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지쳐도 김민재(27, 바이에른 뮌헨)는 '괴물'이 맞았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1차전에서 싱가포르를 5-0으로 대파했다.
이로써 한국은 2차 예선 C조 1위에 오르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여정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이제 한국은 중국 선전으로 이동해 21일 중국과 2차전을 치른다.
FIFA 랭킹 24위 한국은 지난 1990년 7-0 승리 이후 33년 만에 만난 싱가포르(155위)를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동시에 맞대결 15경기 무패(14승 1무)를 달렸다. 오심으로 인한 골 취소와 골대 불운도 있었지만, 전반 막판 나온 조규성의 선제골과 후반전 나온 황희찬-손흥민-황의조-이강인의 소나기 골을 앞세워 대승을 거뒀다.
김민재도 어김없이 선발 출전해 무실점 승리를 이끌었다. 그는 이번에도 정승현과 함께 호흡을 맞추며 수비진 중심을 지켰다.
예고된 일이었다. 클린스만 감독은 경기 전날 김민재 혹사 이야기가 나오자 "한국에 도착한 첫날엔 가볍게 실내에서 회복훈련을 했고, 다음날은 운동장에서 훈련을 하면서 컨디션을 회복했다. 다시 경기를 뛸 준비가 돼 있다고 생각한다. 5경기 연속 출전하는 게 선수로서 더 기분이 좋은 일이다. 훈련만 하는 건 좋지 않다"라고 선을 그었다.
독일에서 불거진 '김민재 혹사론'도 단순한 가십거리로 치부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월드컵 예선은 어떤 선수든 죽기 살기로 뛰고 싶은 경기지 절대 쉬고 싶은 경기가 아닐 것이다. 그런 면에서 볼 때 김민재도 피곤하지 않다. 아마 쉬길 원치 않을 것이다. 분명히 출전을 원할 거다. 아마 독일 매체에서도 뭔가 기사를 써야 하기 때문에 그러지 않았나 싶다"라고 못을 박았다.
다만 김민재가 지나친 강행군을 소화하며 과부하에 걸린 것은 사실이었다. 뮌헨에서만 최근 14경기 연속 선발 출전한 그는 지난 자르브뤼켄전부터 실수가 잦아지더니 갈라타사라이전과 하이덴하임전에서도 실점 빌미를 제공했다. 분명히 '괴물'다운 모습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태극마크를 가슴에 단 김민재는 흔들리지 않았다. 그는 이날도 풀타임을 소화하며 흠잡을 데 없는 활약을 펼쳤다. 아무리 지쳤다고 하더라도 김민재는 김민재였다.
싱가포르는 수비에 집중하면서도 이따금 높이 올라온 한국의 뒷공간을 노렸다. 하지만 번번이 김민재의 빠른 커버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김민재-정승현 듀오는 중앙선 너머까지 높이 올라가면서도 위험한 장면을 허락하지 않았다.
김민재는 전반 10분 우월한 속도를 자랑하며 한발 빠르게 상대 패스를 차단했다. 심지어 상대 공격수가 오프사이드 위치에서 출발했음에도 먼저 공을 따내는 모습이었다. 김민재는 적극적으로 오버래핑하는 양 풀백의 뒷공간도 빠지지 않고 책임졌다.
특유의 정확한 롱패스도 빛났다. 김민재는 뮌헨에서처럼 빌드업의 시발점으로서 공수의 연결고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우측으로 오버래핑하는 설영우를 향해 택배 패스를 배달했을 땐 관중석에서 감탄이 터져나오기도 했다.
김민재의 전진 패스 능력은 유럽에서도 정상급이다. 통계 매체 '후스코어드닷컴'에 따르면 그는 올 시즌 전진 패스 430회를 성공하며 유럽 5대리그 최다 수치를 기록 중이다. 독일 'FCB 인사이드'도 그를 '뮌헨의 비밀 플레이메이커'라고 칭찬했다.
클린스만호는 김민재의 든든한 활약에 힘입어 5-0 대승으로 경기를 마쳤다. 지난 9월 웨일스전(0-0)을 시작으로 5경기 연속 클린시트다. 이번에도 철벽 수비를 펼치며 체력 저하 우려를 깨끗이 씻어낸 김민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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