준결승 무대에도 비디오 판독(VAR)이 없다. 결국 판정 시비를 피하지 못하게 됐다. 국내 최고 권위 대회라 불리는 FA컵에서 일어난 이야기다.
전북 현대는 1일 오후 7시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A컵 4강전에서 인천 유나이티드를 3-1로 제압하고 결승에 올랐다.
이제 전북은 제주 유나이티드와 포항 스틸러스 중 승자와 우승 트로피를 놓고 다툰다. 결승전은 제주 혹은 포항 홈에서 열린다. 전북이 결승에서도 승리한다면 통산 7번째 우승을 거두면서 수원 삼성(6회)을 제치고 FA컵 최다 우승 신기록을 세우게 된다.
총 4골이 터진 화끈한 경기였다. 전북이 전반 23분 문선민의 선제골로 앞서 나가자 인천은 전반 39분 제르소의 동점골로 응수했다. 승부는 후반에 갈렸다. 전북이 후반 17분 백승호의 골과 추가시간 박재용의 페널티킥 쐐기골로 인천을 무너뜨리고 결승행 티켓을 거머쥐었다.
양 팀 선수들이 모든 것을 쏟아낸 멋진 승부였지만, 찝찝함이 남았다. 바로 경기 도중 나온 석연찮은 판정 때문이다.
인천은 전반 39분 동점골을 터트렸다. 정동윤이 높은 위치까지 올라가 안현범을 거세게 압박하며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그는 오른발로 안현범의 다리를 한 차례 건드렸다. 여기까지는 심판 재량에 따라 정당한 몸싸움으로 보고 넘어갈 수 있다지만, 다음 장면이 문제였다.
정동윤은 등지고 있는 안현범의 공을 빼앗기 위해 몸을 던져 태클을 날렸다. 그러나 공은 제대로 건드리지 못하고 안현범의 왼쪽 다리를 걷어차며 넘어뜨렸다. 그럼에도 심판 휘슬은 불리지 않았고, 곧바로 문지환의 패스에 이은 제르소의 동점골이 나왔다.
태클에 쓰러진 안현범은 억울함을 호소해 봤지만, 소용없었다. 이날 경기엔 VAR 시스템이 없었기 때문. 명색이 국내 최고 권위 대회인 FA컵이지만, 준결승 무대에도 VAR은 가동되지 않았다. 결국 제르소의 골은 검토할 기회도 없이 그대로 득점으로 인정됐다.
인천도 할 말이 있다. 1-2로 뒤지고 있던 후반 35분 권한진이 박스 안에서 박진섭에게 걸려 넘어졌다. 그는 양손을 들고 부심을 바라보며 항의했지만, 반칙은 선언되지 않았다. 이 역시 VAR만 있었다면 확실히 짚고 넘어갈 수 있는 장면이었다.
'VAR만 있었더라도'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두 장면 모두 오심이냐 아니냐는 둘째치더라도 혹시 모를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조차 없다는 게 문제다. 이미 K리그1과 K리그2 모든 경기에 있는 VAR이 FA컵에만 없는 이유를 이해하기 어렵다.
FA컵이 수준 이하 운영으로 권위를 깎아 먹은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데이터 포털에서 자세한 기록을 찾아볼 수 있는 K리그와 달리 FA컵은 간단한 기록조차 찾기 어렵다. 계속해서 지적되는 FA컵 패치 품질 문제와 디자인 아이덴티티 문제도 개선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특히 FA컵의 위상은 올해 들어 크게 떨어졌다. 사실 이날 열린 준결승전은 지난 8월 펼쳐져야 했다. 하지만 전북-인천 경기는 잼버리 문제 여파로, 제주-포항 경기는 킥오프 1시간 전 태풍 여파를 우려한 제주시의 요구로 갑작스레 연기됐다. 일정은 순식간에 3달 뒤로 미뤄졌고, 결승도 단판 승부로 바뀌었다. 권위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일단 FA컵 결승에서는 VAR이 가동된다. 대회를 주관하는 대한축구협회(KFA)도 결승전에서만큼은 잡음을 만들고 싶지 않은 모양이다. 하지만 기본부터 챙기지 않는 모습이 계속된다면 FA컵의 권위는 갈수록 추락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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