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공 축구'가 통했다. 한국이 싱가포르의 두 줄 수비를 깨부수고 6만여 홈팬들 앞에서 골 폭죽을 터트렸다.
위르겐 클린스만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1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6 국제축구연맹(FIFA) 북중미 월드컵 아시아지역 2차 예선 1차전에서 싱가포르를 5-0으로 대파했다.
이로써 한국은 2차 예선 C조 1위에 오르며 11회 연속 월드컵 본선 진출을 향한 여정을 기분 좋게 시작했다. 이제 한국은 중국 선전으로 이동해 21일 중국과 2차전을 치른다.
FIFA 랭킹 24위 한국은 지난 1990년 7-0 승리 이후 33년 만에 만난 싱가포르(155위)를 어렵지 않게 잡아냈다. 동시에 맞대결 15경기 무패(14승 1무)를 달렸다. 오심으로 인한 골 취소와 골대 불운도 있었지만, 전반 막판 나온 조규성의 선제골과 후반전 나온 황희찬-손흥민-황의조-이강인의 소나기 골을 앞세워 대승을 거뒀다.
한국은 4-2-3-1 포메이션으로 시작했다. 조규성이 최전방을 책임졌고, 황희찬-손흥민-이강인이 공격 2선을 구성했다. 황인범-이재성이 뒤를 받쳤고, 이기제-김민재-정승현-설영우가 수비진을 꾸렸다. 골문은 김승규가 지켰다.
초반부터 한국이 싱가포르를 거세게 몰아붙였다. 전반 6분 황희찬이 왼쪽 측면에서 과감한 돌파로 반칙을 얻어냈다. 박스 바로 바깥에서 프리킥이 주어졌다. 그러나 손흥민이 골문 쪽으로 강하게 찬 오른발 프리킥은 싱가포르 수비 머리에 맞고 나갔다.
황인범이 첫 슈팅을 기록했다. 그는 전반 10분 먼 거리였음에도 공간이 열리자, 과감하게 왼발 중거리 슈팅을 날렸다. 날카로운 슈팅이었지만, 공은 골대 오른쪽으로 살짝 빗나갔다.
한국이 오심으로 선제골을 도둑맞았다. 전반 22분 우측에서 공을 잡은 이강인이 멋진 개인 드리블로 수비를 떨쳐내고 박스 안으로 크로스를 올렸다. 조규성이 이를 머리로 떨궈놨고, 이재성이 골문 앞으로 달려들며 마무리했다.
완벽한 득점 장면이었다. 문제는 부심이 깃발을 들어 올리면서도 주심도 오프사이드를 선언한 것. 하지만 느린 장면을 보면 조규성보다 싱가포르 수비수의 뒷발이 확연히 뒤에 있었기에 오프사이드가 아니었지만, 비디오 판독(VAR)이 없기에 그대로 진행됐다. 한국으로선 이른 시간 앞서 나갈 기회를 억울하게 빼앗긴 셈.
한국이 또 한 번 결정적인 기회를 놓쳤다. 전반 29분 이강인이 우측에서 날카로운 오른발 크로스를 올렸다. 이를 반대편에서 쇄도하던 이재성이 몸을 날려 머리에 맞췄다. 골이나 다름없는 슈팅이었지만, 이번엔 하산 서니 골키퍼의 슈퍼세이브에 막히고 말았다.
골대 불운까지 이어졌다. 전반 34분 조규성이 박스 안에서 손흥민과 싱가포르 수비 맞고 떨어진 공을 대포알 발리슛으로 연결했다. 하지만 기세 좋게 날아간 공은 크로스바를 강타하고 튕겨 나왔다.
좀처럼 선제골이 나오지 않았다. 한국은 황희찬과 이강인을 중심으로 측면에서 여러 차례 세트 피스 기회를 얻어냈지만, 모두 골로 연결되지 않았다. 전반 36분엔 손흥민이 박스 안 돌파 과정에서 넘어졌지만, 반칙이 선언되지 않았다.
공격수까지 모두 내려앉은 싱가포르의 두 줄 수비는 생각보다 견고했다. 공격수와 미드필더의 구분이 없는 사실상 5-5 포메이션이었다. 한국도 필드 플레이어 10명 전부 중앙선 위로 올라가 공격을 펼쳤다.
전반 막판 드디어 결실이 나왔다. 전반 44분 이강인이 수비 라인 뒤로 절묘한 왼발 롱패스를 찔러넣었다. 이를 침투한 조규성이 정확한 왼발 슈팅으로 마무리하며 기다리던 선제골을 터트렸다. 지난 2022 카타르 월드컵에서도 골을 합작했던 이강인-조규성 듀오의 찰떡 호흡이었다.
그 덕분에 한국은 1-0으로 앞선 채 전반을 마무리했다. 생각보다는 늦게 나온 선제골이었지만, 남은 후반 45분을 훨씬 편안하게 만드는 귀중한 득점이었다.
두 번째 골도 금세 나왔다. 후반 4분 우측에서 이강인이 수비 두 명 사이로 공을 빼냈고, 조규성이 골문 앞으로 크로스를 보냈다. 이를 황희찬이 머리에 맞추며 골망을 흔들었다. 후반전 이른 시간 나온 기분 좋은 추가골이었다.
주장 손흥민도 득점 행렬에 참가했다. 그는 후반 17분 우측 공간에서 공을 잡은 뒤 수비를 따돌리고 환상적인 왼발 감아차기로 골문 구석을 꿰뚫었다. 이른바 '손흥민 존'에서 나온 손흥민다운 골이었다.
여유가 생긴 클린스만 감독은 교체 카드를 꺼내 들었다. 후반 19분 이기제와 이재성, 조규성을 불러들이고 황의조, 정우영, 김진수를 한꺼번에 투입했다.
한국이 빠르게 4번째 골까지 추가했다. 후반 21분 이강인의 뒤꿈치 패스를 받아 돌파하던 설영우가 귀화 선수 송의영에게 걸려 넘어지며 페널티킥을 얻어냈다. 키커로 나선 황의조가 침착하게 골키퍼를 속이고 골망을 가르며 4-0을 만들었다.
남은 교체 카드도 모두 사용했다. 클린스만 감독은 후반 25분 황희찬과 황인범을 대신해 이순민, 오현규를 투입하며 공격진과 중원에 다시 한번 변화를 줬다. 김민재와 손흥민은 또 한 번 풀타임을 소화하게 됐다.
이강인도 골 맛을 봤다. 후반 40분 싱가포르 수비가 머리로 걷어낸 공이 박스 바깥 이강인 앞에 떨어졌다. 그는 강력한 왼발 슈팅으로 가까운 골문 쪽에 꽂아 넣으며 3경기 연속골을 터트렸다.
더 이상 골은 나오지 않았다. 추가시간은 4분이 주어졌지만, 싱가포르는 이미 의욕이 꺾인 지 오래였다. 결국 클린스만호는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치며 5-0 대승을 완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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