로 작품을 지어낸 민병택 작가는 “인간이 우주를 정복하려면 우선 영생의 길을 터야 한다. 영생을 누리려고 오리지널 인간은 신과의 영적인 교류를 통해 목표를 달성하려 든다.”면서 “변조 인간은 인간의 모든 질병을 해소시키고 유전자를 변조시켜 평범한 인간을 돌연변이에 이어 체세포 복제를 통해 탈 인간으로 격상시키고 이를 거듭해 인간이 신의 경지에 올라 영생을 성취하려 한다.”고 작품의 바탕을 설명했다.
“사이비 족속은 무생물에 생명력을 주입, 모조 인간을 생명체 화 함으로서 영생을 얻으려고 치열한 3파전을 벌이고 언젠가는 세 부류의 인간이 목적을 달성하려고 각고의 노력을 한다. 영생을 얻은 인간이 되는 것은 필수이고, 나노공학과 우주공학이 종합돼 우주를 정복하는 길을 내려고 분투하는” 것이 소설의 주류이다.
'세 부류의 인간은 영생을 자신하고 있는데 과연 이 목표가 이룩될지 가능성을 짚어보는 것이 다차원 인간들이 노리는 목표고 새로운 우주를 만들려는 각축전'이 소설의 주된 내용이다.
지은이는 1969년 한국일보에 입사, 외신부와 체육부 기자를 거친 다음 세계일보로 옮겨 체육부장, 논설위원을 지냈고, 그 후 문화일보에서 편집부국장, 논설위원을 역임한 언론인이다. 언론사 정년 퇴임 뒤인 2010년에 고희의 나이로 『진혼일기』라는, 국내에서 처음으로 시도된 본격적인 심리소설로 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진혼일기』는 지주와 소작인이라는 사회 계급이 존재하던 막바지 시절의 이야기다. 농지개혁이 이뤄지기 전, 병약한 지주가 후손도 없이 죽음을 예약한 상황에서, 지주와 지주가 남길 재산을 바라보는 여러 인간 군상들의 복잡한 심리를 다루고 있다. 지주가 소유한 막대한 재산을 놓고 펼치는 저마다의 분배의 법칙은 인간 내면의 맨 밑바닥을 건드리고 있다.
민병택 작가는 본디 기자나 소설가가 바라던 일이 아니었다. 천주교 신부를 꿈꿨던 고등학교 시절, 폐병으로 사형선고를 받다시피 했다가 회복한 경험이 언론계를 거쳐 작가로 변신한 것과 밀접한 연관이 있다. 신부의 길을 가로막았던 7년 남짓한 투병 끝에 병으로부터 해방된 작가는 신부가 되어 아오스딩 같은 작가 겸 이론가가 되고자 했던 창작의 꿈을 30년이 지난 이제야 제대로 이뤄가고 있다.
소설기법을 한 차원 높이고 새로운 패턴과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는 작가로서의 꿈이 첫 작품 『진혼일기』에 이어 이번 『다차원 인간』에서 무르녹아 있다. 두 작품 모두 ‘죽음’이라는 묵직한 주제를 중심에 두고 상상력의 무한 확장으로 직조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